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206103000515


[취재파일] 재판 불복, 대법원장이 자초했다

임찬종 기자 입력 2019.02.06. 10:30 수정 2019.02.06. 10:36 


분명히 해둘 것을 분명히 하고 시작하자. 김경수 경상남도 도지사에 대한 판결 이후 민주당이 보여준 담당 재판장 성창호 판사에 대한 공격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김경수 지사가 법정구속 직후 발표한 메시지에서 밝힌 것처럼 성창호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각별히 가까운 인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성창호 판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로 근무할 때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기록에 포함된 수사 정보를 윗선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 유죄 판결 이후에야 쏟아진 비판…민주당의 분명한 잘못


이 같은 사실이 김경수 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 이후에 쏟아진 민주당 의원들의 도 넘은 주장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경수 지사가 법정 구속되자 성창호 판사가 "양승태 키드"이며, 김 지사에 대한 판결은 "양승태 사단"의 반격이라고 주장하며 법관 탄핵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창호 판사가 사법 농단에 관여한 법관이기 때문에 김 지사에 대한 성창호 판사의 판결도 잘못된 것이거나, 최소한 공정성을 상실한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민주당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정말로 성창호 판사의 사법 농단 관여 사실 그 자체라, 김 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 이전에 성 판사에 대한 비판이나 재판배제 요구가 없었던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성 판사의 사법 농단 연루 의혹은 김 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 훨씬 이전에 공개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창호 판사가 재판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면 재판 당사자인 김경수 지사는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어야 했고, 민주당은 성 판사에 대한 재판업무 배제를 요구하거나 탄핵을 추진했어야 옳다. 하지만 유죄 선고 이전까지 김 지사도 민주당도 성 판사가 재판을 맡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선고 직후에야 쏟아진 격렬한 반응은 사법 농단 사건을 '우리 편'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공격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 재판 불복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대법원장에게 있다


그러나 이같은 사태를 초래한 근본적 책임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성창호 판사의 사법 농단 관여 의혹은 김 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14일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공소장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3달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김명수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성창호 판사의 사법 농단 관여 의혹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만약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언급된 성창호 판사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법원행정처는 이것이 징계나 재판배제 사유에 해당하는지 따져본 뒤 그 판단을 발표했어야 한다. 만약 검찰 수사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 또한 공식적으로 발표해 성 판사의 재판에 쏟아지는 의혹을 해소했어야 한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드러난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성창호 판사뿐만이 아니다. 임종헌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법관 수십 명의 사법 농단 관여 의혹이 설명돼 있다. 공소장에는 성창호 판사처럼 영장심사 과정에서 알게 된 수사 정보를 윗선에 보고한 법관들도 있고, 마치 변호사라도 된 것인 양 국회의원들에게 재판 대응 방식을 코치한 판사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을 청와대 뜻대로 끌고 가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심의관들, 법원행정처의 요청을 받자 자신이 이미 발표한 결정을 뒤바꾼 법관 등 여러 법관들의 부당 행위가 상세히 기술돼 있다. 대부분 지난해 5월 25일 마무리된 대법원의 자체 진상 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이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내부 진상조사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법 농단 관여 의혹이 새롭게 드러난 수십 명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 새로 밝혀진 사법 농단 관여 법관들…검토만 하고 있는 대법원장


이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임종헌 전 차장의 (2018년 11월 14일 접수된) 1차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 중 행정처가 별도로 확인할 수 있었고 징계의 필요성이 있는 부분은 13명의 피청구인에 대한 (지난해 12월 발표된) 징계에 반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종헌 전 차장의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을 분석하여 추가 조사 및 징계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추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기소가 있을 경우에도 역시 검토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법원에 접수된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공소장에 언급된 내용 중, 지난해 6월 15일에 이미 징계가 청구돼 심사가 진행 중이었던 법관 13명과 관련된 내용만 확인해 징계 심사에 반영했을 뿐, 나머지 법관들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 및 징계의 필요성을 검토"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 징계가 청구된 법관 13명 가운데 실제로 징계를 받은 법관은 8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재판업무가 배제되고 징계를 받은 판사 5명 가운데 3명도 올해 초부터 재판에 복귀해 현재 재판을 하고 있다.)


대법원 입장에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검찰이 추가로 밝혀낸 사법 농단 관여 의혹 법관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른다. 문제는 대법원이 3달 가까이 "추가 조사 및 징계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동안에도 연루된 법관들 대부분이 지금도 법정에서 재판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명시된 임종헌 전 차장의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이후에도, 이들은 수십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유죄와 무죄를 선고하고, 수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민사적 책임의 유무를 판단했을 것이다. 김경수 지사에 대판 판결 이후 벌어진 재판 불복 사태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도 전국 수십 곳의 법정에서 자신의 재판을 맡았던 법관들의 사법 농단 관여 의혹을 알게 된 재판 당사자들이 재판에 대해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사법 농단 밝혀놓고 사법 농단 연루 법관에게 재판받으라는 법원


사법 농단이라는 방대한 사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한 의혹'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법 농단 사건에 의미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앞으로 사법부에서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법 농단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이렇게까지 힘겹게도 재판의 독립 바로 세워서 통해 얻고자 한 것은 결국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법 농단 관여 의혹 법관들에 대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우유부단함은 재판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번 무너뜨리고 있다.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사법농단 사건을 단죄하면서도 정작 재판 당사자들에게는 바로 그 사법 농단에 관여한 의혹이 불거진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으라고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지금도 재판 당사자 대부분은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 법관이 사법 농단에 관여한 의혹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후적으로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특히 불리한 재판 결과를 받아든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받은 재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 재판에 대한 신뢰 회복이 어려운 이유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김경수 지사 관련 판결에 대한 비난과 관련해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서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재판 불복 사태를 초래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재판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김명수 대법원장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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