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4339


사람 갖고 논 수사관들... '전과자'가 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수상한 집' 조작간첩 피해자 강광보씨 "시민의 삶 파탄낸, 수사관들 처벌해 주십시오"

19.07.19 07:28 l 최종 업데이트 19.07.19 07:58 l 강광보(news)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저는 제주도 도련동에 사는 강광보라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대통령님이 재일교포 조작 간첩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습니다(지난 달 27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에서 "군부 독재 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 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며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 편집자 주).


그 말을 듣고 저는 섭섭하고 허탈했습니다. 외화를 벌려고 일본에 다녀왔던 우리 제주의 조작 간첩 피해자들도 많은데 왜 우리들은 기억해 주지 않을까 하는 섭섭함이었습니다.


사실 대통령님께 편지를 쓰는 지금도 참 무섭고 떨립니다. 이런 편지를 제가 써도 되는지, 혹시 이 때문에 어떤 피해를 받지나 않을지 걱정을 하는 건 제가 당한 과거의 피해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제가 사는 제주시 도련동의 낡은 집을 개조해 '수상한 집'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수상한 집을 만들게 된 동기와 제가 대통령님을 이 집에 초대하고 싶은 이유를 적어 보려 합니다.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제가 전과자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살다 나온 전과자입니다. 그것도 그냥 전과자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전과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과자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나라가 저를 전과자로 만들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 제주도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4.3 사건으로 제주도는 죽은 섬이었습니다. 그래서 난리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벌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울 곳도 없는 작은 목선의 배 밑에 숨어 목숨을 걸고 동해를 건넜습니다. 그렇게 배 밑바닥에서 대소변을 보면서 똥 냄새, 구토 냄새를 참고 며칠을 항해해 일본에 닿아 불법 외국인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저를 도와주신 숙부모는 4.3 때 학살을 피해 도망쳐 온 분들이라 한국정부에 늘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정부에 대한 불만을 자주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고됐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불법 외국인 신분임이 탄로나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일본에 간 지 18년만인 1979년 7월 14일 제 가족은 모두 고향땅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심사를 끝내고 공항을 나오는데 저만 따로 어느 사무실 같은 곳으로 불려갔습니다. 밤 8시경이 되자 젊은 남자 3명이 저를 제주 중앙정보부로 데려갔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첫 번째 고문] 제주 중앙정보부


중정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수사관이 물었습니다.


"일본에 얼마나 살고 왔나?"

"18년간 살다 왔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관은 부하 직원에게 지금부터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부하 직원은 저의 옷을 벗기더니 느닷없이 나무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때리더니 쓰러져 있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살면서 한 일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더 가혹한 고문을 할 것이다. 우리들은 벌써 네가 일본에 살면서 무얼 했는지 다 알고 조사하는 것이니 하나도 빠짐없이 고백해."


그날을 포함해 3일간 매일 같은 질문을 하고는 때렸습니다. 3일째 되던 7월 16일 밤 수사관은 별 혐의가 없다는 말과 함께 협조해 주어 고맙다며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두 번째 고문] 제주경찰서


그러고는 한 달 쯤 지난 8월 23일 제주경찰서 정보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후 2시경 정보계로 찾아 갔더니 계장이라는 사람이 부하를 시켜 저를 경찰서 옆 건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7~8평 되는 사무실 같은 방이었는데 책상과 의자, 침대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경찰은 중정 요원들이 물은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조총련이나 간첩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자식이 장난치고 있네."


그때부터 또 다시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며칠째 잠을 안 재우고 조사하면서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몽둥이로 때리고,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무릎 사이에 몽둥이를 끼워 넣고는 무릎 위에 올라타 질근질근 밟았습니다.


당시의 정보계장 고재호, 수사관 김기현, 김창영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매일 강도 높은 고문과 진술을 반복하다가 1979년 10월 27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러 가는데 복도에 놓인 신문을 보니 '박정희 대통령 피살'이라고 크게 쓰여있었습니다. 희한하게 이날부터 수사관들은 저의 얼굴만 보고는 고문도 조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4일을 보냈습니다.


