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87566


"실개천 사이에 두고 나뉜 사람들... 장벽의 허무함 느꼈다"

[이영광의 '온에어' 16]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 정길화 MBC CP, 유영호 작가

이영광(kwang3830) 19.11.18 17:03 최종업데이트 19.11.18 17:04 


 정길화 MBC CP(우), 유영호 작가(좌)

▲정길화 MBC CP(우), 유영호 작가(좌)ⓒ 이영광


남북에 '그리팅맨(Greeting Man·인사하는 사람)'을 세우는 게 꿈인 유영호 조각가의 이야기를 기록한 MBC 특집 다큐멘터리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이 지난 11일 방송되었다.


머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리팅맨'을 조각한 유영호 작가는 2016년 경기도 연천군에 그리팅맨을 세웠다. 그의 소망은 연천군의 맞은편인 황해북도 장풍군에도 그리팅맨을 세워 남북이 서로에서 인사하는 듯한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특집 다큐멘터리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을 맞은 독일 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 그리고 실개천을 두고 동서로 갈렸던 뫼들라로이트 마을 등을 찾아 통일 후 독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면서 현재 한반도 DMZ의 상황도 조명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을 기획한 정길화 CP와 그리팅맨을 조각한 유영호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네덜란드 작가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그리팅맨 프로젝트의 시작


-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이란 특집 다큐멘터리가 11일 방송되었잖아요. 방송 마친 소회가 궁금합니다. 


정길화 책임 PD(이하 정): "제가 MBC에 입사해 올해로 방송 생활을 한 지 35년이 되었습니다. PD 입장에서는 해방감과 성취감이 교차합니다. 시원섭섭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은 특히 애정이 많이 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유영호 작가를 만나 그리팅맨을 알게된 게 7년 전인 2012년입니다. 그때 (유 작가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제1호 그리팅맨을 세웠을 때 현지에서 취재해 방송했어요. 그 후 계속 유영호 작가와 교분을 나누면서 진행 과정을 쭉 봐왔고요.


이후 연천 프로젝트로 발전되는 걸 보고 이 정도의 내용과 철학이 담겨 있다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다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유 작가의 작업이 계속되듯 이 작품(그리팅맨)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역시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그리팅맨도 이제 시작이죠."


유영호 작가(이하 유): "일단 그리팅맨 프로젝트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로 주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젝트가 더 많이 진행되고 남북이 만나는 부분도 진행이 많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번 방송을 계기로 해외 여러 군데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등 저도 더 열심히 프로젝트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방송 후 반응은 어떤가요?


정 : "이메일이나 카톡 등으로 반응을 보내 주시는 분들은 저나 유영호 작가 그리고 그리팅맨까지 잘 아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에게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팅맨을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가 시청률이잖아요. 11월 11일 오후 6시 30분 즉 <생방송 오늘 저녁> 프로그램 시간대에 들어갔는데, 이전 월요일 10회분의 평균 가구 시청률이 2.25%입니다.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은 2.3%가 나왔어요. 그날의 편성 환경을 생각하면 선전(善戰)했다고 생각합니다. 평균 이상하면 됐죠(웃음)."


- 유 작가님은 어떻게 그리팅맨을 제작하게 됐어요?


유: "제가 1999년에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인사하는 주제를 가지고 비디오 작품을 하나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본 사람 중에 행크 피쉬란 네덜란드 작가가 저에게 '한국식으로 인사하는 것 맞냐?'고 물었어요. 맞다고 했더니 그분 하는 말이 '내 생각엔 인사가 중요하다.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다'라고 하더군요. 전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인사라는 게 단순히 몸으로 하는 행동을 넘어서 더 깊이 있는 철학적인 뜻까지 포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인사란 주제로 작품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되었어요."


- 세계 곳곳에 (그리팅맨을) 기증하시잖아요. 어렵진 않으세요?

유: "당연히 쉽지 않죠. (그리팅맨 세우는 게) 빨리 진행되는 나라도 있어요. 그러나 빨리 진행된다 하더라도 2년 정도 걸리고요. 보통 3~4년 걸리는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시간을 들여요. 계속 소통하고 설명해야 하고 장소도 정해져야 하고... 나라마다 정치적 상황이 변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계획이 엎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끈기 있게 버티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팅맨이 마주보고 있는 그곳, 에콰도르 카얌베

 

 경기도 연천군에 세워진 그리팅맨

▲경기도 연천군에 세워진 그리팅맨ⓒ 정길화 PD 제공


- 정길화 PD님은 인사하는 조각상인 그리팅맨에 주목한 이유가 뭔가요?


