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guanyou.egloos.com/4572281

※이글의 많은 부분은 [박현배의 발해사입니다.]를 참고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발해의 풍습

  

발해는 여권이 강한 사회로, 발해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다고 보여진다.  정효공주묘지문에는 발해 사회에의 유교적인 경향이 나타나 있지만, 유교는 발해 사회의 풍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발해 사회가 현재와 같은 남녀평등 사회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가족 구성에서 일부일처제가 기본이 되었다.  이것은 발해 무덤 발굴에서 확인되는데, 보통 중앙에 부부 한쌍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남송 시대 때 쓰인 [송막기문(松漠紀聞 : 중국 남송(南宋) 때에 홍호(洪皓)에 의해 저작된 금(金)나라의 견문록.)]에는 발해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부인들은 모두 사납고 투기가 심하다.  대씨는 다른 성씨와 서로 맺어 10자매를 이루었는데, 번갈아 남편을 감시하여 남편이 측실(첩)을 두는 것과 다른 여자와의 연애(교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일이 알려지면 반드시 독을 넣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도록 꾀한다.  한 남편이 범한 바가 있어 아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9인이 모두 일어나 그를 꾸짖으면서 다투어 증오하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거란, 여진의 여러 나라에는 모두 여창(창녀)이 있고 낭인(일반사람)들은 모두 소부(첩), 시종(몸종)들을 가지고 있으나, 오직 발해에는 이들이 없다." -역 송기호 교수-


송막기문에 나오는 위 내용은 발해 지배층의 생활상을 말한 것이다.  성을 소유한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집단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대 국가에서 여창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신라 시대 때 김유신이 간 곳이
 창가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하기가 곤란하다.  위의 사료를 참조했을 때, 발해시대에는 매춘이라는 것이 존재 하지 않았으며 첩 제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발해에서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상상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홍라녀'의 이야기에서도 발해시대의 여성의 지위를 가름할 수 있다.  발해시대 때 ‘홍라녀’가 국왕을 대신해서 장군이 되어, 발해를 침공한 거란을 물리치고 남편을 구해온다는 내용을 담고있는 [홍라녀 전설]은 중국 동부북 조선족사회에서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설에서 여자가 장군이 되어 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홍라녀 전설]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홍라녀 전설은 영화[무영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실을 종합한다면, 발해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상당히 높았다고 여겨진다.  발해뿐만 아니라 한국사에서 조선 중기 이전까지 여성들의 지위는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 봤을 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이유를 불교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불교를 믿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았어야 하는데, 그러한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과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은 민족적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in[발해의 역사]/ 질문자 : ghkdalsgml12 / 답변자 :  corea_blue / 2003-03-20 22:26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A+ic71WXP7cXBJoIl0QBmIJiBWkRvhn3

박현배의 발해사입니다.  / http://www.parhae.org/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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