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91201.22020195302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11> 초원의 천마, 신라에 내려앉다

뿔 장식 말은 초원의 전통… 뿔 난 신라 천마도와 닮아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9-11-30 20:00:40 |  본지 20면


- 알타이 파지릭문화 적석목곽분에 뿔로 머리 장식한 말 미라 출토…제사·의식 등 곳곳에 쓰인 듯

- 고조선 최상위 무덤 추정되는 中 요령성 유적서도 뿔 장식 출토…천마도 전래 과정 증거일 수도


콘서트에서 대형가수가 나오기 전 오프닝 밴드가 먼저 나와 관객의 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런데 이 오프닝 밴드가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가 가끔 있다. 천마총 발굴도 비슷하게 시작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 경주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민족문화를 창달한다는 목적으로 신라의 대형고분인 98호분(황남대총)을 발굴해 전시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사와 발굴의 경력이 일천했던 한국 고고학계는 축적된 경험 없이 대형고분을 발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옆의 조그만 고분부터 발굴했다. 1973년 말까지 8개월에 걸쳐 발굴된 155호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고분에서 신라 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천마도가 발견되었다. 천마도는 75×56×0.6㎝의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말 그림이다. 말은 입에서 허연 입김을 내뿜고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을 헤쳐 나가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천마가 그려진 유물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障泥)다. 말다래는 달리는 말의 발굽에 채인 진흙이 기마인의 다리에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달리는 말의 옆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용도도 겸했다. 이 천마도 덕에 155호분은 천마총이라 개명되었고 이후 발굴된 황남대총보다도 더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경주 고분의 여러 유물과 함께 신라의 북방 초원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꼽히게 됐다.


■천마도, 기린인가 말인가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신라의 천마도.


얼마 전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흥미로운 유물이 전시되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적외선 투시도가 공개된 것이다. 천마도의 재질이 빛에 민감하고 잘 부스러지는 자작나무 껍질인지라 전시를 하지 않고 특수한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전시한 것이다. 이 전시회에 맞추어 보존처리 과정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두었던 사진을 공개하였다. 그 결과 실제 유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말 이마 위의 뿔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몇 년간 지속되었던 천마도의 진실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즉, 천마도는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기린은 현재의 동물인 기린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고대 중국신화에서 기린은 말이나 사슴과 같은 몸집에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묘사되어 있다. 적외선투시도로 천마의 머리 위에 뿔이 있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었다는 점이 기린설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몸통이며 모든 형태가 말에 가까워서 이 동물을 기린이라고 단정지을 근거는 많지 않다. 천마도가 출토된 상황을 봐도 그렇다. 신라 고분에서 천마도 이외에 고대 중국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 유물이나 그림이 나온 적도 없다. 또 관련유물은 고분에 묻힌 신라 임금의 저승길을 함께 할 말의 마구다. 사자(死者)가 타고 저승길을 날아갈 말의 옆구리에 그려진 그림이니 기린보다는 천마를 그렸다고 보는 게 합당할 듯 하다.


■뿔달린 말, 초원을 거쳐서 고조선으로

의식에 참가하고 있는 파지릭 전사와 말. 머리의 뿔 장식이 눈길을 끈다.


말의 머리를 뿔처럼 장식하는 풍습은 초원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초원민족의 수많은 무덤에 같이 묻힌 말들은 대부분 머리에 뿔 장식을 했으며, 제사나 의식에 쓰이는 성스러운 말에도 뿔 같은 장식을 했다. 기원전 7~3세기 알타이에서 번성한 파지릭문화의 적석목곽분에서는 다양한 말의 장식과 함께 말의 미라가 발견된 적이 있다. 모든 말은 예외없이 머리에 뿔 같은 장식을 하고 있었다. 천마총의 뿔도 자세히 보면 V자형으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파지릭문화의 뿔도 V자형으로 되어서 마치 사슴을 닮기도 했다.


