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02119.html?_fr=mt2


“아베 측근들, 외무성 따돌리고 ‘보복’ 주도… 일 지식층도 비판”

등록 :2019-07-17 09:36수정 :2019-07-17 13:44


박병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ㅣ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일본 여론주도층은 “아베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비판적

일반 국민 사이엔 ‘보복’ 찬성 높아… 지식층과 인식 괴리 

일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 비밀리에 준비, 외무성도 당혹


한·일 기업, 한국정부 기금 출연하는 ‘2+1 방안’ 논의해야

‘개인 권리, 국가 합의로 완전 소멸할 수 없다’는 게 국제법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면 오히려 한-일 협상 가능성 커질 것 


이원덕 국민대 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원덕 국민대 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일 간 첨예한 과거사 갈등이 무역 갈등으로 번졌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반발해온 일본이 최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의 수출규제 조처를 취한 데 이어 지난 주말엔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가 명단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면충돌로 치닫는 한-일 관계, 배경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또 해법은 무엇일까. 한-일 관계 전문가인 이원덕(57)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를 만나 물었다. 지난 보름간 일본에 체류하다 13일 귀국한 이 교수는 “일본의 경제 보복 발표는 총리실 등 아베 총리 측근들과 경제산업성이 기습작전 하듯 단행했고 다른 부처는 몰랐다고 한다”며 “일본 언론과 지식층 사이에선 비판적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해법과 관련해선 “한-일 간 외교 협상으로 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정 안되면 대안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져가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1시간30분 남짓 진행했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예상 밖이다. 무역 보복을 한 배경은 뭐라고 보나?


“일본 정부가 설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신뢰관계 훼손이 하나이고,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부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는 게 또 하나다. 그러나 내심은 우선 우리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재단을 해산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 대법원의 징용피해 배상 판결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만이 누적돼 이번에 폭발한 것 같다.”


―일본이 무역 보복을 취한 시기가 좀 뜻밖이다. 우리 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압류재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이뤄지는 내년 초쯤에나 일본이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나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많이 앞당겨졌다.


“나도 시점이 다소 당겨져 의아하게 생각했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재판 결과에 속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대항 조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 일본 총리관저는 여러 부처에서 올린 대항 조치 리스트를 치밀하게 정리해 100여개의 보복 리스트를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한 것 같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6월 말 오사카에서 열렸다. 아베 총리가 의제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올렸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보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21일 참의원 선거가 있는데, 이는 작은 변수는 되겠지만 일본 국내 정치 일정 때문에 보복 조치를 급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우 치밀한 준비와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내용을 잘 보면, 당장 금수 조처 단행으로 가는 건 아니고 금수로 갈 길을 열어놓고 정부가 재량권을 갖겠다는 것이다. 시기를 예상보다 앞당긴 데엔 이런 부분도 검토된 것 같다.”



―최근까지 일본에 머물다 지난 주말에 귀국했는데, 직접 느낀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총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국난 상황처럼 인식해서 크게 이슈화하고 있는데, 일본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게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연금개혁이나 아베노믹스 같은 국내 문제가 쟁점이다. 일본의 주요 언론에서는 아베 총리의 보복 조치를 낮게 평가한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도쿄신문> 등이 일제히 비판적인 사설을 실었다. 정책 전문가나 전직 공무원, 신문사 논설위원들을 만나보면 대개 ‘아베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일본 산업에도 피해가 올 텐데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얘기도 들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동안 한국의 강제징용 재판이나 위안부 조처에 대해 일본 대중 사이에선 상당한 불만이 누적됐던 게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대항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기류는 있었던 것 같다. 일본 국민들 사이엔 우리 대법원의 징용 판결이 부당하다고 보는 의견이 70%가 넘는다.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됐는데 정부가 방치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찬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지식층과 대중의 시각이 조금 분리돼 있다.


또 아베 정부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보복 조치는 아베 측근들, 총리관저의 보좌관이나 경제산업성 대신 같은 측근들이 기습작전을 하듯 한 것 같다. 다른 부서에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고노 다로 외무상도 몰랐다고 한다. 외무성 고위 당국자를 직접 만났는데, 그분한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년 초로 예상된 압류자산의 현금화 조처는 또 다른 고비로 보이는데?


“애초 현금화 시점이 시한폭탄이 터지는 시간이라고 예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일본의 조처는 시그널의 성격이 있다. 제재를 한다,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당장 수출을 틀어막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금화 조치를 하면, 그래서 징용 배상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팔아서 이뤄지면, 여론이 악화하고 일본 정부도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금화 조치를 하면 루비콘강을 건너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으로 전망하나?


“강제징용 재판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고 협상이 실현되면, 보복은 완화되거나 철회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도 내놓은 카드를 거둬들이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재판 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처리 방침을 제시하고 일본과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면 보복을 철회할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물러날 명분을 우리가 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본다. 지금 원칙과 원칙이 충돌한 양상이어서, 어느 쪽도 양보하거나 타협하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 그러나 ‘강 대 강’으로 부딪히면 현재 한-일 간 경제구조로 볼 때 우리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정부가 한·일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준다는 이른바 ‘1+1 방식’을 해법으로 내놓았는데 일본이 거부했다. 일본의 요구는 뭔가?