정: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 1호는 2012년 한국의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세워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리팅맨 작업을 주시했습니다. 그리팅맨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확장됩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경우, 한국에서 제일 먼 곳인 지구 대척점에서 인사하는 메시지를 시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고요. 다음 그리팅맨이 세워진 파나마는 북미와 남미가 만나고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에콰도르의 카얌베란 도시가 있어요. 정확히 적도선이 지나가는데 거기에서 두 그리팅맨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합니다. 여기는 남반구와 북반구를 대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연천-장풍 그리팅맨의 모델이 에콰도르 카얌베입니다. 연천 그리팅맨은 2016년에 세워졌는데 그때 휴전선 건너 북한 장풍 땅에도 세우겠다고 발표를 했어요. 연천 그리팅맨과 아직 세워지지 않은 북한의 그리팅맨은 남한과 북한을 표상하게 됩니다. 이는 곧 남북의 공존과 소통을 의미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문제나 남북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방식으로 분단체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언제부터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졌나요. 


유: "통일 문제는 어릴 적부터 관심 있었다고 봐야죠. 한국에서 태어나 분단 상황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조각하는 예술가 이전에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분단과 통일이라는 문제가 많이 와 닿죠. 그것을 외면하고 무언가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럴 바엔 더 적극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국민으로서 얘기할 거리가 있다면 얘기해보자는 생각이죠."


정: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한반도에선 그 누구도 분단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당연히 문제의식을 갖게 되죠. 저 개인적으로는 MBC 시사교양 PD로 일하면서 그동안 <인간시대>, < PD수첩 >,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분단 문제나 통일지향 또는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해왔고 이번 프로그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독일에 가보니 어떤가요?


유: "제가 베를린에서 느낀 건 통일이 굉장히 오래 걸릴 거라는 거고요. 그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통일이 해체 방식이 아닌 이어짐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민간이든 국가든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라도 하나씩 계속 이어가다 보면, 마치 끊어진 혈관을 이어가면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남북 관계 또한 끊임없이 이어가다보면 언젠가는 통일이 눈앞에 와 있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독일은 실개천을 두고 갈라졌다면서요? 거기 가보니 어땠나요?


유: "호프 군의 뫼들라로이트라는 곳이었어요. 거긴 작은 마을이었는데 실개천이 흘렀어요. 실개천을 가운데 두고 갑자기 장벽이 생긴 겁니다. 말하자면 우리집과 옆집 사이로 장벽이 지나가 버린 겁니다. 그건 거대한 단절이죠. 서로 알던 사람들이 갑자기 못 만나게 된 거예요. 그게 뫼들라로이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인데, 실개천을 보면서 우리가 그은 장벽이라든지 국경이 얼마나 허무한 건지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폴짝 뛰면 넘어갈 수 있는 개천인데 그걸 두고 독일은 40년 동안 장벽을 친 거예요. 전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북의 경계선도 마찬가지예요. 거두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나 우리나라도 어마어마한 장벽에 서로를 가둬놓고 있잖아요."


연천군에 그리팅맨이 세워진 계기

 

 정길화 MBC CP

▲정길화 MBC CPⓒ 이영광


- 방송에 연천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나왔잖아요?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정: "연천은 원래 38선 이북에 있다가 6·25전쟁을 거치면서 수복된 지역입니다. 그 할머니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 못 가는 분이죠. 항상 고향 집을 생각하며 사시는 분이에요. 연천은 수복지역이기도 하면서 경기도에서는 최북단 지역입니다. 그곳은 한국의 다른 농촌처럼 젊은이들이 떠나가 노인들밖에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방송이 나간 뒤 연천 할머니가 가슴에 와 닿았다는 시청자들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게 분단 현실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연천에 그리팅맨 세울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유: "연천 그리팅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입니다. 그때 연천 군수를 만나 뵈었어요. 당시 연천군의 애초 계획은 옥녀봉에 정자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때 문화에 관심 있던 관계자들이 '정자를 세우는 것보다 다른 걸 해보자'고 이야기하던 와중에 제 작품인 그리팅맨을 보게 된 거예요. 그때 연천군수를 처음 뵙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린 게 '여기(연천)에 그리팅맨 세우고, 맞은편 북한에도 세우자'는 거였어요. 그때는 황당한 얘기였어요. 왜냐면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엄청나게 하고 있을 때여서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이러다 전쟁이 나는 것 아닐까 했거든요. 그럼 안 되잖아요. 절박한 심정으로 제안한 거예요.


