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5512.html


‘731 만행’ 기록관에 선 고려인 3세 “할아버지 비명 들리는듯”

등록 :2019-08-13 10:35 수정 :2019-08-13 10:37


[광복절 74돌기획] ‘3·1운동 100주년, 평화통일 기원’ 유라시아 횡단 랠리 동행기


오토랠리 참가자들이 7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외곽에 있는 731부대 기록관에서 한국어,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로 쓰인 조형물을 보고 있다. 하얼빈/옥기원 기자


유라시아 횡단 차량 10대가 비바람과 모래폭풍을 뚫고 달리고 또 달렸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지난달 9일 출발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몽골, 중국 국경을 넘어 광복절인 15일 서울에 도착하는 1만6000㎞ 대장정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깃든 중앙아시아와 하얼빈, 연해주 지역에 한반도 평화통일의 염원을 전하는 게 긴 여정에 나선 이들의 목표다. 동북아평화연대와 유라시아민족연합이 주최한 ‘3·1운동 100주년, 평화통일 기원 2019 오토랠리’에 <한겨레>가 동행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 하얼빈 입성,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랠리단 30명, 중국이 국경통과 막아 9일간 ‘차박’


안의사 동상 앞 최재형 선생 증손자

총과 자금 댄 최재형 ‘독립군의 대부’ 안중근은 끝내 배후를 대지 않았다

증손 최 표트르 “난 뼛속까지 한국인, 할아버지들 이야기 오래 기억됐으면”


731부대 만행 흔적을 더듬다

항일운동가·전쟁포로 등 3천여명에 매독균 주입 등 생체실험 100가지

브라질 동포 “악행 지접 보니 더 분해” 고려인 김씨 “남북 하나 돼 단죄해야”


아픈 역사, 그리고 대장정의 끝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묘지 방문, 고려인 강제이주 희생자들 추모

1만5천㎞ 달려온 길, 북 국경서 막혀 랠리단 “평화통일 염원 전해졌을 것” 42일 대장정, 해남에서 20일 막내려


만리장성보다 높았던 중국 국경


중국 국경은 랠리단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20일 만에 중앙아시아 국경을 7번 넘나들며 1만3000㎞를 순조롭게 달려왔지만, 중국 앞에서 9일 동안 발이 묶였다.


중국 정부는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고려인이 여럿 참여한 이번 행사가 중국 내 소수민족을 자극하는 정치적 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점을 문제삼는 것으로 보였다. 랠리 참여 인원은 총 30명으로 고려인과 재외동포가 주로 이름을 올렸다. 참가를 신청하고 합류한 독일인, 러시아인도 있었다. 랠리단은 각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뒤, 통관심사대 앞에 세워둔 차에서 먹고 자는 ‘차박’을 했다.


러시아 대사관의 중재로 10만위안(약 1700만원)의 보증금을 걸고 차량 5대만 국경을 넘었다. 각 차량에 연결된 무전기에서 “중국 국경이 만리장성보다 높고 험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일정 지연을 감수하면서도 중국 랠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민족의 아픔이 깃든 하얼빈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인 최 표트르가 9일 안중근 박물관의 동상 앞에 국화꽃을 헌화하고 있다. 하얼빈/옥기원 기자


안중근 동상 앞에 선 최재형 증손자


다시 밤낮없이 1700㎞를 달려 9일 오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사에 있는 안중근(1879~1910) 기념관에 도착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증손자인 최 표트르가 대표로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최재형 선생과 안중근 의사는 인연이 깊다. 최 선생은 러일전쟁 전후 러시아를 상대로 군납 사업을 벌였다. 그는 여기서 큰돈을 벌어 독립운동 단체와 한인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안 의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는 최 선생을 ‘대부’라고 불렀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그가 자금과 총을 지원했지만 안 의사는 끝까지 배후를 말하지 않았다. 안 의사는 조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뤼순(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0년 3월에 숨졌고, 최 선생은 1920년 4월 일본이 연해주 지역의 한인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처형됐다. 이들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표트르는 안 의사의 동상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가슴 한켠에 쌓인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았다. 그의 가족사를 알고 있는 랠리단원들도 먼발치서 눈시울을 붉혔다. 표트르는 “(증조)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하얼빈에 꼭 와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할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살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표트르는 모스크바의 한국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전역에 자신의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랠리단원은 기념관 창문 너머 동판으로 표시된 안 의사의 저격 장소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러시아 참가자 알렉산드라 불라빈은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보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독립 의지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물관에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랠리단원들이 731부대 기록관 안에 보존된 부대 터를 둘러보고 있다. 하얼빈/옥기원 기자


731부대 만행에 분노한 고려인들


앞선 7일, 고려인 3세 박 바실리는 하얼빈시 외곽에 있는 731부대 기록관에 전시된 일본군의 생체실험 기록 앞에서 “할아버지 세대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탈린 정권 시절인 1937년 일제의 스파이란 누명을 쓰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했다. 그 역시 일제강점기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는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모국, 한국 땅을 직접 밟으려고 랠리에 참여했다.