“‘1+1 방식’은 완성도가 낮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한·일 기업만 참여하는 ‘1+1’이 아니라 여기에 한국 정부도 참여하는 ‘2+1 방식’은 돼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 정부가 빠지면 기업과 피해자들끼리 협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이 문제가 처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금 규모나 위로금 액수 등에 대해서도 여러 당사자들이 조율해야 하는데, 정부 역할 없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 피해자들이 이런 해법에 충분히 동의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있다. 지난번 위안부 합의도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형해화의 길을 걷지 않았나.


한국 정부가 나서 이 문제를 완전 연소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았다고 판단되면 일본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일본 입장에서 이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된 사안이어서 일본 기업이 법적 의무로 이행하는 것은 못하겠다고 할 것이다. 도의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본다.”


―중국 징용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서 패소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최고재판소의 화해 권고에 따라 기금을 출연해 보상했다. 일본 정부도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았다. 한국 징용피해자들에게 이런 선례가 적용될 순 없나?


“해결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일 간 식민지 처리와 중-일 간 전후 처리의 틀이 달랐기 때문에 일본이 달리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은 전후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 그래서 중국 피해자들에겐 이런 게 참작된 것이다. 반면 우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법적으로 처리가 끝났다는 게 일본의 논리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에 돈을 받았고, 중국은 안 받았다는 차이가 있다는 뜻인가?


“그렇게 보는 게 일본 쪽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관용적 입장에서 (중국 징용피해자 사례를) 바라본다면 좋은 해결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사안을 갖고 가자는 주장도 폈는데?


“한-일 간 협상으로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그게 가장 좋다. 그게 잘 안될 때 ‘옵션 비(B)’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퉈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하면 독도를 연상하는데, 독도와 무관하다. 징용 문제만 다루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다르니까, 제3자에게 판단을 물어보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징용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이냐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리가 완패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확립된 국제법의 법리를 보면, 개인의 권리를 국가 간 합의로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건 일본 최고재판소도 인정한 부분이다. 다만 소송으로 청구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한번 국제 법정에 가져가서 다퉈볼 만하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징용피해자 구제 문제에 대해 3자의 판단을 구해보자는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판결까지 4년 정도 걸린다는데 그동안 한-일 갈등은 유보될 수 있다. 또 많은 국제법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부분 승소, 부분 패소’ 가능성이 클 때 화해가 실현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면 그것을 계기로 한-일 간 협상이 촉진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패소하면 승복하겠느냐의 문제가 있고, 또 지면 정치적 책임도 만만찮을 텐데.


“한·일의 공동 제소는 판결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복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단지 ‘피해자 구제’ 문제로만 좁혀서 이기고 지는 문제를 봐야 한다. 우리가 지면 정부가 ‘대체 구제’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그동안 뭐 했냐. 너무 방치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너무 오래 시간을 끌면서 적절한 대처를 강구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 컨트롤타워는 누가 맡고 전략은 누가 짜서 어떤 안을 내놓을 것인지, 조기에 검토해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이 지나고 지난달이 되어서야 한·일 기업의 공동 출연(1+1) 방안을 제안했다. 시기가 너무 늦었다. 이낙연 국무총리실에서 한때 주관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안들이 검토됐는지는 알려진 게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한-일 대화채널을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 결국 보복 조치의 핵심은 강제징용 문제이니까,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마련해 내놓는 것 말고 더 좋은 대응책은 없다. 일본도 유연하게 풀어야 한다. 경제 보복은 매우 부적절하다. 일본은 그동안 자유롭고 공정한 자유무역을 주장해왔다. 경제 보복은 스스로 원칙을 위반하는 비열한 일이다. 과거사 문제는 과거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비롯한 불행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 일본은 가해자 입장에서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적반하장이라고 할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하다. 일본이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한국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주 실망스러운 태도다.”


suh@hani.co.kr


“아베는 확신범…일본 국민은 위안부 문제 등 사과하길 원해”

이원덕 교수가 접한 일본 분위기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한-일 관계 전문가로 꼽힌다.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꾸준히 일본의 정치외교 문제와 한-일 관계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해왔다. 저서로는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 <한일관계사 1965~2015>(공편),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공저) 등이 있다.


일본이 무역 보복 조처를 발표한 1일, 이 교수는 일본 도요대 등에서 한달 일정으로 한-일 관계를 강의하느라 도쿄에 체류 중이었다. 13일 잠시 귀국한 그는 최근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보복 조처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두 배 이상 나온 배경과 관련해 “최근 한-일 간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도대체 몇 번을 (한국에) 사과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과 피로증’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일본 국민이 ‘과거사 문제로 더는 사과할 필요 없다’는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 역사관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라며 “아베는 확신범이지만 일본 국민은 다르다. 특히 위안부 문제 등에서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법대 학부와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는 “한 학생이 ‘한국이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 아니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니다, 거꾸로 한국에서 법치주의를 과잉으로 지키려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지키려니까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은 것이다’라고 대답해줬다”고 말했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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