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807205214389?s=tv_news


'산유국 꿈' 7광구 자원개발도..한일협력위가 영향력 행사

유선의 입력 2019.08.07 20:52 수정 2019.08.07 22:34 


1972년 양국 공동 개발에 합의..입장 바꿔 갑자기 발 뺀 일본


[앵커]


아베가 입을 열 때마다 거론하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 그러나 그 협정으로 들어온 돈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즉, 일본의 전범기업이 개입해서 그 배를 불리는 데에 쓰였다는 사실을 저희는 지난 이틀간의 보도로 전해드렸습니다. 어제(7일) 예고해드린대로 지금부터는 '원조'로 가장한 8억 달러로 일본이 우리 자원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친 정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970년 박정희 정부는 제주도 남쪽 대륙붕 지대, 이른바 '제7광구' 개발을 선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지요. 그 당시 국민들은 산유국의 꿈에 부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72년 한·일 양국은 이 7광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전격 합의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 협력기금 8억 달러를 앞세웠던 한·일협력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맺은 독소조항으로 7광구는 30년 넘게 방치되고 있고, 심지어 9년 뒤면 일본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1969년 유엔이 "동중국해 대륙붕에 석유 매장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곧바로 우리 정부는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만들어 제주도 남쪽에 '7광구'를 설정했습니다.


대륙붕은 해변에서 깊이 약 200m까지의 완만한 경사의 해저지형을 말합니다.


당시 국제법 판례에 따르면 대륙붕은 기존 대륙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에 의해 개발권을 정했습니다.


'대륙연장선'으로 한반도에서 이어지는 7광구 대부분이 우리 소유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와 가깝다며, 이른바 '중간선 경계'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했습니다.


69년 북해 대륙붕 소유권 판결에서 대륙연장론이 채택됐고, 우리가 먼저 7광구를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2년 9월 한·일각료회의에서 양국은 7광구 공동개발 원칙에 전격 합의합니다.


그 배경에는 다름아닌 한·일협력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반발하던 1970년 8월 열린 한·일협력위 상임위 회의록입니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심복 야쓰기 가즈오 위원이 "해양개발에 대해서는 무식하지만 대륙붕 공동개발의 원칙을 정해 양국 정부를 설득하자"고 제안합니다.


야쓰기 위원 제안 3달 만에 한·일각료회담에서는 실무자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각료회의 준비 문건입니다.


우리에게 상황이 유리했는데도, 외무부에서는 '대륙붕 문제로 한·일 간 정치적, 경제적 협력관계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우려합니다.


양국 실무진 입장이 팽팽하던 72년 8월.


한·일협력위 환영회에서 야쓰기 위원은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에게 "해양자원은 공동개발이 적합하다"고 말했고, 김 전 총리는 "합시다"라며 응답합니다.


한달 뒤 양국은 공동개발에 합의했고, 78년에 정식 협정이 발효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87년 이후 갑자기 입장을 바꿔 개발을 중단했고, 7광구는 30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화면제공 : KTV 대한뉴스)

(영상디자인 : 신재훈 / 영상그래픽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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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에 '7광구' 30년째 방치…9년 뒤 일본에 넘어갈 수도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189/NB118621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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