파지릭문화의 화려한 장식은 무덤에 묻기 위해서나 퍼레이드와 같은 특수 의식에서만 장식했을 것 같다. 실제 사냥이나 전투에서는 이렇게 화려한 장식은 오히려 장애가 되었을 테니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천 개의 알타이와 초원지역의 암각화에서 실제 전투나 기마상에서 말의 머리에 커다란 뿔 같은 것을 표시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전투나 사냥 장면에서 조금 작은 뿔 같은 것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장식이 아예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뿔장식은 고조선의 최상위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요령성 심양 정가와자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1975년에 발굴된 정가와자 6512호 무덤의 마구장식을 복원한 그림을 보면 머리에 나팔 같은 청동기를 달고 그 위로 술 같은 것을 달았다. 정가와자에서 발견된 나팔처럼 생긴 청동기는 한국의 금강유역 세형동검문화(기원전 4~1세기)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마구가 같이 발견되지 않아서 실제 말의 장식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천마도의 또 다른 비밀


알타이 파지릭고분에서 나온 말의 미라와 말 머리의 뿔 장식.


천마도에서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왼쪽 앞발이 90도로 접혀있다는 것이다. 말 그림이 부지기수로 많은 초원에서도 이렇게 한쪽 발을 접은 예는 별로 없다. 하지만 서기 1~5세기에 남부 시베리아에 대형 목곽분을 만들었던 타쉬트익문화에서는 이런 형태의 말 그림을 주로 썼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예니세이강 유역의 테프세이 고분에서 발견된 자작나무 껍질의 수렵도를 보자. 여기에서 말의 머리에는 뿔같은 것이 있고 한쪽 발은 접혀있다. 그렇다고 타쉬트익문화가 신라 천마총의 기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거리적으로 너무 멀고 또 말을 그리는 형태만으로 직접적인 관련을 찾을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쪽 발이 접히는 사슴은 파지릭문화에도 등장하지만, 맹수에 사냥당하며 한쪽 발을 굽히는 장면이라 천마도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쪽 발이 접히는 말그림은 흉노의 늦은 단계에 등장한다. 타쉬트익문화 역시 흉노의 강력한 영향으로 대형고분과 마구를 썼던 문화다. 흉노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끝의 타쉬트익문화와 신라고분에서 자작나무에 그려진 비슷한 말그림이 표현된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중국 고대 사서인 '송서(宋書)'에는 '요동(遼東)지방의 말에 뿔이 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마도 천마사상에 입각해서 말의 머리를 장식하던 풍습이 남아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만주의 선비문화에서는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유물들이 심심치않게 출토되고 있지만 말그림 같은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향후 만주의 유목문화에서도 천마도의 계통을 찾을 실마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천마, 고인을 하늘로 인도하다


기원전 3500년께 사람의 역사에 말이 들어온 이래 빠른 속도로 사람을 실어날랐고 무시무시한 무기로 쓰이기도 했다. 말은 다양한 문화에서 천마, 유니콘, 페가수스, 그리핀 등 다양한 신화적인 존재로 재창조되었다. 천마도가 기린인지 말인지 하는 논쟁은 어쩌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저승으로 가는 신라 임금의 말장식에 새겨진 환상적인 동물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 최고위층의 복잡한 정신문화가 녹아있는 이 그림을 2000년 가까이 지난 우리가 어떤 동물이라고 정확히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천마도는 북방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의 껍질에 그려졌으며, 다양하게 표현되는 천마사상의 발현이라는 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기린을 성군이 나올 때에 등장하는 동물이라고 믿었다. 또 '기린아'라는 말에서 보듯이 재능이 특출하거나 용맹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신라고분에 숨겨진 여러 북방 초원문화를 가장 극명하고 특출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천마도는 한반도와 초원을 이어주는 '기린아'임이 분명하다.


또 한가지 천마도의 논쟁에서 잊지 말아야할 점이 있다. 바로 35년 전의 열악한 환경에서 부스러지기 쉬운 자작나무의 그림을 세심하게 발굴하고 보존한 고고학자가 없었다면 이 그림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공기와 닿으면 순식간에 먼지처럼 부스러지는 자작나무을 원형대로 발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시베리아에서 자작나무 껍질을 직접 발굴하며 실감했다. 화려한 유물 뒤에는 항상 고고학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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