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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현무문의 쿠데타

기사입력 2011. 03. 02   00:00 최종수정 2013.01.05 06:34


당 태종, 아버지와 형 몰아내고 황제 즉위


 


당 태종 이세민의 증손자인 의덕태자(682~701)묘 벽화에 보이는 당나라 장안성의 궁정을 지키는 호위무사 모습. 당 태종 이세민은 궁궐 안에서 형제들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고서야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위지경덕이 호수 위에서 당 고조를 배알하는 순간에도 궁궐 안에서 병사들 간의 싸움은 계속됐다. 당 고조의 명을 받은 배구가 싸움터에 나타나 “황제의 명이다”며 “싸움을 그만둬라”고 하자 그제야 병사들이 모두 흩어졌다. 필자 제공


훗날 당 태종이 된 이세민은 젊어서 유교 경전 교육을 받았고 서예에 뛰어났다. 학문적 능력과 더불어 뛰어난 승마 기술과 활 솜씨를 지닌 전사였다. 그는 중국 전통에 따라 황위 계승 서열이 앞서 있던 그의 형 황태자 이건성과 충돌했다.


621년 당 고조가 이세민에게 낙양을 중심으로 중원 동부의 문무 행정을 담당하게 하자 이세민의 군사력을 두려워한 황태자 형과 동생 원길이 암살 음모를 꾸몄다. 명성은 세민이 단연 높았고, 형은 동생이 자신을 몰아낼까 두려워했다.


형제 사이에 알력이 계속 생겨났고, 정치투쟁으로 비화됐다. 처음에는 형이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동생은 음모의 희생자가 되는 듯했다. 골육상쟁의 비극은 아버지 당 고조가 아들 이세민을 시기하는 토양에서 생겨났다.


624년 윤 7월 21일 이원길의 비빈들이 당 고조에게 일러바쳤다. “이세민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천명을 가졌으니 바야흐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인데 어찌 하찮게 죽겠는가’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당 고조가 이세민을 불러 말했다. “천자란 하늘의 뜻이 있어야 오르는 것이지 지혜와 힘으로만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천자인 나와 태자인 형이 너의 앞에 있는데 그리 천자가 되고 싶으냐?”


이세민은 일단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소문의 진원지와 어떻게 해서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었는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청했다. 당 고조가 진노했다. “이놈- 너의 잘못을 네가 모르고 있구나”라고 하려는 순간이었다. 한 관리가 급히 들어와 당 고조에게 보고를 했다. “돌궐이 북방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고 있습니다.”


626년 6월 정변 일으킨 이세민 병력 한곳에 집중해 열세 극복


당 고조는 얼굴을 바꾸어 이세민을 향해 웃었다. 그리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그동안 돌궐 놈들을 막아내느라고 힘들었지. 요번에 한 번 더 수고를 해야겠구나.” 그리고 이세민이 출병을 하는데 당 고조가 장안에서 함양의 동쪽까지 와서 전별을 했다.


‘자치통감은’ 이세민을 대하는 당 고조의 태도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황상은 적의 노략질과 도적질이 있을 때마다 이세민에게 명령을 내려 이를 토벌하게 하였지만, 일이 평정된 다음에는 시기와 의심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626년 6월 3일 이세민은 형제들에게 죽지 않기 위해 먼저 칼을 뽑을 결심을 했다. 직전에 그는 동생 원길이 짐독을 칵테일한 술을 먹고 피를 몇 되나 쏟았다. 형제들을 유인하기 위해 그날 저녁 이세민이 아버지 당 고조를 찾아갔다.


“신은 형제들에게 조금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는데 지금 신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서 군주이신 아버지를 영원히 작별할 수 있습니다.” 당 고조가 대답했다. “내가 내일 아침에 너희 형제들을 모아 놓고 직접 대질 심문을 할 터이니 너는 의당 일찍 참석하라.”


‘자치통감’은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4일 이른 아침이었다. 이세민의 형인 태자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심문을 받기 위해 궁중의 현무문으로 들어섰다. 함께 온 정예병 2000명은 문 밖에 남겨둔 채였다. 경비가 엄중한 궁성에 복병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임호전까지 와서야 비로소 이상한 공기를 느낀 두 사람은 서둘러 말을 되돌리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세민이 말을 타고 나타나 둘을 불렀다. “건성 형! 원길 동생! 어디로 가시는지요.” 그러자 이원길이 이세민에게 활을 쏘려고 했다. 하지만 놀라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시위가 당겨지지 않았다. 두세 번 더 시도했는데도 그러했다. 이세민이 활을 쏘았다. 태자인 형은 말에서 떨어졌고, 바로 즉사했다.


