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이걸 어떻게 옛이야기로만 볼 수 있나
출처 엔터미디어 | 작성 정덕현 | 입력 2015.03.16 16:32

'징비록' 400년 전 류성룡이 우리에게 보낸 경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생겨날까. KBS 주말사극 <징비록>이 던지는 굵직한 질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벌어진 여러 국가적 사안들과 전쟁의 전조들, 피폐해진 나라 살림에 더해 붕당을 이뤄 권력에만 몰두하는 정치세력과 국제정세를 읽어내지 못하는 왕의 리더십 등 <징비록> 안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드러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들어있다.

하필 지금 현재 <징비록>이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론 당장 왜란과 같은 전쟁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터질 위험성이 다분한 현재가 아닌가. <징비록>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들이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선조(김태우)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물론 그것이 흩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지라도 왜란을 방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 지도자로서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조는 군역을 통해 축성을 멈추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류성룡(김상중)에게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거기에 대해 류성룡은 지주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받아 군역을 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조는 지주들 또한 백성이라며 갑작스런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문제는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연말정산 문제만 두고 봐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들의 세 부담만 더 커졌다는 게 그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국고가 여의치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 생긴 일은 아닐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나라 망치는 엄청난 사업에 엉뚱하게도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군량미를 빼돌려 치부하는 양반들의 이야기는 최근 벌어진 방산비리로 구속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라와의 개인 메시지 공방을 벌였던 일로 존재가 알려진 이규태 회장의 이 비리 규모는 무려 500억대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의 방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민의 혈세가 사적인 치부로 이어지는 상황. <징비록>이 그리고 있는 왜란 직전의 분위기와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군역과 축성이 힘들다고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낸 선조의 조치는 마치 대선 때마다 흘러나오던 '선심성 공약'을 그대로 닮았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뒤집고,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는 결국 흐지부지 중단하는 상황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당장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변명이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공약을 왜 내건단 말인가.

이미 왜국에서는 전쟁준비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동인 서인으로 나뉘고 또 그것도 모자라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각자 이권에만 몰두하는 상황 또한 지금의 정당 정치와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늘 국민을 호명하지만 거기에 늘 국민들은 소외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만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르는 현실 속에서 지주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에게서 진정 서민들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징비록>은 400여 년 전에 벌어진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는 지금 현재에 닿아 있다.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반복되어 비슷한 양상으로 생겨나고, 그 결과는 또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이 사극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류성룡이 <징비록>을 써내려간 진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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