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817/1/BBSMSTR_000000010227/view.do


<32>설연타의 등장

기사입력 2011. 08. 17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05


중앙 아시아·몽골 초원 유목세계 일대파란


몽골 초원 외곽에 있는 고비사막에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 이 사막을 경계로 그보다 북쪽이 설연타의 본거지다.


641년 초 당에서 귀국한 고구려 태자 상권은 그간 수집한 정보들을 취합하고 분석해 아버지 영류왕에게 보고했다. 서돌궐의 팽창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여기에 고무된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앞으로 고구려가 휘하의 말갈족을 통해 몽골 초원의 설연타와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부각됐다.


서역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641년 7월 서돌궐 칸 아사나욕곡설이 중앙아시아 타시켄트 총독(吐屯)을 시켜 당 태종과 친밀한 또 다른 서돌궐 부족의 우두머리인 사발라엽호를 사로잡아 처형했다.


칸의 위세는 더욱 더 강해졌고, 이미 그의 지배하에 들어간 서역의 대부분의 나라들에 대한 통제력도 굳건해졌다. 그 여파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림분지의 고창 근처까지 밀려왔다. 서돌궐이 세력을 더욱 확장하자 북쪽에서 설연타(薛延陀)가 고비사막 이남의 돌궐인들을 넘보고 있었다.


고비사막 이남의 땅에는 4년 후의 미래에 당 태종을 따라 고구려 침공 전쟁에 종군하다 ‘대변 바른 화살’에 맞아 죽은 아사나사마(阿史那思摩)가 돌궐인들을 관할하고 있었다. 당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그들은 사막 북쪽의 설연타를 무서워했다. 645년 고구려 안시성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장안의 북쪽 오르도스(Ordos)를 공격해 당의 뒤통수를 친 것도 설연타였다. 당시 고구려와 설연타는 긴밀한 관계였다.


설연타는 돌궐계 철륵(鐵勒)의 15개 부족 가운데 하나였다. 본래 알타이산맥 서남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고, 서돌궐(西突厥)에 복속돼 있었다. 628년 통엽호 가한이 죽고 서돌궐이 내란에 휩싸이자. 설연타의 부족장 이남(夷男)이 부족을 이끌고 셀렝가 강(江) 방면으로 이동해 동돌궐의 힐리(頡利 칸 아래에 들어갔다.


마침 동돌궐 내부에서 조카 돌리(突利)가 반란을 일으켜 삼촌 힐리(頡利) 칸의 지배력에 상당한 타격이 가해졌다. 여기에 자연 재앙이 겹치자, 휘하의 유목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설연타의 이남이 그 주동자였다.


힐리는 이를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회흘추장 보살(菩薩)이 5000 기병으로 마렵산에서 힐리의 군대를 대파했다. 설연타도 힐리의 대군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를 계기로 돌궐 북변의 많은 부족들이 설연타에게 귀부했다.


설연타는 반란 부족들의 구심점이 됐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당 태종이 629년 사절을 설연타의 이남에게 보냈다. 당 태종은 군사적인 원조를 약속하면서 설연타의 이남을 북방 초원의 맹주 칸으로서 인정했다.


설연타가 힐리 칸을 벼랑으로 몰아가자 당 태종은 개입할 때가 온 것을 확신했고, 630년 당나라군은 설연타와 연합해 동돌궐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해 당 태종은 돌궐군장들로부터 천(天) 칸의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초원에 돌궐에 반란을 일으킨 피지배 유목부족들은 온전히 남아 있었고, 설연타가 그들을 장악했다. 그 세력 범위는 서쪽으로는 알타이산맥에서 동쪽으로 만주의 말갈 일부 지역까지였다.


633년 서돌궐의 아사나사이(阿史那社爾)가 기병 5만을 이끌고 설연타를 침공했다. 아사나사이는 본래 동돌궐 처라(處羅) 칸의 차남으로 설연타에 쫓겨 서돌궐로 달아났다. 복수를 하러 온 것이다. 양군의 싸움은 100여 일 동안이나 지속됐다.


그런데 서돌궐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아사나사이 측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전투에 지쳐가는 병사들도 나타났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많은 수의 병사들이 도주했다. 의도하지 않은 유리한 정치적 변화도 있었지만, 적을 지치게 하는 설연타의 이남 칸의 전략은 탁월했다.


