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030600005


[도재기의 천년향기](29)건져올린 14척 중 고려 10척, 통일신라·조선시대는 겨우 1척씩뿐 바다만 아는 미스터리 ‘고선박’

도재기 문화에디터 jaekee@kyunghyang.com 입력 : 2019.08.03 06:00 수정 : 2019.08.03 06:00 


바닷속의 보물선, 고선박


수중고고학이 발전하면서 ‘보물선’으로 불리는 고선박 등 다양한 수중문화재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금까지 바다에서 발굴한 고선박은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모두 14척이다. 사진은 경기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해수욕장 인근에서 고려시대 선박 ‘대부도2호선’이 발굴되는 장면(2015년)이며, 선체에서 청자 등 유물과 함께 곶감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 수중고고학, 1976년 ‘신안선’ 발굴로 첫걸음…선박들 안에 콩·젓갈·솥부터 청자 수만점까지 온갖 물건물살 악명 높아 “1392~1455년 200척 침몰” 실록에도 기록된 태안 마도해역, 지금은 ‘바다의 경주’ 평가


고고학 지식·잠수능력 겸비한 전문 인력 태부족…육지서 많이 사라진 도굴꾼들이 바닷속 호시탐탐


문화유산이 땅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의 해저, 해안의 갯벌 속에도 묻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이 땅은 3면이 바다여서 고대부터 해상활동이 활발했고, 서남해안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로 국제 문화교류의 현장이었다. 특히 서해는 갯벌이 발달돼 유물의 보존환경도 좋다. 2000년대 들어 수중문화재를 다루는 수중고고학이 자리 잡으면서 수중문화재도 부상하고 있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대표적 수중문화재는 옛 배, 고선박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누비다 침몰, 수백~수천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난파선이다. 고선박은 대부분 침몰 당시의 사람들이 쓰던 온갖 물건이 실린 ‘타임캡슐’이자, 유물이 가득한 ‘보물선’이다. 실제 고려시대 고선박에선 적재물품의 내용과 발송처·수취인 등을 기록한 목간은 물론 청자, 콩·메밀 같은 곡물, 각종 특산품, 젓갈 등 먹거리, 솥·수저 같은 생활용품 등이 발견된다. 전남 완도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완도선’에선 청자 3만여점이 포장상태 그대로 확인됐고, 중국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에선 2만점이 넘는 유물이 나왔다. 유물도 귀하지만 고선박도 전통 배(한선) 연구, 당시 해상운송 체계·국제교류 등을 파악하는 데 소중하며 때로 한국사를 다시 쓰게 하는 문화재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배는?


해저 수중발굴에서 유물을 수습하는 모습.


알다시피 배의 역사는 길다. 신석기시대부터 바다나 강·호수를 누볐다. 신석기인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어업활동을 한 사실은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배 그림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배 유물은 약 8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통나무배다. 통나무 속을 파낸 배는 경남 창녕 비봉리 조개무지(패총·사적 486호) 유적에서 나왔다. 길이 310㎝, 폭 62㎝ 정도다. 발굴된 곳은 공기가 차단돼 보존환경이 좋은 저습지 유적이어서 아직도 불로 지지고 돌도끼 등으로 가공한 흔적이 배에 남아 있다. 이 소나무로 만든 통나무배는 보존처리를 거쳐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삼국시대 유적에서는 배 모양 토기들이 출토돼 해상활동의 증거를 보여준다. 실제 가야시대의 선박 부재(3~4세기 추정)가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발굴됐다. 통일신라시대의 배로는 ‘안압지선’이 유명하다. 왕실 정원의 인공연못인 경주의 월지(안압지)에서 나온 안압지선은 통나무배에서 진화, 가공한 나무 판재들로 만든 목선이다. 선박 발달사로 볼 때 원시적 뗏목배~통나무배~(부재 가공을 해 짜맞춘) 준구조선~구조선의 단계 중 준구조선이다. 8~9세기에 제작됐으며 재료는 소나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활발한 해상활동은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상이 잘 말해준다. 통일신라와 남북국시대를 이룬 발해도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과 사절단을 교류할 정도로 조선술·항해술이 뛰어났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바닷길이 더욱 열렸다.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세곡)이나 궁중에 상납하게 한 특산물(공물)을 운송하는 조운선, 신안선 같은 동북아시아 무역선들이 서해를 오르내렸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청자운반선이 강진, 부안에서 빚어진 명품 청자들을 실어 날랐다.


■ 14척의 고선박, 역사를 증언하다


왼쪽부터 고려시대 청자운반선 ‘태안선’에서 나온 ‘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보물 1782호), 고려 선박 ‘마도2호선’에서 발견된 ‘청자 상감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보물 1783호).


한국 수중고고학의 첫걸음은 1976년 ‘신안선’ 발굴 작업이다. 당시엔 전문인력, 장비가 없어 해군이 주도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수중문화재 조사·발굴·연구·전시 등을 이끈다. ‘비봉호’나 ‘안압지선’과 달리 바다에서 지금까지 발굴한 고선박, 명실상부한 ‘바닷속의 보물선’은 모두 14척이다. 고려시대 배가 10척, 통일신라·조선시대 각 1척이며, 국내에서 발굴됐지만 중국 고선박이 2척이다. 발굴 장소는 인천 옹진부터 전남 진도·완도에 이르기까지 서남해에 집중돼 있다. 발견 당시 모습을 보면, 운항 중이거나 정박 상태에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시대 고선박은 겨우 1척인데, 고려시대 배는 10척으로 훨씬 많이 발굴됐다. 그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다. 그저 우연일 수도 있고, 조선시대에 조선술·항해술이 더 발전해 침몰한 배가 적을 수 있다는 분석 등이 나올 뿐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바다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고선박은 ‘영흥도선’이다. ‘안압지선’과 더불어 2척뿐인 통일신라시대 배다.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저에서 2013년 발굴됐는데, 선체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710~774년으로 나타났다. 선체는 철제 솥 10여점과 도기 등 유물에 눌린 길이 약 6m, 너비 1.4m가 남아 있다. 황금빛을 내는 당시 최고급 도료인 황칠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으며, 주변 해저에선 수백점의 청자 등이 흩어져 있어 또 다른 배가 침몰해 있을 가능성도 높다.