'지금은 이렇더라도 언젠가 상황이 좋아질 거고 그때를 대비해서 미래를 세우자'고 했더니 군수님이 좋아하셨어요.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뭔가 보수적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 할지라도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했고, 그렇기 때문에 연천군에서도 과감히 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6년 4월 23일 오픈을 하게 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팅맨을 준공하는 그날도 북한이 미사일을 쏜 날이었습니다."


- 비무장지대는 누구도 가지 못하는 땅인데 그 때문에 생태계가 보존되어 멸종 위기 동물이 살고 있는데요. 일종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어떠셨나요?


정: "아이러니죠. 독일도 사실은 동서독 장벽 설치로 인해 그린벨트처럼 환경 보존이 잘 되었단 말입니다. 한반도가 독일과 다른 건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다는 점입니다. 휴전선이 세워지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있고 군사적으로 대립함으로써 안 가고 못 가게 된 거죠. 그 바람에 환경 보존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게 1953년 정전협정 이후로 66년이 지나는 동안 휴전선에서 끊임없이 도발과 대치가 있어왔거든요. GP도 설치하고 콘크리트 구조물도 설치하고 지뢰도 설치하고 온갖 중화기가 다 들어가 있어요. 사실 자연환경이 보존돼 있는 것 같지만 군사적으로 엄청난 대치 지역이에요. 단지 민간인이 자유롭게 가거나 개발할 수 없도록 했죠. 군사 지대로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보존되는 아이러니를 낳은 거죠."


- 느끼신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정: "1월 초에 기획할 땐 혹시 북한 땅에 (그리팅맨을) 설치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설치가 안 되어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제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왜냐면 우린 꿈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한 편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언제라도 북한 땅에 (그리팅맨이) 세워지면 그것도 보태서 제2, 제3의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팅맨을 연천에 세우고 또 북한 땅에도 세운다는데 그게 실현 가능하냐? 언제 될지 모르는데 프로그램이 말하려는 게 뭐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201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이 날아다닐 때 연천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북녘땅을 향해 고개 숙이고 인사를 했다. 남북의 소통과 공존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답했습니다. 그 시절에 담대한 꿈과 실천이 있었던 것입니다."

 

 유영호 작가

▲유영호 작가ⓒ 이영광


유: "북녘땅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건 말씀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외 여러 나라에 작품을 세우면서 느낀 거지만, 작품 세우기 가장 어려운 땅이 어디일까를 생각했을 땐 아직은 북녘땅이에요. 그 점에 대해선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꿈을 갖고 상상하는 것과 더불어 열정과 끈기를 잃지 않고 계속 지속시켜 나가야죠. 그렇게 하면 언젠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꿈과 끈기를 가지고 나아가려는 실천, 그리고 그런 걸 통해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는 게 남북의 화해 과정이거든요. 그런 걸 시청자가 느끼셨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정: "그리팅맨 프로젝트도 그렇고, 그리팅맨 팔로우하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로 이번이 끝이 아니에요. 유 작가의 그리팅맨 작업이 계속되는 한 그리팅맨 다큐멘터리도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유 작가가 앞으로 그리팅맨을 세우려고 계획하는 나라는 많아요. 제가 알기로 베트남, 프랑스에 설치가 거의 확정적이고 멕시코, 칠레, 터키, 우즈베키스탄, 키리바시 등에도 계속 타진하고 있습니다. 모두 의미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함께 연천-장풍 프로젝트야말로 그리팅맨의 완성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PD로서 그리팅맨에 대한 유영호 작가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끝까지 팔로우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아 그리고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은 20일 밤 0시 5분부터 재방송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유: "저도 마찬가지로 그리팅맨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하나하나씩 이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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