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1275.html 

‘한식 세계화’라 쓰고 ‘코미디’라 읽는다 
[보도 그 뒤] ‘김윤옥 치적 쌓기’ 위해 영세 출판사 협박했던 청와대의 이상한 침묵… 
원칙 없는 아마추어식 홍보 사업 들여다볼수록 구멍 많아
▣ 송호균  [2012.02.06 제896호]

비겁한 침묵이었다. 청와대 2부속실이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책 발간 사업에서 저작권을 도용해 무단으로 국내 시판용 책을 찍었고, 이 과정에서 영세 출판사에 수천만원의 손해를 입히는 한편 회사 관계자를 협박·회유했다는 <한겨레21> 보도(893호 표지이야기 ‘무서운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참조)가 나간 뒤 청와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흔한 해명 자료 한 건 나오지 않았다. 항의 전화가 걸려오지도 않았다. 다만 누리꾼들은 들끓었다. 해당 기사를 두고 수만 건의 리트윗(RT)이 이뤄졌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치졸하기 그지없는 김윤옥씨와 청와대 2부속실의 행태를 두고 비난이 빗발쳤다.

“한식재단 이사장 청와대 불려가”

김윤옥씨가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 사업과 그 주체인 한식재단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보도 직후 양일선 한식재단 이사장이 청와대로 불려가 2부속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곳은 한식재단이 아니라 청와대 2부속실이다. 식사 자리에서 출판사 관계자들의 말을 녹음한 것도, 이들에게 회유와 압박을 가한 것도 2부속실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책 발간 사업 자체를 ‘국내 정치용’으로 간주해 비난을 자초했던 청와대 2부속실이 사태의 책임을 한식재단으로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식재단 쪽은 취재를 거부했다. 한식재단의 홍보 담당자는 “이사장의 개인 일정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로 불려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안이 있으면 공식적으로 문서를 통해 요청하라”며 입을 닫았다. 양일선 이사장은 해외 출장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협박과 회유의 피해자이며, 책 발간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금전적 손해를 입었던 출판사 관계자들을 다시 만났다. 보도가 나간 뒤 ‘저작권 포기’를 종용하며 합의서에 서명을 강요하던 2부속실과 한식재단 쪽의 연락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만족한다고 했다. 지인들과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가 입은 수천만원의 금전적 손해에 대해선 여전히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식재단의 구조적인 문제 역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김윤옥씨의 책 발간 사업을 담당한 한식재단은 형식상 민간단체이지만 오로지 국가 예산만으로 운영된다. 2010년에는 106억5800만원, 2011년에는 129억7900만원의 예산이 한식재단으로 들어갔다. 2년 동안 236억원이 넘는 세금이 순수 민간단체인 한식재단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 돈은 대부분 효과가 불분명한 한식 홍보 사업에 사용됐다. 청와대 2부속실이 “G20 정상회의나 국내외 한식문화 확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업”이라고 실토한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발간 역시 홍보 예산에 포함됐다. 올해에는 한식재단 예산이 대폭 삭감될 예정이다.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에서 확정된 한식 세계화 사업 예산은 전년보다 100억원가량이 삭감된 211억4900만원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그동안 한식 세계화 예산은 한식재단과 농수산물유통공사(aT센터)에 각각 5 대 5 정도로 배분됐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012년에는 한식재단 쪽의 홍보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난이 집중되는 대부분의 홍보 사업이 주로 한식재단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조적인 구멍이 있었고, 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는 셈이다. 사업자가 아무도 나서지 않아 백지화된 뉴욕 한식당 사업은 차라리 한 편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다른 사업에서도 김윤옥씨의 책 출판 과정처럼 투명하지 않고 원칙도 없는 아마추어적 행태가 반복될 여지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2009년 4월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식 세계화 2009 국제 심포지엄’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식 전문가 없는 한식재단

한식 세계화 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이론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음식과 음식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관련 사업이 제대로 육성되도록 지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다만 한식 세계화 사업이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의 치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김씨를 보좌하는 청와대 2부속실이 사업의 입안과 집행에 깊숙하게 관여하면서 모든 게 꼬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사실 한식재단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며 “청와대에서 오더가 내려오면 재단은 사실상 이를 집행하는 기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식재단 내부에 정작 제대로 된 ‘한식 전문가’가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초대 이사장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양일선 연세대 교학부총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양 이사장은 식품영양학계와 외식경영학계 출신이다. 한식과 한식문화에 정통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한식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언론 노출을 피하며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관련 부처와 업계에서 “양일선 이사장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출범과 함께 현재까지 한식재단에 몸담고 있는 송희라 부이사장 겸 사무국장도 한식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송 부이사장이 소개하는 자신의 이력에 따르면, 그는 파리12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거쳐 1997년 프랑스의 요리학교인 코르동블뢰를 졸업했다고 한다.

만화 <식객>의 자료 제공자로 잘 알려진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도 “정부에서 하는 한식 세계화 사업은 필요한 일이고, 또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면서도 ”사업에 관련돼 있는 분들 중에서는 실제 한식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 지적했다. 한식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프라이드 치킨이나 ‘여사님 레시피’인 닭강정, 대기업이 중심이 된 각종 프랜차이즈 식품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김윤옥씨에 의한, 김윤옥씨를 위한 사업으로 전락해버린 이명박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이 단순히 보여주기식, 그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높은 전시성 이벤트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전시성 이벤트 멈추고 식견 갖춰야”

황교익씨는 “현재의 한식 세계화 사업은 어쩌다 궁중음식 같은 것을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거나, 스타 셰프니 뭐니 하는 포장지를 들이대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2017년까지 한국 음식을 세계 5대 음식에 편입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인 것으로 아는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라고 혹평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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