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80771.html?_fr=mt2


떡국 대신 송편 먹기도 하지만 ‘설레는 설’은 남북이 마찬가지

등록 :2019-01-31 19:04 수정 :2019-02-01 07:10


우리가 몰랐던 북한

번외편 l 북한의 설날


북녘에서는 설에 뭘 먹을까 ‘나이 한살 더 먹는’ 떡국, 필수는 아냐

지역에 따라 송편 먹는 집도 많아, 양강도선 돼지국수·감자 만두도, 차례상 차림·세배 도는 풍경은 같아


‘민속명절’의 슬픈 역사, 남녘에서 ‘구정’ ‘민속의 날’ 불리다

1989년에야 ‘연휴+공휴일’ 된 것처럼 북녘에서도 봉건잔재라며 철폐, 2003년부터 연휴로 지정돼


설날이었던 2017년 1월28일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설 맞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설날이었던 2017년 1월28일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설 맞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퀴즈. ①북한에서도 설을 쇠나요? ②며칠 쉬나요? ③떡국은 먹나요? ④세배는 하나요? ⑤차례는 지내나요?


북한에서도 설을 쇱니다. 1월1일 양력설은 이틀, 2월5일 음력설은 사흘을 쉽니다. 떡국도 먹습니다. 다만 남쪽처럼 ‘필수’는 아닌 듯합니다. 설 떡국을 먹는 지역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세배도 하고 차례도 지냅니다.


음력설은 북녘에서 한식, 추석과 함께 ‘민속명절’입니다. 언젠가 최정실 조선민속박물관 연구사가 <조선중앙방송>에 나와 설 전통음식의 유래와 조리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북녘에서도 설날에 떡국을 먹으며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최 연구사 말로는, 떡국은 원래 꿩고기를 넣어서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랍니다. 꿩고기가 없으면 닭고기를 대신 써도 된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녹두지짐은 설음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메뉴라고 최 연구사는 말합니다.


고기만 대체재가 있는 게 아닙니다. 설날에 떡국 대신 송편을 먹는 집도 많답니다. 콩을 넣은 송편 말입니다. 남녘에선 송편은 설이 아닌 추석 때 먹는데, 북녘에선 설에도 송편을 먹는다는 겁니다. 콩을 넣은 송편이 떡국보다 쌀이 덜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긴 한데,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에서는 떡국 대신 녹말로 만든 국수를 넣은 돼지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이 중요한 설음식이랍니다. 감자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 감자로 만두도 빚어 먹는답니다. 산지가 많아 벼농사가 어려운 사정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양강’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북녘에서 가장 유명한 감자 산지인 대홍단군이 양강도에 있습니다.


설 명절이었던 2017년 1월28일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연날리기를 비롯해 전통 놀이를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설 명절이었던 2017년 1월28일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연날리기를 비롯해 전통 놀이를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차례상도 차립니다. 과일, 나물, 지짐(전), 생선, 떡 등을 올린답니다. 남녘과 별 차이가 없죠. 차례를 지내고 나면 집안 어른뿐만 아니라 동네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한답니다. 윷놀이, 오락회(노래자랑), 거리 공연 등 “설날은 정말로 즐겁게 논다”고 합니다. 남녘의 1970~80년대 설 풍경과 비슷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음력설은 오랜 탄압과 차별에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은 민중과 인민의 명절입니다. 남녘에서 음력설이 공식적으로 ‘연휴+공휴일’이 된 때는 1989년입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를 몰아낸 뒤에야 성취한 투쟁의 성과입니다. 이승만·박정희는 크리스마스는 공휴일로 지정하면서도 유독 음력설만은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극장 포스터에 “구정 프로”라는 문구를 넣을 수 없게 경찰을 동원해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양력설을 ‘신정’, 음력설을 ‘구정’이라 불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중들은 음력설을 ‘진짜 설날’로 여겼습니다. 전두환이 대통령 노릇 하던 1985년 민주정의당의 요청에 따라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아 하루짜리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루 쉬는 민속의 날’이 ‘연휴와 함께하는 설날’로 바뀐 때는 1989년입니다.


설날에 줄넘기를 즐기는 북녘 어린이들. 2009년 1월25일 <에이피>(AP) 통신이 평양발로 서비스한 사진이다. 평양/AP 연합뉴스

설날에 줄넘기를 즐기는 북녘 어린이들. 2009년 1월25일 <에이피>(AP) 통신이 평양발로 서비스한 사진이다. 평양/AP 연합뉴스


북녘에서도 1967년부터 1988년까지는 음력설이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1967년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양력설만 빼놓고 나머지 민속명절을 모두 철폐한 탓입니다. 남이나 북이나 ‘전통’과 ‘봉건잔재’를 구별하지 못한 최고지도자를 둔 탓에 벌어진 설날의 슬픈 역사입니다. 북녘에선 1989년 음력설이 다시 민속명절로 지정됐고, 2003년부터 연휴가 됐습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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