10월 30일 밤 정보계장 고재호가 저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고 계장에게 지금까지 68일간 왜 불법 감금하고 마음대로 갖은 고문을 했느냐고 항의했지만 아무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강제로 끌려갔다 강제로 풀려났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 프로젝트를 함께한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좌)과 강광보씨

▲  제주 "수상한 집" 프로젝트를 함께한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좌)과 강광보씨 ⓒ 지금여기에

 

[세 번째 고문] 국군보안대


경찰에서 풀려난 뒤 제주에서 막노동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을 때였던 1985년 12월 초 '한라기업사'(제주보안대)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남자 직원이 찾아왔습니다.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 찾아 왔으니 사무실로 가서 협조해 달라는 말을 듣고 보안대 직원과 함께 한라기업사로 갔습니다.


들어가니 계장(고태삼)이라는 사람이 어떤 서류를 손에 들고 보면서 말했습니다.


"경찰 정보과에서 많이 당했구만. 고문도 많이 당한 것 같은데 허위 자백한 것이 많지? 우리는 당신을 고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허위 자백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간단히 조사만 할 것이니 걱정 말고 협조하면 돼. 일본에 갔을 때부터 한국에 올 때까지 생각나는 대로 자세히 자술서를 쓰면 돼."

"제주경찰서 정보계에서 조사한 내용은 공포 속에 고문을 이겨내지 못해 허위 자백을 한 것입니다. 그 자술서는 사실 무근이에요."

"우리도 다 알고 있어. 특히 고재호(정보계장)가 고문을 심하게 했지?"


저는 고태삼 계장이 농담 같은 말을 하면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고 계장은 "참고삼아 당신의 진술서를 받아 윗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니 걱정 말고 돌아가라"면서 가다가 저녁밥이라도 사먹으라면서 2만 원 정도 돈을 주길래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여 만인 1986년 1월 6일경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느 동네 집수리 미장잡부로 일을 하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새벽 6시경 보안대 수사관 조한필과 김성돈이 찾아와 지난 번에 쓴 진술서 중에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으니 잠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 의심 없이 그들을 따라 보안대 조사실로 갔습니다.


본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계단 밑으로 내려가는 곳에 조사실이 있었는데 천장이 낮은 것으로 보아 반지하 같았고 방은 3~4평 정도였습니다. 입구는 한쪽 밖에 없으며 창문도 없거니와 책상과 의자 옆에는 간이침대와 고문 도구들이 있었습니다(일명 통닭구이와 몽둥이들). 책상 앞에는 태극기가 달려 있고 그 옆에는 저를 향하게 한 헤드라이트(공사판이나 야간 경기장에 쓰일 법한 전깃불)가 걸려 있었는데 스위치를 올리자 너무 밝아 사람은커녕 옆 사물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안에 있던 사람이 군복으로 갈아입으라며 이곳은 '인간 도살장'이라고 겁을 줬습니다. 처음 4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매일 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세수, 양치 일절 없이 인간 아닌 짐승 같이 지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도 혹시 자해를 할까봐 문을 열어 놓고 현역 군인들이 저를 감시했습니다. 항상 3교대로 나누어 (한 사람이 8시간씩) 조사하는데 (김성돈, 조한필, 강형이라는 사람) 한 사람이 조사가 끝나면 다른 조사관이 교대해 똑같은 조사를 반복했습니다.


그곳에서도 몽둥이로 온몸을 때리고 자신들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면 꿇어앉힌 상태에서 무릎 사이에 몽둥이 끼워 놓고 무릎 위에 올라서서 질근질근 밟아댔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마음에 드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고문을 반복했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을 찾은 시민들

▲  제주 "수상한 집"을 찾은 시민들 ⓒ 지금여기에


 제주 '수상한 집'을 찾은 시민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제주 "수상한 집"을 찾은 시민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지금여기에

 

하루는 군복을 입은 군의관이 제가 조사받던 지하 취조실로 들어와 청진기로 저의 심장박동을 재고 혈압계로 혈압을 확인한 다음 아무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속옷까지 전부 벗게 하고 딱딱한 의자에 앉히더니 양손은 의자 뒤로 묶어 수갑을 채우고 발목도 묶은 뒤 발바닥 밑에 물 젖은 수건을 깔았습니다.


