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629/1/BBSMSTR_000000010417/view.do


<123>기후변화가 인더스 문명을 멸망시켰다

기후와역사 전쟁과기상

기사입력 2011.06.29 00:00 최종수정 2013.01.05 06:57


인도 대가뭄에 찬란한 고대문명 사라져


“인도에서 최고의 신은?” 단연 인드라다. 인도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대기근이 닥친다. 인도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몬순(monsoon)이다. 인도양으로부터 몬순 비구름이 몰려와야만 한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히말라야 산 아래 꼬리를 틀고 있는 악한 신이 비를 내리지 못하도록 몬순 비구름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이때 악한 신을 물리치고 인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 바로 인드라인 것이다.


지구촌에 고대 문명이 세워진 것은 언제였을까? 고고학자들은 약 5000년 전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유역, 인더스강, 황하강 유역에서 인류문명이 꽃을 피웠다고 말한다.


모헨조다로 유적 발굴 도시 모습.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동판 유물.


4대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이들 고대문명의 공통적 요소는 큰 강을 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왜 강 옆에 문명을 세웠던 것일까?


인류 문명이 꽃을 피우기 전에는 고기후 연구에 의하면 후빙기 고온기가 3000년 동안 계속됐다고 한다. 고온기에 있을 때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비도 많이 내리므로 지구상의 넓은 지역이 생활하기에 적합했다.


따라서 특별히 강 유역을 고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5000년 전부터 차차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인류는 당시 농경 생활을 시작했기에 기온 저하는 엄청난 영향이었다.


고온기에 내리던 비도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물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물이 있는 큰 강 유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큰 강 유역에는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다. 물을 찾아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물의 양도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관개기술을 발전시켰다.


이주민들을 노예로 사용해 거대한 신전이나 피라미드 등과 같은 후세에 남는 유물을 많이 만들었다. 우리가 고대문명이 꽃피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유적을 만든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인더스 문명은 다른 문명과는 차이점이 있다. 메소포타미아·나일·황하 문명은 왕이 다스리는 강력한 통치체제였다. 이들은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건축물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에는 왕과 같은 강력한 권력이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수께끼의 도시 모헨조다로는 하라파와 함께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인더스 강 하류에 위치한 모헨조다로는 1920년 R. D. 배너지가 최초로 발견했다. 유적 발굴을 통해 모헨조다로가 만들어진 시기가 대략 B.C.4000년께로 추정됐다.


모헨조다로 유적은 크게 서쪽의 성곽요새지구와 동쪽의 시가지구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성곽요새지구에는 성벽을 따라 사방 각 30미터에 이르는 넓은 회랑과 회의장, 학습장, 목욕탕, 곡물 창고 등이 있다. 서쪽의 성곽요새지구는 종교와 행정에 관련된 기관들이 모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가지구는 포장된 길을 따라 집들이 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불에 구운 벽돌을 쌓아올려 지었는데, 집의 크기가 획일적인 것으로 봐서 주민들 사이에는 빈부격차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팀은 모헨조다로에 세 차례의 큰 홍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시는 예전처럼 재건됐음을 밝혀냈다. 이것은 고대였음에도 모헨조다로에 정밀한 도시 계획과 함께 홍수통제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정교한 문명이었던 인더스 문명이 B.C.1800년께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모헨조다로도 잘 계획된 도시에서 점차 빈민촌들이 생겨나는 도시로 변했다. 성곽요새지구에도 허름한 집들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행정기능은 마비상태로 빠져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헨조다로의 몰락을 시작으로 인더스 문명권의 여러 도시들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결국 인더스 문명권의 도시들은 B.C.1500년께에는 완전히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교한 문명을 자랑하던 인더스 문명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첫째, 아리아인의 침입이 원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아리아인이 도시를 공격한 흔적이 없으며, 아리아인의 침입과 인더스 문명의 쇠퇴 시기가 수백 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 때문에 현재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견해다.


둘째는 인더스 강이 범람해 큰 피해를 입어 쇠퇴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인더스 강의 범람 후에도 도시가 재건된 흔적이 발견됐기에 홍수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인도에 대가뭄이 닥치면서 모헨조다로 지역 등이 건조지대가 됨으로써 멸망했다고 보는 견해다. 토지의 건조화로 염분이 지표에서 나오는 염분노출이 농작물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문명이 멸망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가장 많은 과학자와 고고학자들에게 인정받는 견해다. 인도의 역사는 인더스 문명의 멸망에서부터 인도 다음 거주자들인 아리아인(Aryan)이 도착하기 전에 몇 세기 동안의 역사 단절이 나타난다. 유적도 기록도 거의 없는 시대다. 이것은 인더스 문명이 대가뭄 때문에 멸망했기 때문인 것이다. 대가뭄은 문명을 파괴하는 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



[Tip]고대 문명을 멸망시킨 기후변화는?-평균 기온 2℃ 하강…농경생활 하던 원주민들에겐 큰 재앙


기상학자들은 인더스 문명 등의 고대문명을 멸망시킨 가장 큰 이유로 기후변화를 들고 있다. 북아프리카 문명의 붕괴에 영향을 준 것도 기후변화였다.


사하라 사막은 당시 ‘푸른 사하라’라 불릴 만큼 초기 농경민이 자급자족 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당시 아열대고압대는 북위 약 40도 이북에 위치했다.


사하라 사막지역 상공에는 여름철에는 계절풍 비(summer monsoon rains)가 지배했다. 이 당시의 저기압 활동은 현재보다 남쪽으로 지나면서 사막지역에 많은 비를 뿌렸을 것이다. 그런데 기후가 바뀌었다. 비를 가져왔던 적도 서풍이 불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전선대와 바람대의 변동으로 적도 서풍대가 남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적도서풍이 불어오던 지역은 역학적 고기압권 내에 위치하게 되면서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됐다.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 아니라 한랭화에도 원인이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화분 분석의 결과 기온도 차차 내려가면서 2℃나 낮아졌다. 2℃의 평균 기온 하강은 엄청난 기후변동을 뜻한다.


결국 건조화와 기온 하강은 농경생활을 하던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기후가 정교하고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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