노진환 전 서울신문 사장이 밝힌 MB정권의 ‘언론인 숙청’
‘MB측근’한테 온 전화 “망신당하기 싫으면…”
[한겨레] 여현호 기자   등록 : 20120117 20:10 | 수정 : 20120118 10:32
   
“신재민 사퇴협박 몇개월 뒤…검찰서 수사”

≫ 노진환 전 서울신문 사장

신 전 차관의 전화
“스스로 물러나는게 좋을것, 며칠뒤 뭐가 있다는건 알라”
‘보이지 않는 손’ 최시중
한나라당 의원 식사자리서“최 고문이 안좋게 말합디다”
그리고 시작된 검찰수사
스포츠서울21 매각등 관련공시의무 위반혐의로 기소
1·2심 이어 대법도 무죄
정작 담당검사는 영전하더라‘형님편지’ 내 구명운동과 무관

2008년 3월6일 아침 8시25분, 노진환(66) 당시 서울신문 사장의 휴대전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신재민이에요.” “어, 차관 된 거 축하해!” “예, 사장님!” “아니, 선배면 선배지, 무슨 사장이야?” “주무부처 차관으로 전화하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 “사장님, 이제 거취를 결정해주시죠.” “뭐? 무슨 말이야?” “망신당하시는 것보다 자진사퇴로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사장추천위에서 선임돼 주주총회를 거쳐, 임기가 내년 6월 말까지야. 새정부의 뜻이라니, 너희가 쿠데타군이야? 점령군이야? 완장 찼어?” “다시 말씀드리는데, 스스로 물러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15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노 전 사장은 <한국일보>에서 오랫동안 후배 기자로 함께 일했던 신재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전화를 받고 한참이나 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건 명백한 협박이었어요.”

며칠 뒤인 3월9일 밤 9시7분, 다시 신 차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날 선 말씨름 뒤, 신 차관은 “며칠 뒤에 뭐가 있다는 건 알아두세요. 그거 알려주려고 전화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사장은 이 말을 ‘버티면 다칠 것’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 얼마 뒤 국세청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7년에 서울신문이 보유하던 스포츠서울21 주식을 인수했던 사람이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다른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국세청 직원이 ‘노진환 관련해 한 건만 불어라’라고 했다는 겁니다.” 검찰도 그즈음 스포츠서울21 주식과 경영권 양도 경위를 조사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 출신으로 여권 안에 아는 이들이 많았던 노 전 사장도 경위 파악에 나섰다. “검찰이 나를 걸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검찰 출신인) 박희태 전 의원(현 국회의장) 등에게 얘기해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검찰 수뇌부도 내 사건을 두고 ‘그건 말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막았다더군요.”

실제로 당시 검찰에선 노 전 사장 문제를 놓고 반전이 거듭됐다고 한다. 노 전 사장에 대한 본격 수사 방침이 정해질 때도 ‘안 하기로 한 사건 아니냐’라는 제동이 있었지만, 수사팀이 ‘저쪽에서 하라니까 하겠다’는 자세를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저쪽’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노 전 사장은 6월 말쯤 기소방침이 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쯤 ‘검찰 보고로는 사장님이 증권거래법상 공시위반에 해당한다고 하니, 대비해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알려주더군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당시 민정수석이 기소 방침을 보고했다는군요.”

그는 “그런 일의 배후엔 정권 차원의 ‘큰 그림’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해 6월30일 서울 마포의 한 호텔 일식집에서 고려대 후배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최시중 고문(현 방송통신위원장) 한번 만나보세요. 그분이 노 선배를 안 좋게 말합디다”란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17일, 이 의원은 노 전 사장을 만난 사실부터 부인했다.

노 전 사장은 “최 위원장이 퇴임 압박에 관여했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의 말과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하면 정부의 언론문제를 사실상 총괄했다는 최 위원장이 직간접으로 관련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 전 사장은 그해 10월22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우병우)에 의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2007년 5월 서울신문이 보유하던 스포츠서울21의 주식과 경영권을 넘기는 계약을 공시하면서 중요한 ‘부속합의서 2’를 빼고 제출한 것이 공시의무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1심부터 무죄를 선고받아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정작 무죄를 받은 담당 검사는 영전되더군요.”

노 전 사장은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임명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멀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취임 전 30분 정도 독대한 일도 있어요. 고대 출신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말했고, 신재민에 대해서도 외곽에서 쓰라고 권유했지요.”

2008년 10월에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보냈다는 ‘형님편지’가 공개돼 사퇴하라는 거센 비판도 받았다. 그는 “그 편지는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증자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상득 옹호론’이란 제목의 서울신문 3월1일치 칼럼과 함께 그날 팩시밀리로 보낸 것”이라며 “구명운동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여당과도 가까웠던 자신조차 검찰·국세청·문화체육관광부가 총동원된 ‘언론 솎아내기’는 피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 선고로 새삼 되살아난 악몽이다.

글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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