고려시대 고선박은 10척인데,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만 3척이 발굴됐다. ‘마도 1~3호선’이다. ‘마도3호선’은 선체와 함께 나온 30여점의 목간 분석 결과, 1265~1268년 사이 전남 여수 일대에서 거둬들인 곡물과 전복 등을 싣고 강화도로 가던 중이었다. ‘마도1호선’은 1208년 나주와 해남·장흥 등의 곡물을 개경으로 운반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2호선’은 400여점의 유물이 나왔는데 주목할 만하다. 1213년쯤 전북 고창 일대에서 모은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가던 배에서는 청자 매병 2점과 물품꼬리표라 할 수 있는 죽찰(대나무 조각의 목간)도 발견됐는데, 죽찰에서 매병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매병의 용도를 놓고 여러 주장이 난무했는데, 참기름이나 꿀을 담은 생활용기로 확인된 것이다. 이 매병과 죽찰은 각각 보물 1783호(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1784호(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로 지정됐다. 마도 해역 인근인 대섬 앞바다에선 청자운반선 ‘태안선’이 나왔다. 통발에 주꾸미가 청자대접을 붙들고 올라온 덕분에 발견된 태안선에선 2만3000여점의 청자가 당시 포장한 그 상태로 확인됐다. 그중 ‘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는 워낙 희귀해 보물 1782호로 지정됐다.


마도 해역에서는 지금까지 발굴된 유일한 조선시대 고선박인 ‘마도4호선’도 나왔다. 1417~1421년 사이에 세곡과 분청사기 같은 공물을 싣고 한양으로 가던 이 배는 당시 조운선의 구조나 조운체계·조세제도 등의 연구에 귀중한 첫 조운선 실물자료다. 전통 한선에는 나무못만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마도4호선에는 쇠못이 박혀 있어 그동안의 학설이 수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마도 해역에서 고선박이 유독 많이 발견될까. 이 지역은 개경, 한양으로 올라가는 바닷길의 길목이자 외국 사신들의 숙소도 있어 무역선·조운선 등 많은 배가 오르내렸다. 정박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센 물살과 암초, 안개 등으로 난파 위험성도 높은 대표적 바닷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1392~1455년 사이 200척이 이곳(태안 안흥량)에서 침몰됐다고 기록될 정도다. ‘배 무덤’이라 불리던 곳이 지금은 ‘수중문화재의 보물창고’ ‘바다의 경주’라고 평가받는다.


고려 고선박은 경기 안산시 대부도 해역에서도 ‘대부도선’ ‘대부도2호선’이 확인됐다. 또 다른 고려 배로는 ‘신안 안좌도선’(전남 신안군 안좌도), ‘군산 십이동파도선’(전북 군산시 십이동파도), ‘목포 달리도선’(전남 목포시 달리도), ‘완도선’(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이 있다.


국제교류의 결과로 국내에서 발굴된 중국 배는 ‘신안선’과 ‘진도 통나무배’다. ‘신안선’은 1975년 발견돼 1976~1984년 총 11차례 발굴이 이뤄졌다. 중국 도자기 2만여점을 비롯해 동전 28t, 인도·동남아시아산 향료·향나무·한약재 등을 싣고 중국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로 가던 중 1323년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진도 통나무배’(전남 진도군 벽파리)는 원시적 통나무배가 아니라 구조선의 하나이며, 일본 배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 배가 국내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고려 고선박이 발굴됐다. 산둥성 펑라이(蓬萊)시의 항구유적인 봉래수성(蓬萊水城) 해안에서 발굴된 ‘봉래 3·4호선’이다. 이들 배는 형태·구조 등에서 고려 선박의 특성을 보이고, 고려 청자도 실려 있었다.


이들 고선박이 발굴되면서 비로소 고려 선박의 구조와 형태, 당시 해상운송 루트나 체계, 중국 배와의 특성 비교, 실린 유물을 바탕으로 한 각종 연구 등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수중발굴된 고선박과 해저 유물들은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의 보존센터·해양유물전시관에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수중고고학의 중요성, 이해를 높이기 위해 체험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 운영 중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육지의 발굴에 비해 수중문화재 발굴에 대한 정부의 관심, 지원은 크게 부족하다. 3면이 바다인 한국의 특성상 주목하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많은 문화재가 해저, 갯벌에 있음을 알면서도 조사·발굴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육지에선 많이 사라진 도굴꾼들이 바다에서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학계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역사의 죄인”이라 자책하는 이유다. 수중문화재 발굴은 그 특성상 예산, 시간, 노력이 육지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고학 전문지식에 더해 잠수 같은 전문능력을 갖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선 과감한 지원과 높은 관심으로 전문인력 양성, 수중발굴조사에 특화된 기술 개발, 로봇 등 첨단장비의 활용 등이 시급하다. 나아가 단순히 수중유물 발굴을 넘어 이젠 세계적 추세처럼 해양문화유산 전반으로 연구 지평을 넓혀야 한다. 혹시 이번 여름 바다를 만난다면 저기 어딘가에 묻혀 있을 ‘보물선’을 상상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고선박이 우리에게 안기는 숙제도 되새김질했으면 좋겠다.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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