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703


영주도(營州道)

1997년 송기호


발해시대의 중요 대외교통로.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에는 국도인 상경(上京)을 중심으로 하여 각 방면에 이르는 교통로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장령부(長嶺府)는 영주(營州)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이 교통로는 당나라의 장안(長安)으로 직통하는 육로교통의 간선도로였으나, 거란(契丹)·돌궐(突厥) 및 안사(安史)의 난으로 여러 차례 차단됨으로써 발해와 당나라와의 사신교환에는 점차 압록부(鴨淥府)의 조공도(朝貢道)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경로는 『신당서』 지리지에 인용된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상경에서 출발하여 첫 도읍지였던 돈화(敦化)를 지나 장령부(현재의 길림성 해룡현 산성진) 관내를 통과한 다음 심양(瀋陽)·흑산(黑山)·북진(北鎭)·의현(義縣)주 01)을 거쳐 영주에 이른다.


영주는 현재의 요령성 조양(遼寧省朝陽)으로, 당시에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를 두어 당나라의 동방경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다시 고북구(古北口)를 지나 당나라의 장안에 이르게 된다.


이 교통로를 이용한 구체적인 사례로서는, 732년에 발해가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공격하자 당나라측이 대문예(大門藝)를 유주(幽州)에 보내어 발해를 치도록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簡史 (王承禮, 黑龍江人民出版社, 1984)

渤海國志長編 (金毓黻, 華文書局, 1934)


주석

주01 당시의 燕郡城(연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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