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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PD들 재벌, 검찰개혁 말하면서 자기들 일은 침묵”

방송계 프리랜서들, 증언대회에서 이재학 PD 거듭 호명… 비정규직 외면 언론사에 “사회적 약자에 관심? 자격 없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승인 2020.04.30 11:00


방송계 프리랜서의 노동자성을 다룬 집담회에서 “방송사·언론사들은 사회적 약자 문제를 다룬다고 말할 자격 없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언론사는 프리랜서 고용 남용이 가장 심각한 곳인데 자정 의지가 부족할 뿐더러 과도한 법적 대응으로 프리랜서들을 괴롭힌다는 지적이다. 


2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건물에서 열린 “방송현장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 증언대회” 참석자들은 방송사 등 언론사들이 비정규직 남용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청주방송 이재학PD 대책위)’가 주최한 집담회다. 


이재학 PD 동생인 이대로씨는 여는 발언에서 “일한 만큼 보상받는 건 당연한 건데, 세상이 나아진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이런 (방송계같은) 바닥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우리 형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형의 명예회복뿐 아니라 그렇게 바랐던 동료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는 게 유족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4월2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건물에서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주최로 “방송현장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4월2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건물에서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주최로 “방송현장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고 이재학 PD는 2004년 청주방송에 조연출로 입사해 2011년부터 연출PD를 맡았다. 근속 14년 째인 2018년 기획제작국장에게 프리랜서들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직후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 PD는 “정규직PD와 똑같이 일했다”며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1년 반 동안 다퉜으나 패소했다. 이 PD는 “억울해 미치겠다. 왜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증언에 나선 PD·작가·기술스태프·아나운서 등 프리랜서 6명 모두가 “우리가 이재학”이라고 했다. 지역방송사 및 본사, 종합편성채널, 외주제작사 등에서 일해봤다는 방송작가 A씨는 “이재학 PD 사망 소식을 접하고 우리 일이라고 느꼈다”며 “제가 거친 모든 곳에 이재학 PD가 있었다. 우리가 이재학 PD였다”고 말했다. 


TJB대전방송과 부당해고 문제로 법적으로 다투는 김도희 아나운서는 영상 증언을 통해 “일개 노동자가 방송국과 싸우는 일은 정말 힘들다. 싸우는 중 이재학 PD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아 유족도 뵀다”며 “일주일 간 많이 울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관심을 받는 현실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10여년 드라마 현장에서 일한 스태프 B씨는 기자·PD 등 언론인들의 권위 의식을 비판했다. B씨는 “재벌개혁, 검찰개혁을 말하는데 자기들 일은 침묵한다. 드라마 현장 문제를 다 알고 있으면서 자기 회사를 지키기 위해 침묵 카르텔을 짠다”고 꼬집었다. B씨는 2012년 등 방송사 장기 파업으로 수입을 벌지 못한 때를 언급하며 “당시 ‘기자와 PD가 (방송사의) 양대산맥이고 기술팀은 하빠리(지위가 낮은 사람을 칭하는 은어)’라는 말이 있었다”며 “기자·PD는 3~4번 시험을 치러 입사한다지 않나. 스태프들이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줄 거라고 말들을 했다. 우월의식이나 권위의식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B씨는 “방송국 관계자들은 해외를 많이 찾으면서도 해외 방송제작에 대해선 말을 안한다”며 “해외에서 드라마를 찍었던 한 영화감독이 유일하게 세트 촬영을 한 장면이 있었다. 촬영하려던 날 눈이 많이 내려 방송사 BBC쪽에서 안전 사고 위험 때문에 촬영을 못하게 해서였다. 이 같은 일이 한국에서 가능한가”라 되물었다. 그는 “방송하기 전에는 반말을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현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다 반말을 했다. 나보다 어린 사람도 반말을 했다”고도 지적했다. 


작가 A씨는 “시사 프로그램을 할 때 비정규직 아이템을 다뤘는데, 방송작가 노동자성을 외치는 와중에 이 같은 프로그램을 다루니까 당시 사장이 대본 검수를 했다”며 “혹시 내용에 방송 비정규직 문제가 포함됐을까봐 그랬다. 과연 이들이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할 자격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 아나운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이미 여러번 노동자성을 인정받겠다며 법적 싸움을 거듭해온 점을 들며 “소송 말고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갔고 국민청원도 진행하고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하며 여러 방면으로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어떤 방송국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이재학도 우리도 무늬만 프리랜서”


“우리는 노동 대가로 임금을 받는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말도 여러 차례 나왔다. 10년차 자막CG 작업자인 윤미영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장은 “보도국 자막 작업을 한다. 오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동료 CG 작업자와 교대로 작업한다. 시사프로, 특집프로, 스포츠 중계프로그램 자막CG도 맡는다”며 “(야구 개막 시즌인) 3월 말부터 주말 내내 중계하면 벚꽃이 지는지도 모른 채 부조정실에서 일만하다가 계절이 바뀐다. 스포츠 성수기 시즌의 주말엔 개인 일정을 잡지 않는 게 암묵적 룰”이라 말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는 “무늬만 프리랜서 전에 무늬만 계약직도 존재했다”며 방송사의 비정규직 남용을 꼬집었다. 대전MBC 경우 근래까지 여성 아나운서 20여명을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채용했고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뽑았다. 유 아나운서는 대전MBC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차별 진정을 넣었고 28일 인용됐다. 


프리랜서로 일했던 유 아나운서는 “계약직 아나운서와 제 업무는 데칼코마니였다. 입사방식, 입사 전형, 소속 국, 업무내용 모두 같았다”며 “하루 3~4개 프로그램을 배정받았고 8시간 이상 근무했으며 많게는 15시간 일했다. 주말 뉴스 당직도 했고 사원증, 명함도 나왔으며 자리도, 컴퓨터 같은 사무기기도 제공받고 회사 지시에 따라 회의에도 참석했다. 정규직처럼 종속적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김 아나운서는 정부와 사법부에 “입증책임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그는 “노동자에게 노동자성을 입증하라고 할 게 아니라 정보가 많은 방송국이 왜 비상식적 고용 형태를 수년 간 유지했는지, 노동법을 위반하려는 고의가 없었는지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아나운서도 “첫 고용 형태가 사측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정규직으로 들어왔느냐 여부가 입사 과정의 차이를, 입사과정은 4대보험, 징계 여부, 취업규칙 적용 차이를 만들어낸다”며 “사법부와 국가기관, 고용노동청 등에서 이 무기는 명백히 인정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몇 가지로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재학 PD도 마찬가지로 열에 아홉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지만 사측이 고의로 만든 1에 정규직이 아니란 판단이 나왔을 것”이라며 “이게 계속 통하면 회사는 계속 프리랜서를 뽑고 지금처럼 해고할 것이다. 국가기관은 사측에 현혹되지 않고 근무 내용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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