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807140147212


자대배치 첫날 '상병'된 사연..'기무 특권'은 어디서 오는가

황현택 입력 2018.08.07. 14:01 



편집자주 : 다음달 1일 국군 기무사령부를 대체할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출범합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목표로, ▲정치개입 ▲민간사찰 ▲특권의식 철폐, 세 가지 방법이 제시됐습니다. 정치개입과 민간사찰 금지는 새 사령부령(令)에 담겼습니다. 그럼 '특권의식'은 어떻게 없앨까요? 이걸로 청와대가 주문했던 '기무 해편(解編)'은 다 된 걸까요?


"넌 지금부터 상병이야."


1995년 봄이었습니다. 신병은 군기가 잔뜩 밴 몸으로 더플백을 내려놨습니다. 긴 머리에 군복 상의를 바지 밖으로 빼입은 말년 병장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군복에 갓 오바로크를 친 이등병 계급장을 손으로 '우두둑' 뜯어냈습니다. 자대배치 첫날, 얼떨결에 '작대기 하나'는 '작대기 세 개'로 2계급 특진했습니다. '이병은 잘 때에도 주먹을 펴서는 안 된다'는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머릿속이 하얘졌을 때 내려진 선임의 첫 지시는 이랬습니다.


"앞으로 일선 부대의 대위 밑으로는 '~다나까'라는 말투 쓰면 가만 안 둬."


신병훈련소 입소 순간부터 강요받았던 '~다나까' 말투를 버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수 없이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했던 '~해요체'에 다시 익숙해진 건 선임이 제대하고 난 '이병 3호봉'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선 부대 중대장이라도 불려 오면 "어~, ○ 대위님, 커피 한잔 타 드릴까요"라는 '사제 말'이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주특기 번호 '082'(*현재는 '1541'로 변경). 26개월 기무(機務) 생활 내내 군대와 사회를 구분 짓는 경계는 모호했습니다. 국방부 직할부대인 기무는 비전투 부대입니다. 도별로 설치된 ‘6○○ 기무부대’는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부대장은 사장으로 위장합니다. 유격·혹한기 훈련은 물론, 군단 전투지휘검열(군지검) 등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소규모 일선 부대로 파견을 갔을 때는 넓디넓은 내무반을 혼자 쓰다 보니 '일석 점호 인원보고!'조차 외쳐본 적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군대'와 '축구(전투체육)'는 두말할 나위 없죠. 일개 병(兵)에 불과했지만, '군대물'이 빠진 자리에는 나도 모를 '특권의식'이 스며들었습니다.



가뭇가뭇했던 옛 기억을 되살린 건 민병삼 100기무부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지난달 24일,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나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하루 전,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으니 스스로 '육군 대령' 계급장을 뗀 뒤 작심하고 '해군 대장 출신' 장관을 들이받은 겁니다.


100기무부대는 국방부 담당입니다. 100기무부대장실은 국방부 장관과 본관 2층을 함께 씁니다. '기무사령'에 근거 규정도 명시되지 않은 셋방살이가 건물주와 함께 '로열층'에 사는 셈입니다. 국방부 출입 시절, 더 신기했던 건 전화번호입니다. '1호차', '1호 관사' 등 '1호'는 지휘관의 상징입니다. 최고의 위치에 부여하는 숫자이죠. 그런데 국방부 전화번호의 '1000번'은 100기무부대장이, 국방장관을 비롯한 육군 지휘관의 군용 전화는 모두 '6000번'을 씁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로선 100기무의 기득권을 허물 '용기'가 없었고, 100기무 입장에선 알아서 꼬리를 내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기무사 권력의 원천은 '동향 보고'입니다. 크든 작든 모든 일선 부대에는 기무사 요원들이 파견을 나갑니다. 보통 '투스타'(사단)급에는 중령이, '쓰리스타'(군단)급 부대에는 대령이 나갑니다. 기무사는 이를 '지원·협조 업무'로 포장하지만 정작 상대편은 '밀착 감시·견제'로 느낍니다. 합법적 '감청'이나 '망원'(網員), '득문'(得文:남에게서 듣고 앎) 외에도 보폭 넓은 활동을 통해 대상 지휘관의 동향을 파악하고, '인사 세평' 따위의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보고서에는 지휘관의 충성도와 성실성, 국가관은 물론, 각종 사생활과 비위 여부 등이 모조리 담깁니다.


과거 기무사령관들은 장관을 제치고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수집된 주요 군 지휘관 동향을 대통령 독대(獨對)를 통해 'VIP 직보(直報)'했습니다. 대통령이 기무 보고서를 '애독'하는 만큼, 또 기무사령관의 '귓속말'에 귀 기울이는 만큼 기무의 특권의식은 커갔습니다. 진급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일선 지휘관들이 까마득한 후배인 '기무부대장'에게 쩔쩔매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실제로 기자 역시 '기무 보고서'를 출처로 기사를 썼을 때는 반론보도나 정정보도 등 이른바 '탈'이 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풍문이나 '~카더라 통신'이 아닌 육하원칙과 팩트(Fact)에 기반을 둔 기무 보고서는 신뢰도가 높기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말년 병장이 이등병에게 상병 계급장을 달아준 일이나, 20여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대령이 국방 장관과 계급장 떼고 '맞짱'을 뜬 일은 저로선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계엄령 문건 파동' 와중에 기무사 업무 범위나 정보 수집 시스템 외에도 기무 특유의 '특권의식'을 지적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기무사의 특권의식을 내려놓도록 할 것입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청와대의 통수권 보호자를 핑계로 권력 남용이나 이탈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권의식을 갖고 활동했단 말이에요." (장영달 기무사 개혁위원장)


"정치개입·민간사찰·특권의식, 세 가지는 말끔히 씻어내 실추된 부대 명예를 완벽히 회복하겠습니다."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사)


국방부가 6일 입법 예고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대통령령) 제정안을 보면 기존 기무사령과 달리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그럼에도 안보지원사 업무를 규정한 조항은 기존 기무사령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오히려 국방부에 설치된 100기무부대의 경우 새 안보지원사령에 근거 규정이 신설됐습니다.


군이라는 장막 안에 한 겹 더 장막을 친 기무사는 "통수권을 위해하는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걸 지상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특권'과 '특권의식'이 필요했습니다. '해체'나 '해편' 등 말은 많았지만, 이번 개혁안으로 기무의 '특권 의식'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일탈의 꼬리가 다시 잡혔을 때, 6000번의 국방 장관이, 1000번의 기무사령관에게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지시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합니다.


황현택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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