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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매춘 발언' 류석춘 교수, 이번엔 "전태일 착취 없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입력 : 2019.10.11 17:26 수정 : 2019.10.11 19:21


아베규탄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연세대  재학생들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아베규탄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연세대 재학생들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월간조선에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글을 기고하자 전태일재단이 규탄 입장문을 냈다. 류 교수는 지난달 19일 연세대 ‘발전사회학’ 수업 중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류석춘 교수는 월간조선 10월호 특집 ‘박정희, 오해와 진실’에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했다고? 농촌 유휴인력을 마이카 가진 중산층으로 키워’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냈다. 류 교수는 “전태일은 16세 되던 1964년 봄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해 만 3년 만에 월급이 15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정확히 10배 올랐다”며 “이를 두고 과연 누가 착취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가?”라고 했다.


류 교수는 “<전태일 평전> 내용을 꼼꼼히 따져본 결과, 1960년대 봉제산업 노동자의 상황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착취’라는 단어는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또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집권한 초기 절대빈곤 상황에서 국민 대부분이 ‘마이 카’ 그리고 ‘마이 홈’을 누리는 시대를 거쳤다”고도 했다.


전태일재단은 11일 ‘류석춘 교수의 곡학아세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재단은 “류 교수는 당시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전태일이 재단사가 되어 임금이 10배가 올랐다고 해도 하루 일당으로 커피 10잔 값밖에 되지 않는 저임금이었다. 류 교수는 임금의 액수만 이야기하고 실질 구매력에 대해서는 무시했다”고 했다. 재단에 따르면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적게 잡아도 주당 105시간으로, 일요일 휴무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다. 재단은 “당시 미싱사들은 주로 ‘객공’이라는 도급제 방식으로 일했다. 그래서 시다와 미싱보조의 월급도 미싱사가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노동자의 월급으로 주어야 했던, 그래서 미싱사가 실제 가져가는 월급은 훨씬 적었던 기막힌 노동구조를 류석춘 교수는 아예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했다.


재단은 “류석춘 교수처럼 편협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불순하게 전태일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역사에 또 다른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며 “그런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의 불행이고 우리 사회의 적폐”라고 밝혔다.


재단은 “무지와 왜곡투성이의 내용으로 전태일과 노동자들을 박정희 정권을 왜곡하고 미화하는 데 활용했다”며 교수직에서 물러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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