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8272


'강제징용'이 아니다, '강제동원'이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③]

19.08.02 07:54 l 최종 업데이트 19.08.02 09:52 l 김창록(saxophone)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일 수많은 분석과 주장과 논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인 만큼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편집자말]

 

▲  강제동원 노동자들 ⓒ 출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을 특정한 다음, 원고들의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므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즉, 원고들의 청구권은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이므로 강제동원이며, 그러한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왜 '불법적인 식민지배'일까?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법적인 식민지배


2018년 대법원 판결 자체에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왜 '불법적인 식민지배'인지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근거는 원심판결인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제시되어 있고, 서울고법은 그 부분에 대해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따르고 있으므로, 결국 2018년 대법원 판결은 2012년 대법원 판결의 근거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의 해당 부분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부칙 제100조에서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며, 부칙 제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3.1운동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 양자는 일제의 지배를 부정한 것이므로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1919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다시 말해 1910년부터 1919년까지는 왜 '불법강점'인가? 그 근거는 2012년 판결에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서 그 근거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제의 지배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더 파고 들면, 1910년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사이에 체결된 일체의 조약은 애당초 무효라고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보다 직접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 공식입장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일제 법령의 효력


2012년 대법원 판결의 위의 판단은 일본의 재판소가 선고한 판결을 승인할 것인지 여부를 다루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원고들 중 일부는 일본의 재판소에 제소해서 패소 판결을 선고 받았었다. 피고 일본 기업은 그 판결을 한국 법원이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법원은 일본 판결을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이므로 승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일본 판결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아래와 같이 적시했다.

 

이 사건 일본 판결이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 


요컨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강점이었는데 일본 판결은 합법지배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대법원 판결은 일본 판결이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것도 잘못이라고 짚고 있다. 역시 '합법지배'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래서 2012년 대법원 판결은 위의 첫 번째 인용문 뒤에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어째서 일제 법령의 효력을 배제시킬 수 있는가?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이 위의 첫 번째 인용문에 등장하는 1948년 헌법 부칙 제100조, 즉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는 조문이다. 여기에서의 '현행 법령'은 정부 수립 당시에 남아 있던 미군정의 법령과 미군정에 의해 효력이 인정된 일제의 법령이다.


제100조의 의미는 그 법령들이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효력을 가진다라는 것이다. 반대 해석하면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면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그에 대한 판단은 개별사건의 경우 최종적으로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하게 된다.


일제의 법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상당 부분이 상당 기간 동안 효력을 가졌다. 정부 수립 후 단기간에 모든 법령을 새로 갖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법의 공백'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는 것까지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1948년 헌법 제100조가 규정되게 된 것이다.


'징용'과 '강제동원'은 다르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효력이 배제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바로 '징용'의 근거법령이다. 그 법령들의 효력이 배제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징용'은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 등 일제의 법령에 근거한 제도였다. 다시 말해 일제는 '징용'이라는 '합법적인' 제도를 만들어 한반도의 인민을 데려가서 일을 시킨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입장에서는 '징용'에 대해서는 법령에 따라 져야 할 책임 이외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의 효력이 배제된다면, 일제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한반도의 인민을 강제로 연행해서 강제로 노동을 시킨 것, 즉 강제동원을 한 것이 된다. 대법원 판결은 그러한 이유에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이 발생하게 된다. 대법원 판결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강제동원' 문제인 것이다.


'징용'은 해결되었나?


여기에서 기억을 되살리자.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징용에 관련된 미수금과 보상금'은 무엇일까?


일제의 1944년 「국민징용령」(칙령 제89호)에서는 피징용자에게 당연히 임금을 주게 되어 있었고, 징용기간 중의 업무상 상해 또는 질병이나 그로 인한 사망에 대해 부조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 피해자들은 그 임금과 부조를 받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징용에 관련된 미수금과 보상금'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이다.


다만 '징용'은 해결되었다고 할 때, '해결되었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추가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는 이에 관한 판단은 없다. 왜냐하면 원고들이 징용에 관한 미수금이나 보상금은 청구하지 않고 강제동원에 관한 배상금만을 청구해서 애당초 판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결되었다'라는 것의 의미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의 가정적 판단에서 나온다. 해당 부분은 아래와 같다.

