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1031.22016200716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30> 모피의 고향

고조선, 백두산서 나온 호피 중국에 되파는 중계무역한 듯

예나 지금이나 추워서 입기보단 신분 과시용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10-30 20:11:00 |  본지 16면


에르미타쥐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는 2000년 전 흉노족 털모자. 흉노인에게 모피는 필수품이었다.


필자를 영하 30~40도를 왔다갔다하는 시베리아의 추위 속에서 지켜준 건 모피코트와 털모자였다. 추운 겨울을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뜻한 부산에서도 모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한국이 아무리 아열대로 바뀌어도 모피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듯하다.


나와 친한 어떤 학자는 러시아가 한참 어려웠을 1990년대 중반에 미국에 3개월간 출장을 다녀왔다. 물가 차이가 제법 있을 때였으니 돈을 좀 아껴서 생활에 보탤줄 알았는데, 웬걸 출장비를 아껴서 최신 모피코트를 사입고 나타났다. 그 모피를 보면서 다른 여성 연구원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황홀해하는 눈빛을 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모피를 좋아하는지 알듯했다.


하긴 한국 동물원에서 제일 인기있는 동물이 호랑이나 코끼리지만 노보시비르스크 동물원에 가서 보니 담비하고 족제비 같은 모피동물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듯하다.


모피는 현대 사람들의 값비싼 사치품이기 전에 북방 지역을 상징하는 물품이기도 하다. 추운 북방과 온대의 동아시아를 연결했던 물품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고조선과 예맥족도 예로부터 모피로 유명했다. 중국의 시경(詩經)이라는 책에는 말곰가죽을 바친 '한후(韓候)'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 시대는 기원전 12~13세기경이다. 중국기록 속에는 최초의 우리민족의 기사로 그때에 이미 모피가 유명했다는 게 나와있다. 또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관중이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는 제나라의 환공과의 대담내용을 기록한 관자(管子)에서도 고조선의 특산품이 모피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관중은 산동반도에 있었던 제나라의 환공에게 각 지역의 특산품을 이야기하는 중에 고조선은 모피가 비싸니 이를 사면 큰 돈을 얻을 것이라는 얘기하고 있다. 정작 고조선은 요동지역~서북한 지역에 있었으니 실제 모피가 나오는 백두산의 모피를 받아서 중국에 되파는 중계무역을 한 셈이다.


그런데 관자가 말하는 모피는 문피다. 즉, 文은 얼룩이라는 뜻이니 요즘말로 하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인 호피무늬인 셈이다. 그냥 모피도 구하기도 어려운 데 호랑이 가죽이라니? 이 말은 모피가 추워서 입는 게 아니라 신분의 상징임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맹수의 으뜸인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기원전 7세기대에 제나라는 중원의 패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각지의 제후들에게 그럴듯한 선물을 줘서 그들의 세력을 무마시켜야 할 시점이었다. 이때에 고조선에서 들어온 호랑이나 표범 코트를 주변의 나라에게 하사하면서 힘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추위를 견디는 모피는 이렇게 온대지방으로 오면서 사치품으로 바뀌었는데, 때로는 격에 안 어울리게 자기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920년 발해의 사신으로 일본에 간 배구는 풍락원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 배구는 발해의 특산품인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정작 일본의 시케아키라 왕은 담비가죽 옷을 8벌이나 껴입고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가 장마철이라 습기차고 더운 날씨였다고 하니 체면치레한다고 꽤나 고생했을 것 같다. 요즘에 차도 필요없는 사람이 외제차로 한껏 멋을 내거나 자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으로 치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으니 사치와 과시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난방이 잘 안되던 옛날이야 그렇다고 해도 요즘같이 온난화 현상도 심각하고 난방도 잘 되는 때에 모피코트는 자기과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욕심때문에 애궂은 모피동물들이 희생당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이해가 된다. 가끔씩 서양의 늘씬한 모델들이 나와서 누드로 시위하는 모습으로 시선을 끌기도 하는데, 정작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는 신경도 안 쓴다. 그래도 필자가 러시아에 있을 때에 일단의 자연보호단체에서 길에서 캠페인을 하면서 가죽때문에 짐승을 죽일 필요가 있느냐면서 서명운동에 동참한 것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러시아 친구는 기가 막혀서 "그럼 고기도 먹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하고는 피했었다고 한다. 모피없는 러시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 노보시비르스크의 날씨는 영하 15도 내외라고 한다. 요즘 같은 더운 가을에 모피코트를 입고 하얀 눈속을 헤치던 시베리아의 초겨울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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