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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동명왕릉

<16> 연꽃 무늬 가득한 무덤, 불교계 이상 세계 표현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06-16 15:08


동명왕릉 외부 전경


정릉사 터는 동명왕릉임을 밝혀 주는 확실한 증거


세계 문화 유산에 오른 고구려 무덤 가운데 평양시 동남쪽에 위치한 동명왕릉이 들어 있습니다. 동명왕(추모왕)은 고구려를 처음 세운 임금입니다.


그런데 그의 무덤이 고구려가 건국된 압록강 북쪽이 아닌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지요? 하지만 이 무덤을 동명왕릉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여러 중요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무덤 위해 만들어진 정룡사 터 발견


먼저 무덤 주변에는 동명왕릉비ㆍ정자각ㆍ돌짐승 등 조선 시대 사람들이 만든 유물들이 즐비합니다. 옛 지명도 왕릉동이고요.


주변에 있는 진파리무덤 떼는 마치 이 무덤을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답니다. 또 무덤은 한 변의 길이 22 mㆍ높이 8.15 m로 주변 무덤보다 훨씬 크답니다.


동명왕릉 연꽃 무늬


무덤의 형태도 특이합니다. 벽화가 그려진 무덤들은 대부분 안에 돌로 방을 만들고, 바깥은 흙으로 덮은 형태입니다. 그런데 동명왕릉은 무덤 밑 둘레에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1.5 m 높이로 3층짜리 둘레를 둘렀습니다. 이처럼 동명왕릉 외에 돌로 밑 둘레를 두른 무덤은 동명왕릉 말고는 역시 왕릉으로 보이는 용강 큰무덤 뿐입니다.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무덤 앞에서 정릉사의 터가 발굴됐다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나온 질그릇과 기와 조각에서 고구려ㆍ정릉사ㆍ릉사 등이 적힌 글자가 나왔습니다. ‘릉사’는 무덤을 위해 만들어진 절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정릉사 터에서는 탑ㆍ강당 등 일반적인 절에 필요한 건물 터 뿐만 아니라 궁전에서나 필요한 건물의 터와 창ㆍ활촉 등 무기류도 발견됐습니다. 이들 유물을 통해 왕과 그 가족이 호위 무사들을 거느리고 정릉사에 가끔씩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왕과 그 가족이 이곳에 온 건 아마도 동명왕릉에 참배하기 위함이겠지요?


완벽한 배수 등 최고의 건축 기술 자랑


동명왕릉은 크게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널방은 폭 4.21 m ×4.18 m, 높이 3.88 m로 고구려 벽화 무덤 가운데 가장 넓답니다. 또 두 개의 돌문을 설치하고, 완벽한 배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등 최고의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40년에 일본인에 의해 도굴돼 많은 유물들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동명왕릉 내부


다만 무덤 안에서 104 개의 연꽃 그림이 확인되었는데, 전체를 다 복원하면 641 개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 벽화 무덤에는 이처럼 연꽃 무늬가 천장 등 여러 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동명왕릉을 비롯해서 산연화총 등은 무덤 안 대부분을 연꽃 무늬로 치장해 놓았답니다. 5~6세기 고구려에서는 무덤 내부를 장식 무늬로 치장하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연꽃들이 가득한 무덤 안을 한 번 상상해 보도록 할까요?


지름이 12 cm나 되는 활짝 핀 형태의 연꽃 무늬는 6 개의 꽃잎이 교차된 모습입니다. 꽃술과 잎맥은 생략돼 있지만, 꽃잎마다 둥근 점 무늬를 찍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회색 바탕에 꽃잎의 끝은 붉은색, 입 안의 굵은 선은 보라색, 둥근 점은 검은색으로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한 무덤 안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인 ‘연화 세계’이겠지요?


최근 복원된 정릉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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