이세민의 부하 위지경덕이 70명의 기병과 현장에 차례차례 도착했다. 그들이 이원길을 향해 좌우 양방향에서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원길이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갑자기 놀란 이세민의 말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세민이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졌다. 머리에 충격이 갔고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 추격하는 병사들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온 이원길이 쓰러져 있는 이세민의 목을 활대로 눌렀다.


위지경덕이 말을 타고 들어와 말했다. “원길 왕자 그만두세요!” 놀란 이원길은 허겁지겁 아버지 고조가 있는 무덕전으로 도망을 쳤다. 위지경덕이 곧바로 추격했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이원길을 향해 활을 정조준했고,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화살은 이원길 등에 정통으로 꼽혔고,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죽은 태자 이건성의 부하인 설만철 이 2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현무문에 도착했다. 그러자 이세민의 부하 장공근이 문을 닫았다. 문 밖에서 수비하는 경군홍과 예세형이 설만철의 부하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아 아! 소리를 지르면서 경군홍과 예세형은 몸을 던져 싸웠고, 장렬히 전사했다.


패배해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반란을 일으킨 `역적'이 된다


피가 튀는 싸움이 지속됐다. 문을 돌파하지 못한 설만철이 군대를 돌려 이세민의 지휘본부인 진왕부(秦王府)를 박살내러 가는 순간 위지경덕이 이건성과 이원길의 머리를 현무문에 걸었다. 잘려진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갑자기 설만철의 궁부(宮府) 병사들의 시선이 잘려진 두 개의 머리에 집중됐다. 처참한 장면은 병사들의 마음에 싸늘한 비수가 되어 꽂혔다. 주인을 잃은 그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고, 대열이 무너졌다. 설만철은 수십 명의 부하와 함께 종남산으로 도망갔고, 나머지는 들로 흩어졌다.


당 고조 이연은 정변의 소식을 듣고 궁성 안의 호수 가운데로 배를 타고 도망했다. 완전무장한 위지경덕이 배를 타고 고조 앞에 나타났다. 자신을 죽이러 온 걸로 안 고조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 “어… 오늘 이 화란을 일으킨 사람은 누구인가? 경이 여기 와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위지경덕이 대답했다. “진왕(秦王) 이세민님이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주살했습니다. 제가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들은 당 고조의 입에서 저음의 소리가 나왔다.


동돌궐 칸에게 굴욕적 화의 요청 영웅의 첫 출발은 처참하고 초라


권력을 완전히 상실한 당 고조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니 깨끗이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세민을 황태자로 세워 대권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해야 했다. 그러자 이세민은 즉시 병사를 보내 이건성의 다섯 아들과 이원길의 다섯 아들을 남김없이 죽여 후환을 막았다. 이세민이 혈육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연금한 후 황제(당 태종)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문이 초원으로 흘러들어갔다.


태종의 궁색한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 동돌궐은 젊은 새 황제를 그냥 두지 않았다. 바로 그 달에 힐리가한은 10만 기병을 이끌고 장안 부근까지 진격해 왔다. 장안성 안에 동원할 수 있는 장정은 겨우 수만에 불과했다. 힐리가한은 위수(渭水)의 편교까지 진출한 후 사신을 성안으로 파견했다.


당시 정황은 압도적으로 동돌궐이 유리한 상태였다. 대군을 동원해 침입해 온 유목 군대를 당 태종은 무력으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동돌궐은 수확 없이 절대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게 확실했다. 당 태종은 어떠한 굴욕이라도 참고 전쟁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장안성에 있는 금은 비단 등 재물을 모두 끌어 모아 힐리가한에게 바치고 화의를 요청했다. 당 태종은 돌궐 칸에게 굴욕감과 동시에 공포를 느꼈다.


2명의 형제와 10명 조카들의 피를 뒤집어쓴 맹수 같은 그도 돌궐 칸에게는 개처럼 기어야 했다. 그는 앞으로도 돌궐에 코가 꿴 소같이 끌려 다니는 불쌍한 황제로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미래에 유라시아를 변모시킬 만큼 출중한 남자의 황제로서의 첫 출발은 이렇게 처참하고 초라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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