그러고는 전기 고문을 하는데 온몸이 찌르르 하는 고통에 못 이겨 몸부림치다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제 몸 상태를 봐가면서 몇 번이고 전기 고문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제 엄지에 저도 모르는 인주가 묻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길로 저는 범죄자,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안대에 끌려가 구속된 86년에 제주에서만 경찰 대공분실에서 조작간첩 2명, 국군보안대에서 2명 해서 4명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85~86년 사이 일본 관련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습니다.


제가 교도소 수감 생활을 시작한 87년 이후에는 제가 있던 교도소에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고, 출소 후 오늘까지 저처럼 일본 관련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간첩 아버지'라는 멍에,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산 지 18년


제가 끌려온 후 가족들은 막막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아버지란 사람이 간첩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으니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은아들(당시 초등생 3년)은 그때 충격으로 대인 기피증이 있으며 지금도 나이가 33세인데 자폐증 같은 것을 앓고 있습니다.


출소한 후 아이들이 아버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아내를 설득해 석방 후 5개월간 같이 살려고 노력도 해 보았지만, 지난 세월의 고통과 어려움 탓에 아이들은 저를 멀리했고 결국 저는 가족과 떨어져 노부모가 살고 있는 현재의 도련동 집으로 옮겨 산 지가 벌써 18년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2017년 시민단체 '지금여기에'와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받았습니다. 재판에서 저의 억울함이 밝혀져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가족은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저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를 간첩으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잃어버린 수십 년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상한 집'이 들어서기 전의 강광보씨 집

▲  "수상한 집"이 들어서기 전의 강광보씨 집 ⓒ 지금여기에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을 전시관으로 만들어 제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국가가 저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저라도 제 사건을 알려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저는 재심을 통해 받은 배상금과 보상금을 가지고 저와 우리 제주의 조작간첩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전시관을 지었습니다. 제가 국가배상금을 털어 전시관을 짓는다고 하니 많은 시민과 <오마이뉴스> 독자들이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고 실제로 많은 건축비를 후원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수상한 집'을 짓게 된 것입니다.

 

 제주 '수상한 집'에 살며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강광보씨

▲  제주 "수상한 집"에 살며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강광보씨 ⓒ 지금여기에

 

'수상한 집'에 꼭 들러주십시오


대통령님.


국가가 인생을 망가뜨렸습니다. 나라가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은 아직도 처벌은커녕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게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정의입니까? 아직도 밤마다 고통 속에 헤매며 왜 잘못도 하지 않은 우리가 숨죽여 지내야 합니까? 왜 우리를 기억해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단 말입니까?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이고 정의로운 나라입니까?


대통령님.


제가 지은 '수상한 집'은 조작간첩 피해자들이 편히 쉬고, 이야기하고,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전시관이고 또 모두의 집입니다. 우리는 피해자로서 위로받을 곳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수상한 집'을 피해자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지, 왜 국가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주 '수상한 집'

▲  제주 "수상한 집" ⓒ 지금여기에


 제주 '수상한 집'. 후원자들의 이름을 동판으로 새겼다.

▲  제주 "수상한 집". 후원자들의 이름을 동판으로 새겼다. ⓒ 지금여기에

  

대통령님께 간절히 두 손 모아 바랍니다. 꼭 저희 '수상한 집'에 오셔서 이곳이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어떤 소망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더운 날 건강 조심하시고, 꼭 제주에 들러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2019년 7월 18일

조작간첩 피해자 강광보 올림


[관련 기획] 

터무니없는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만드는 터무니없는 프로젝트 '수상한 집'

http://omn.kr/1hsyq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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