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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발해사를 찾아] <6> 무왕 대무예의 당나라 공격
"믿음 저버린 대국 응징하라" 웅대한 기개로 독립국 천명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 견제
부산일보 | 20면 | 입력시간: 2007-02-10 [16:33:09]


발해는 719년 대조영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대무예(大武藝)가 왕위를 이어 받아 제2대 무왕이 되었다. 대조영이 자식을 얼마나 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록상으로 무왕이 된 대무예와 당나라 책봉에 대한 답방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대문예(大門藝)만이 확실하다. 이들의 어머니가 누구이며 어느 집안 출신인가 하는 점도 모른다.

제2대 무왕과 그 동생 대문예는 당나라 공격 문제를 놓고 뜻을 같이 하지 못하고 형제의 의를 끊게 된다. 이 비극은 사극 작가들의 '흥미'를 끄는 대목일 수 있다. 단순히 권력의 생리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그의 시호(諡號)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사적 업적을 많이 쌓은 왕이다. 그는 대조영의 외교 방향을 이어 받아 '인안(仁安)'이라는 독자적 연호도 사용하는 등 독립국의 면모를 내외에 천명하였다. 이러한 발해의 독자적 행동에 대해서 '신당서'는 '사사로이'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하였고 '사사로이'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당에 대한 무왕의 감정이 극히 나빴던 것은 아버지 대조영과 건국의 고통을 같이 했던 과정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는 이미 영주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당나라의 집요한 방해를 무릅쓰고 건국 길에 올랐다. 무왕은 737년에 죽었으며 발해 건국을 위해 영주에서 탈출한 지 40년이 지난 정도였다. 무왕이 60세에 사망했다면 20세 정도에 이미 그는 아버지 대조영과 할아버지 걸걸중상의 활동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발해와 당이 전쟁을 하게 된 계기는 당이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를 견제하려 했던 사건에서 비롯한다. 그 내용은 '구당서'와 '신당서'에 자세하다. "개원 14년(726)에 흑수말갈이 사신을 보내와 조공하므로,현종(玄宗)이 그 땅을 흑수주(黑水州)로 삼아 장사(長史)라는 관리를 두고 통치케 하자" 무왕은 크게 격노하였다. "(무왕은)흑수가 우리 국경을 거쳐서 처음부터 당나라와 서로 통하였고,지난날 돌궐에게 토둔(吐屯)의 직책을 청할 적에도 모두 우리에게 먼저 알리고 함께 갔는데,이제 뜻밖에 바로 당에게 벼슬을 청하였으니 이것은 반드시 당과 공모를 하여 앞뒤로 우리를 치려는 것이다."고 하면서 친아우 대문예 및 그의 장인 임아(任雅)를 시켜 군대를 이끌고 가서 흑수를 치게 하였다. 

그러나 전에 일찌기 볼모로 당나라 서울에 갔다 온 대문예는 다음과 같이 당나라 공격을 반대하였다. "흑수가 당의 벼슬을 청하였다 하여 그를 바로 치고자 한다면 이것은 당을 저버리는 것이다. 당은 사람의 많음과 군사의 강함이 우리의 1만 배나 되는데,하루 아침에 원수를 맺는다면 다만 스스로 멸망을 부를 뿐이다. 지난날 고구려의 전성기에 강병 30여만으로 당과 맞서 복종하지 않다가,당병이 한번 덮치매 땅을 쓴 듯이 다 멸망하였다. 오늘날 발해의 인구가 고구려의 몇 분의 일도 못되는데,그런데도 당을 저버리려 하니,이 일은 결단코 옳지 못하다."고 대문예는 만류하였다. 그러나 무왕은 듣지 않았다. 

▲ 발해 군대가 당을 공격하기 위해 거쳐갔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집안시의 압록강변으로 건너편이 북한이다.

대문예는 군사를 이끌고 국경에 이르렀을 적에 또 글을 올려 강하게 간했다. 그러자 무왕은 노하여 사촌 형 대일하(大壹夏)를 보내어 문예를 대신하게 하고 문예는 불러다 죽이려 하였다. 이에 문예가 그의 무리를 버리고 당나라로 도망하자 당 현종은 오히려 그를 좌효위장군으로 삼아 양국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무왕은 사신을 보내어 문예의 죄상을 피력하며 죽이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현종은 몰래 문예를 안서로 보내고 무왕에게는 영남으로 유배하였다고 거짓으로 알렸다. 하지만 내부 제보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안 무왕은 당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국은 남에게 신의를 보여야 하거늘 어찌 거짓을 일삼는단 말인가. 이제 들으니 문예가 영남으로 떠나지 않았다 한다. 청컨대 죽여주기 바란다."고 거듭 요구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은 누설자를 색출하여 좌천시키고 문예를 잠시 영남으로 보내고 무왕을 달랬다. 

그러나 무왕은 결국 당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732년에 그의 장수 장문휴(張文休)를 보내어 등주(登州,현 山東省 蓬萊)를 공격하면서 양국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에 당 현종은 대문예를 유주(幽州)에 파견해 군사를 징발하여 발해군을 치게 하였다. 또 당나라에 묶고 있던 신라 김사란(金思蘭)에게도 신라 군사를 내어 발해의 남쪽 국경을 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신라는 "마침 산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데다 눈이 한길이나 내려서 병사들이 태반이나 얼어 죽어 전공(戰功)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 왔다."고 전한다. 

전쟁의 결과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무왕이 전쟁으로 원한을 풀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몰래 동도(東都)에 사신을 보내 자객을 사서 천진교(天津橋) 남쪽에서 문예를 찔러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자객들은 모두 잡혀 죽었다고 한다. 무왕이 당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에 대한 깊은 원한과 주변의 돌궐과 거란도 당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해 무왕의 당나라에 대한 응징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발해의 당 공격은 해상과 육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상 루트로는 압록강 하구에서 출발해 등주를 공격했고,육로로는 영주로 가는 길을 통해 거란과 가까운 마도산(馬都山)으로 내달아 당을 공격했다. 발해의 당 공격은 무왕 시기에 이미 요동반도가 발해 영역이지 않고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발해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의미가 크다. 

한규철/경성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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