 

(어떤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 


즉, '징용'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징용'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징용'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일본 정부와 최고재판소의 입장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와 최고재판소도 협정 자체에 의해 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  경남 창원 정우상가 앞에 있는 "일제강제동원 노동자상". ⓒ 윤성효


핵심은 '징용'이 아니라 '강제동원'이다


중요한 것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의 판단대상은 그러한 '징용'이 아니라 '강제동원'이라는 점이다. '강제동원'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징용'과는 전제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강제동원'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강점이라는 전제 위에서, 일제의 법령 중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되는 것은 효력이 배제된다는 전제 위에서 인정되는 불법행위이다. 불법적인 식민지배 문제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청구권협정」에서 그러한 강제동원 문제는 해결된 적이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징용'과 '강제동원'은 다르다. '징용'은 일제의 법령에 근거한 '합법적인' 제도이며, 강제동원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불법행위이다. 「청구권협정」에 의해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문제는 해결되었다. 다만 해결된 것은 그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반면에 '강제동원' 문제는 애당초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었고, 따라서 애당초 해결된 적이 없다.


* 사족 : 국내에서는 '강제징용'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불법성을 내포하는 '강제'와 합법성을 내포하는 '징용'을 엮는 것은 형용모순이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법정의견이 일관되게 사용하는 용어는 '강제동원'이다. '강제징용' 대신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

  

[보론] 한일회담 당시의 한국 측 발언을 보면 해결된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29일에 일본 외무성이 한일회담 교섭기록을 제시하며 "한국의 주장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제시된 것은 1961년 5월 10일에 개최된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 소위원회 13회 회합의 기록이다. 그 기록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보상'에 관해 한국 측이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고 되어 있다.

 

"강제적으로 동원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상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당시 한국인은 일본인으로서 징용령이 적용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일본인으로서 전쟁을 위해 징용된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며, 우리는 완전히 강제적으로 동원되었고 또 심하게 학대를 받았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한국 측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일본 측은 다른 주장을 했다는 사실도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일본 측의 주장은 1962년 2월 8일 제6차 한일회담 일반청구권 소위원회 10회 회합에 관한 일본 측의 기록에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한국 측은 본 건 청구(피징용 한국인 보상금)에서 생존자에 대해서도 징용에 의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측으로서는 피징용 한인은 당시에는 일본인과 같은 법적 지위에 있었던 것이고, 일본인에 대해서는 징용된 것만으로는 전혀 보상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징용 한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취급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망, 부상자에 대한 원호조치에 대해서는 당시의 국내법에 의해 지급해야 할 것은 이미 지급을 완료했지만, 미수금으로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 측 기록에 따르면, 한국 측은 1961년 12월 15일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 소위원회 7차 회의에서 피징용자 보상금 3억 6,400만 달러를 포함하여 8개 항목 전체에 대한 보상금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제5항의 4는 한국인 피징용자에 대한 보상금인데, 이것은 과거 일본에 강제징용된 한국인이 그 징용으로 말미암아 입은 피해에 대하여 보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 우리 국민은 일본인과는 달리 단지 일본의 전쟁수행을 위한 희생으로서 강제징용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사망자에 대한 보상은 물론 생존자에 대하여도 그 피해에 대하여 보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 보상금은 생존자에 대하여 1인당 200불, 사망자에 대하여 1인당 1,650불, 부상자에 대하여 1인당 2,000불 ··· 사망자와 부상자는 일본인에 대하여 보상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다. ··· 생존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입은 피해와 고통을 고려한 것이다." 


이들 기록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점들이 확인된다. 1) 실무자 단계의 회담에서 한국 측이 "강제적으로 동원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적이 있다. 2) 한국 측의 위 보상 요구는 일본 정부가 일본인에게는 보상하지 않고 있는 생존자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해서는 한국 측도 일본인과 마찬가지의 보상을 요구했을 뿐이어서, '불법강점'을 전제로 엄밀하게 법적인 논리를 전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 일본 측은 시종일관 '합법지배'를 전제로 당시의 일본 국내법에 따른 보상만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맞섰다.


따라서 위의 기록들을 내세워 '강제동원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었다'라는 대법원 판결을 탄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위의 기록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 정부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공개된 것이며, 무엇보다 소송과정에서 피고 일본 기업이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한국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 기록들에 대해 이미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그 기록들에 기재된)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니다.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 일본 측의 반발로 제5차 한일회담 협상은 타결되지도 않았다. 또한 위와 같이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다.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볼 때 타당한 판단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일본 측이 '강제동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협의를 해서 한국 측과 합의에 도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시종일관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은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도 포함된 내용으로 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이 이미 검토가 끝난 낡은 기록의 일부만을 끄집어내어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려 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여 그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글 싣는 순서

1. 한-일 '강대강' 대결의 진원... 대법원 판결 핵심 정리 http://omn.kr/1k7th

2. '불법강점'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http://omn.kr/1k829

3. '강제징용'이 아니다, '강제동원'이다

4. 아베 정부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5.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6.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

7.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 제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창록 기자는 경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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