이남은 초원의 전술에 혁신을 가져온 장본인이었다. 그는 완만한 보전(步戰)을 도입했다. 처음에 자신의 병력을 벌여놓아 진영을 가다듬고, 싸우지 않을 때부터 적을 압박해 적을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때까지는 소극적인 전쟁을 해 전력 소모를 피한다. 설연타는 충분히 우위에 선 상태에서 결전을 개시해 적을 크게 격파했다.


유목민이었지만 설연타는 보병전을 해서 초원의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638년 설연타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당 태종은 이남의 아들 둘에게 각각 칸의 칭호를 내렸다. 우대하고 높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세력을 나눈 것이다.


641년 중반 설연타의 이남 칸은 중국을 침공하기 위해 유목전사들에게 보전훈련을 시켰다. 병사들 각각을 5인 1조로 만들고 한 사람은 말을 잡고 진(陣) 뒤에 있게 하고 말에 내린 네 사람은 걸어서 앞에 나가 싸우게 했다. 승리하면 말잡이에게 말을 받아서 적을 추격하게 했다. 훈련에도 엄격한 군율이 적용됐다.


기병이 상황에 따라 말에서 내려 보전을 하고 다시 기병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의 습득이었다. 보전을 하다가 승리가 확실해지고 적의 후퇴가 시작될 때 기마를 했다. 기마의 자제는 말을 지치지 않게 했고, 결정적으로 기마전을 할 때 말의 양호한 상태를 담보했다.


설연타는 병사 1인당 4필의 말을 가지고 있었다. 4필의 말도 전투가 장기화되면 일정한 간격으로 교체해야 했다. 곧바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4 필의 말을 제때 공급하려면 후방에 24필의 말이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말 공급은 기병전에서 승리의 필요조건이었다.


641년 12월 설연타 이남은 20만 군대를 일으켰다. ‘신당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천자(당 태종)가 태산(泰山)에 봉선을 하면 병사와 말들이 모두 쫓을 것이며, 변경은 반드시 텅 빌 것이니, 내가 이때에 아사나사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설연타군 주력은 현 내몽골 호화호특시에 주둔한 다음 산서성 삭주의 북쪽 선양령(善陽嶺)을 점거하고서 돌궐을 쳤다. 다음날 당의 군대가 움직였다. 요령성 조양의 영주 도독 장검은 해(奚 : 난하 상류)ㆍ습(習 : 요하의 북쪽) ㆍ거란 등의 기병을 거느리고 설연타의 동쪽 측면을 압박했다.


이세적 군대를 우방(羽方 : 삭주)에 주둔하게 했고, 이대량의 군대를 영무(닝하성 영무현)에 주둔시켰다. 장사귀의 군대는 내몽골 오란찰포맹으로 향했다. 이들이 설연타의 정면을 견제했다면 감숙성 무위시에 주둔한 이습예의 군대는 설연타의 서쪽을 압박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설연타를 정면에서 견제하면서 동서에서 압박했던 당군은 총 12만3200명을 훨씬 상회하는 숫자였다.


설연타 주력의 선발대를 지휘한 대도설이 3만 기를 이끌고 사막을 넘어 내몽골 토묵특(土默特) 평원에 들이닥쳐 당에 복속한 돌궐인들을 공격하러 왔다. 침공을 예상하고 있던 아사나사마는 일단 사람을 당에 보내 설연타의 침공을 알리고, 초원에 불을 질러 황폐화시켰다. 이어 돌궐인들을 이끌고 만리장성 이남으로 도피했다.


설연타의 선발대가 돌궐인들을 급습하려는 계획이 좌절됐다. 사막을 넘어 수천 리를 행군한 그들의 말들은 피로하고 말라 있었다. 말을 제대로 먹일 수도 없었다. ‘자치통감’은 그들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의 보고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들(설연타)의 말들은 숲속에 있는 나무를 씹는데 껍질이 거의 다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아사나사마를 놓친 설연타의 선발대가 만리장성 앞에 도착했을 때 당나라 장군 이적의 군대가 일으킨 먼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설연타의 대도설은 적가락(赤柯?) 북쪽으로 후퇴했다.


이적은 그의 병력 가운데 정예기병 6000을 엄선해 추적했다. 설연타 대도설은 후퇴를 거듭해 내몽골 오르도스 북쪽에 인접한 바오토우의 약진수(諾?水)를 향했다. 이적의 군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설연타 대도설 군대의 진(陣)이 10리에 걸쳐 정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대도설은 자신이 택한 전장으로 이적을 유인했다고 생각했다. 설연타의 선발대와 당나라의 선봉대의 예측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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