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 척 세상을 속이는 자 누구인가 
[출판] ‘담배와 폐암은 무관’ ‘산성비 주범은 화산’ 등 기업과 결탁한 과학자의 대중선동술 파헤친 <의혹을 팝니다>
▣ 하어영  [2012.02.06 제896호]

#1 4대강 사업이 진행되기 전 학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국책연구기관에서는 4대강 수질 개선과 홍수피해 방지를 내세웠다. 결과는 어떤가. 역행침식(침식이 상류에서 하류로 서서히 진행되는 일반적 양상과 반대로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급속히 진행)으로 지류가 무너지고, 수질은 악화됐다. 장마를 견디지 못해 다리가 무너지는 인재가 발생했다.

#2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테러가 있었다. 디도스 공격만으로 선관위 사이트가 일부 접속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대다수 인터넷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디도스 공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혹을 갖고 있고, 일부 과학자들은 여전히 “디도스 공격만으로도 홈페이지의 일부 기능 마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의혹을 팝니다: 담배산업에서 지구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미지북스 펴냄)에서 말한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에 관해 우리를 혼란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이 활용됐는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수많은 쟁점들(특히 환경)에 관해 혼란을 퍼뜨리고 과학적 증거에 맞서 싸우고 의혹을 팔아먹는 게 누구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은 ‘담배 전략’이다.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과학의 외피를 쓴 대중 선전·선동 전술이다. 과학적 합의를 논쟁으로 변형시키려는 협잡이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과학에 기반을 둔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의 ‘선전’이 그들의 전부다.

그들이 전파하는 의심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들에 대한 공격 도구로 쓰인다. 담배 전략에서는 담배와 암의 인과관계에 관한 의혹이 존재하는 한 담배업계는 소송과 규제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성과를 거뒀다. 폐암의 원인이 흡연이 아니라 유전적 취약성 때문이라는 고전적 논리부터 흡연과 암의 인과관계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라는 논리까지 그들이 제기한 의심은 소송을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학계의 합의가 도출된 사안에 대해 연구가 아닌 명망을 앞세운 주장으로 미국의 언론은 들썩였다.

과학자 아닌 ‘기업의 용병’

담배산업이 벌인 담배 전략의 성공은 무기산업, 화석연료 산업, 에어로졸 산업 등 미국의 주요한 기업군에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과학자들이 동원됐다. 저스트로, 사이츠, 니런버그, 싱어, 이들은 담배와 관련된 생물학자나 의학자가 아니고, 화석연료나 그로 인한 오존층을 연구하는 대기과학자나 지질학자도 아니다. 그들은 은퇴한 물리학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물리학자로 과학적 명성을 얻었거나 냉전시기에 정부에서 주요한 국방 관련 업무를 수행한 사람들이다. 또 보수적 싱크탱크인 마셜연구소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자유시장주의자’이자 ‘(넓은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혐오하는) 반공주의자’다. 그들은 베트남전 이후 형성된 전반적인 (자유시장주의적이 아닌)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기류, 그 중심에 있는(중심이라고 그들이 판단한) 환경운동에 맞서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다. 책에서는 이들을 ‘의혹의 상인’ ‘기업의 용병’이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산성비와 오존구멍은 배기가스 때문이 아니라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피부암의 원인이 오존층 파괴가 아니라 바이러스나 유전, 환경 발암물질 같은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주장한다. 담배 전략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외피를 쓴 이들의 거센 주장은,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언론에 의해 선택되고 미국인들의 인식에 잠입하는 성과를 얻는다. 최근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다. 온난화의 주된 원인은 태양이라는 것부터 이 논의 자체가 불확실성의 영역이라는 것까지 이들의 논리는 과학과 미신을 넘나든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1990년대 중반 학계에서 그 원인은 인간이고 실제로 진행 중인 심각한 사안이라는 국제적 합의에 이른 주제다. 이들에게 이런 합의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용병들은 온난화라는 주제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다. 2007년 한 미국 언론매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0%는 여전히 지구온난화는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물론 여전히 흡연이 사망을 유발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25%에 이른다.

미국 과학자들의 자성은 없었을까. 책에서는 “학계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공식적인 성명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명은 무미건조하고 보통 사람이 그 의미를 해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과학자들은 고도의 전문가이지만 청중과 소통하는 법은 훈련받지 못해 ‘풍부한 자금과 단호한 결의로 무장한 궤변론자’에 맞서 과학을 옹호하는 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내켜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용기를 내 대중과 호흡하려 했던 양심 있는 과학자들의 사례는 과학자들이 왜 대중과 소통하기를 꺼리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칼 세이건, 벤 센터, 마이클 만 등 지구온난화나 자연재앙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한 과학자들은 기업의 용병을 자처한 과학자들이나 보수 정치인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거나 지금도 곤란을 겪고 있다.

≫ 지구온난화는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 된다.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놓인 남태평양 투발루. <한겨레> 류우종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담배의 유해성, 지구온난화, 산성비 등은 미국만의 일일까. 늘어가는 청소년 흡연율,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등은 바로 우리 문제다. 드물게 정부가 먼저 과학적 논의를 주도했던 사안도 있다. 천안함 사건이다. 물론 정부의 의도와 달리 최소한 ‘과학적으로는’ 미제 사건이 됐다. 국방부가 폭발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천안함의 흡착물질(알루미늄산화물)이 어뢰 폭발물질이 아님이 실험으로 밝혀졌다(836호 표지이야기 ‘천안함 흡착물은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폭발재가 아니다’ 참조). 학계는 침묵했다. 우리도 책에서 말하는 미국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어영 기자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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