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652093


그 시작은 '틱톡 할머니'... K팝 노쇼시위 막전막후

[현지 리포트] BLM 운동에 뛰어든 Z세대의 21세기형 저항

최현정(baltic) 등록 2020.06.22 17:46 수정 2020.06.22 17:46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 털사 BOK센터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행사장 내 2층 객석에 빈자리에 눈에 띈다. ⓒ AP/연합뉴스


엄청난 인파로 행사장이 가득 찰 것이라고 했다. 미처 입장하지 못할 청중들을 위해 야외무대도 준비했다. 아직 'Stay at home(자택 대기)' 명령이 내려진 주에선 10명 이상 모일 수 없다. 경제 활동이 시작된 주에선 확진자 급증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코로나19 감염 시 주최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이 필요할 정도로 인산인해가 염려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폭망'.


2만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스타디움의 공식 입장객은 6200명. 관객이 없어 야외무대는 철거했다. 입장객이 저조하자 티켓이 없는 이들도 입장시켰다. 그래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1만9000석 규모 경기장의 1/3은 텅 빈 상태. 지난 주말인 20일(현지시각)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본격적인 선거 유세 현장이다. 


"무려 백만 명이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열리는 토요일 밤 선거 유세 티켓을 신청했다." 


지난주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만했다. 현장 연설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오클라호마 주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장권 신청자가 예상치의 10배였다. 대중 집회를 금지하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지지율 반등에 이만한 전시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 기대는 이어졌다.


그러나 털사 다운타운에 위치한 BOK센터의 입장이 시작되면서 그 예측은 수정돼야 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라고 쓰인 지지자들의 빨간색 모자와 대비돼, 경기장 내 진한 파랑 의자의 썰렁함이 더욱 돋보였다.


팬데믹 이후 다시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대선 유세엔 전 미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야심만만하게 추진한 행사는 4년 전 눈 속에 치른 그의 취임식보다 더 썰렁한 모습이었다.


Z세대의 '노쇼 프로테스트'

 

▲ 트럼프 유세 흥행 참패와 관련해 K팝 팬들과 틱톡 이용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트윗(출처 : @bangtanpenguins) ⓒ twitter


 

트럼프 대선 캠프의 대변인은 이번 흥행 저조의 원인을 과격한 흑인 인권 시위대 때문이라고 했다. 털사의 시위대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행사장 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나 CNN 등이 분석한 원인은 달랐다. 


유세 다음 날인 21일 일요일, 미국의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두 단어를 쏟아냈다. '틱톡 10대들(TikTok Teens)' 그리고 '케이팝 덕후(K-pop Stans)'.

 

틱톡 이용자들, 털사의 대통령 유세 현장을 누비다 - CNN

케이팝 팬들과 틱톡 10대들이 랠리 예상 입장객을 부풀렸나 - < USA투데이 >

틱톡 10대와 케이팝 덕후들이 유세를 침몰시켰다 - <뉴욕타임스>

털사 유세에서 케이팝 팬들에게 혼쭐? - <파이낸셜타임스>

케이팝 열성팬들의 성공적인 경선 사보타주 - <벌처>


언론은 트럼프의 털사 유세가 실패한 건 SNS에 능숙한 'Z세대'의 조직적인 방해 시위 때문이라고 했다. Z세대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들로,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를 지칭한다. 선거권은 없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력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에 대한 익숙함, 거기에 추진력을 가진 세대다. 그들이 지난 몇 주간 틱톡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 벌인 일들이 심상치 않다. 


그중 하나가 트럼프 캠프에서 유세 신청을 받기 시작한 날 짧은 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아이오와주에 사는 메리 조 로프라는 여성은 지난 11일 자신의 틱톡에 영상(https://vt.tiktok.com/DxL7C5/) 하나를 올린다. '틱톡 할머니'란 별명을 갖게 된 그녀는 노예해방 기념일(6월 19일, 준틴스 데이)에 흑인 학살의 역사가 있는 털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하는 것에 분노하며, 캠페인 사이트로 몰려가 '유세에 예매만 하고 참석하지 말기'라는 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한다. 그녀의 영상은 하룻밤 사이 25만 회가 넘게 클릭됐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도 옮겨져 큰 호응을 불러 모은다. 