731부대 자리에 조성된 기록관에는 1932~1945년 일본군 과학자들이 세균전을 위해 항일운동가와 중국, 러시아 포로 등 3000여명에게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전시되어 있었다. 통나무란 뜻의 ‘마루타’를 불에 굽거나 매독균을 주입하고, 총알을 관통시키는 등 생체실험 종류만 100가지가 넘었다. 영하 30도의 날씨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뿌리며 동상 실험을 한 장면이 재현된 공간에서 랠리단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모두 여섯 구역으로 구성된 기록관 곳곳에서 관람객의 무거운 표정과 한숨 소리가 뒤섞였다.


랠리에 함께한 브라질 동포 공인구씨는 “역사책에서 봤던 악행을 직접 확인하니 더 분하고 화가 난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느냐. 일본 정부는 경제 선진국을 말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과오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기록관 옆에는 731부대 터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일본군은 2차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어지자 부대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증거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타다 남은 건물 잔해와 터만으로도 실험실과 감옥 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생체실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려인 3세 김 위고르는 “이건 인류에 대한 테러다. 잘 기억해뒀다가 많은 사람에게 일본의 악행을 알려주고 싶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진실을 알리고 밝히는 일을 한다면 일본에 단죄할 수 있는 순간이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한 오토랠리 차량들이 중앙아시아 지역 초원지대에 서 있다. 조용필 동북아평화연대 랠리단장 제공


홍범도, 고려인…아픈 역사를 되짚다


랠리단 차량은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한반도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렸다. 이는 일제강점기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18만 고려인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지난달 19일 랠리단이 방문한 카자흐스탄 중남부 크질오르다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의 묘지와 동상이 마련된 곳이다. 그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자, 일제 식민지 시절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피해자다. 백두산 호랑이로 불렸던 그는 러일전쟁의 여파로 독립군 세력이 뿔뿔이 흩어진 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했다. 그곳에서 극장 수위 일을 하며 전전하던 그는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랠리단원들은 독립을 위해 일본에 맞선 홍 장군의 업적을 기리면서 그를 비롯해 황무지에 버려져 쓰러져간 고려인을 추모했다. 고려인 3세 최 레오니드는 “고려인 강제이주는 우리 동포가 겪은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할아버지 세대부터 지금까지 숱한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유지였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동포들은 랠리단원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다. 언어는 거의 통하지 않아도 ‘반갑소’, ‘한잔하오’, ‘건강하오’ 이 세 마디면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유럽 참가자들은 이들이 얼싸안고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용필 동북아평화연대 랠리단장은 “우리 동포의 따뜻한 환영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반도를 꼭 종단하라’는 당부를 했다. 애초 그들한테는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뉜 것이 아닌 하나의 나라였다. 동포의 소망을 담아 꼭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가고 싶다. 이번 랠리를 통해 한반도는 하나고 유라시아와 연결된 대륙 국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의 동포들이 랠리단 환영 행사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랠리추진위원회 제공


대장정의 끝, 하나된 조국을 꿈꾸다


랠리단은 11일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있는 방천 전망대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북한 두만강역을 망연히 바라봤다. 중국의 훈춘과 북한 나진, 러시아 하산은 두만강 물줄기로 서로 나뉜다. 새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오갔지만 국경은 철저히 막혔다.


랠리단은 이날 하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에 들어가 랠리를 이어갈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한국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북쪽에 30명의 방북을 요청했다. 북쪽 관계자에게 구두로 긍정적인 답변도 받았지만, 랠리 일정 중 한미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파로 연락이 끊겼다. 한마음으로 달려온 길이 종착지 앞에서 막혔다는 아쉬움에 서럽게 눈물을 쏟은 단원들도 있었다. 박정곤 오토랠리 준비위원장은 “1만5000㎞를 달려와서 이렇게 북측 땅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설사 (북한에) 못 들어가도 유라시아 지역에 한반도 평화통일의 염원을 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우리의 질주가 평화통일로 가는 여정을 조금 더 앞당겼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북한 국경은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물리적 장벽에 불과했다.


훈춘 방천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 땅과 하산 철길. 훈춘/옥기원 기자


12일 랠리단은 다시 국경을 넘어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열린 최재형 선생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기념비는 그가 1919년부터 숨지기 전까지 살았던 고택을 새로 단장한 ‘최재형 기념관’ 내부에 세워졌다. 그가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인 동의회 조직 문구, “조국을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에 꽃을 보아도 눈물이요”가 쓰인 현판 앞에서 많은 참가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랠리단은 러시아 하산에서 북쪽의 입북 허가를 기다려본 뒤, 그 뜻이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동해항으로 출발한다. 광복절인 15일에 한국에 도착하면 나눔의 집 방문과 5·18 민주화운동 묘역을 참배하는 일정이 남아 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42일간의 대장정은 오는 20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끝난다.


하얼빈 훈춘/옥기원 기자 ok@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