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70205


한강을 널빤지로 건너다니... 서울시민 슬픔의 발걸음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29] 1951년 4월의 전란 현장 Ⅱ

19.10.31 18:02 l 최종 업데이트 19.10.31 18:02 l 박도(parkdo45)


▲  Vance Jobe 하사가 찍은 사진으로 피란민들이 등에 애기, 짐, 무게가 많이 나가는 쌀 꾸러미 등을 잔뜩 짊어진 채 한강 부교를 건너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1951. 4. 29.). ⓒ NARA


1951년 봄, 유엔군 측은 38선 북쪽의 임진강-연천-화천-양양으로 이어지는 '캔사스선(Kansas Line)'을 방어 지역으로 확보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북진 의지를 무시한 채 좀처럼 캔사스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엔군의 처지에서는 압록강까지 진격하더라도 그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라 더욱 거센 중국군의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곧 미국은 무작정 한국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큰 이유는 이 전쟁에서 미국이 장기전에 휘말려 힘을 낭비하기를 그 누구보다도 소련은 바라고 있었다. 이것은 미소 냉전 체제 하에서 힘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그래서 미국은 더 이상의 확전을 주저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현 접촉선에서 정전으로 일단락하려는 것이 미국의 계산법이었다. 이에 유엔군 측에서는 적이 정전회담장에 나오도록 적당한 수준의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현 접촉선이 휴전선이 됐을 경우를 대비해 방어에 유리한 고지 확보에 힘썼다.


이번 회는 NARA 소장 1951년 4월의 전란 현장 사진을 담았다.

 

 Vance Jobe 하사가 찍은 사진. 1년 사이에 세 번째로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손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천 명의 서울 거주자들이 집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단지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만 챙겨서 등에 짊어지고 피란민들은 행렬을 지어 한강의 북쪽 강둑으로 집결해서 더 안전한 지역인 강의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역사적인 수로인 한강을 건너고 있다. 


▲  Vance Jobe 하사가 찍은 사진. 1년 사이에 세 번째로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손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천 명의 서울 거주자들이 집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단지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만 챙겨서 등에 짊어지고 피란민들은 행렬을 지어 한강의 북쪽 강둑으로 집결해서 더 안전한 지역인 강의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역사적인 수로인 한강을 건너고 있다. 이때 그들은 부교 위에 놓인 적은 널빤지로 만든 다리 위로 걸어서 이동했다. 부교의 한 지점에 무게가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 중간 경찰이 그들의 이동을 제한했기에 그들의 이동은 더뎠다. 피란민 중 일부는 작은 배를 이용해서 한강을 건넜다(1951. 4. 29.). ⓒ NARA


▲  서울시민들이 한강 부교로 세 번째 피란을 떠나고 있다(1951. 4. 49.). ⓒ NARA


▲  부산 근교의 동해남부선 철길(1951. 4.). ⓒ NARA


▲  진해 근교의 한 어촌마을(1951. 4.). ⓒ NARA


▲  진해 근교의 한 어촌마을(1951. 4.). ⓒ NARA


▲  진해 근교의 한 어촌마을(1951. 4.). ⓒ NARA


▲  유엔군과 국군이 중국군 포로를 조사하고 있다(1951. 4.). ⓒ NARA


▲  유엔군이 전투 중, 포로를 생포하고 있다(1951. 4.). ⓒ NARA


▲  국군 헌병들이 중국군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 이송시키고자 포로수집소 앞에 집결시키고 있다(1951. 4.). ⓒ NARA


▲  포로수용소(1951. 4.). ⓒ NARA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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