 

다른 틱톡 이용자처럼 케이팝(K-POP) 팬들도 움직였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흑인 인권 운동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중이다. 인권 운동의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에 연결되는 해시태그 #WhiteLivesMatter('백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뜻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반대하는 구호)를 선점해 방해했고, '불법 시위자' 색출을 위한 지역 경찰국의 목격자 앱을 폐쇄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움직임을 언론들이 계속 주목해 보도해줄 정도다.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 등은 팬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올린 케이팝 가수들의 '짤(짧은 영상)'과 노래와 이미지로 도배됐다. 이 귀엽고 코믹하고 멋진 영상으로 사이트 본래의 목적을 훼손해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주로 10, 20대 초반 나이대로 추정되는 케이팝 팬들의 SNS 활용 능력과 전투력은 지금 미국 인권 운동에 유쾌하고 든든한 응원군이 되고 있다.  

 

▲ 20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센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1만9천석 규모의 유세장에는 관중이 3분의 2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 AP/연합뉴스


 

"노쇼 프로테스트(시위)"라고 명명되기도 한 이번 시위는 일사불란했다. 털사 입장권을 예매한 이들은 공화당 캠프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인증 후 바로 지우는 용의주도함도 보여줬다. 미성년자인 자신의 전화번호 대신 캠페인 본부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부모의 번호를 입력하기도 했다고. 토요일 밤에 뉴스를 보며 낄낄대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이번 노쇼 사태의 '범인'을 알게 된 부모들의 인증글도 SNS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위에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행사 직전까지 상황 인식을 못한 책임을 면하고자 경기장 밖 과격한 시위대 탓을 한 캠페인 책임자에게, 민주당의 떠오르는 샛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 의원은 따끔한 트윗을 날렸다.  


"무슨 소리. 넌 지금 틱톡 쓰는 10대들에게 당한 거잖아."


그리고 그녀는 추가로 포스팅했다. 


"케이팝 연합군들, 우리는 정의를 위한 너희들의 싸움도 감사히 생각해." 

 

친 트럼프 성향의 신문인 <드러지 리포트>조차 "100만 없는 100만, 대규모 없는 대규모(Mega less mega)"라고 조롱한 '노쇼 프로테스트'에 대해 어느 언론이 남긴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Z세대는 막을 수 없다." 미 언론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중계방송 중이다. 


케이팝 세대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불씨를 지피더니, 폭력적 위협까지 가하면서 감히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을 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고? 우리는 11월에 당신을 투표로 쫓아낼 거야."


86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달 말에 올린 트윗이다. 1960년대 흑인 운동을 탄압할 당시 경찰청장의 멘트를 트럼프 대통령이 인용한 것을 두고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유명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들은 거의 빠짐없이 팬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에 공감하느냐고.

 

BTS(방탄소년단)나 블랙핑크, 갓세븐의 팬들이 자신들의 스타에게 지금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흑인 인권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곤란하게 만들거나 골탕을 먹이자는 게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스타들이 앞장서 주기 바라는 신뢰와 연대감의 표시다. 

 

▲ 방탄소년단(BTS)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 ⓒ twitter


그래서 6월 8일 CNN 보도는 의미 있다. BTS와 팬클럽 아미가 도합 200만 달러를 흑인 인권 단체에 기부했다는 보도다. BTS의 100만 달러 기부 소식에 팬클럽 아미가 곧바로 같은 금액을 매칭해 기부한 것. 더불어 CNN은 BTS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도 함께 소개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BlackLivesMatter"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BTS 팬을 비롯한 케이팝 팬들이 흑인 인권 운동의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됐다고 보도한다. 모금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여러 캠페인 등에 팬들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는 세계인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우리 케이팝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변화다 싶다. 의도를 했건 안 했건, 지금 우리 케이팝 가수들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무대에 나선다는 것은 단순히 그곳에서 돈만을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팬과 또 그 팬들이 속해있는 사회에 재능을 나누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그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고 있는 우리 케이팝의 주인공들이 그래서 더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들을 사랑하는 미국 팬들의 많은 수가 올 11월엔 투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권자로서, 멋진 나라를 만드는 데 한 표를 던지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케이팝 팬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자로서의 연습을 신나고 멋지게 즐겁게 하고 있는 중이니까.


Z세대와 케이팝 세대의 건투를 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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