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98574


"출입처 폐지" KBS가 거둔 성과, 그리고 MBC의 새 시도

[TV 리뷰] '검찰 출입 기자단, 공고한 그들만의 카르텔'+'KBS 출입처 폐지 선언 그리고 한 달'편

이학후(cinemania) 19.12.25 11:22 최종업데이트 19.12.25 11:22 


11월 4일 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은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 출입처를 없애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출입처 제도는 안정적인 기사 생산 기능을 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를 균질화한다"는 이유였다.


출입처 제도를 놓고 KBS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검증된 기자들이 제대로 된 통로로 취재를 해야 한다", "권력 감시를 위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대 측은 "출입처 제도로 인해 모든 언론사가 앵무새처럼 일률적인 보도를 한다", "출입처 제도가 패거리 저널리즘을 만든다"란 이유를 댄다.


지난 3일 방송한 MBC < PD수첩 > '검찰 출입 기자단, 공고한 그들만의 카르텔' 편은 단독 경쟁하는 언론과 단독을 제공하는 검찰의 밀착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조명했다. 지난 15일 방송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KBS 출입처 폐지 선언 그리고 한 달' 편은 언론의 받아쓰기 취재 관행을 개선하려는 언론의 노력을 다루었다. 언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PD수첩> 프로그램의 한 장면

▲ 프로그램의 한 장면ⓒ MBC


최근 4개월 가까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보도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지금까지 54개 주요 언론사의 보도량은 약 5만 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400개 가까운 수치다. 보도 경쟁이 한창이던 9월 10~24일 2주간 조 전 장관 관련 '단독' 출처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7개 주요 방송사의 단독 기사 58건 중 39건(67%)이 검찰에서 나왔다. 7개 주요 신문사 단독 기사 75건 가운데 30건(40%)도 검찰이 준 정보에 바탕하고 있다. < PD수첩 >과 만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른바 검찰발 단독 뉴스를 강하게 비판한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이 기사화되었다. 검찰이 주고 있는 그 메시지가 확인된 것처럼. 아직 법정에 가서 다퉈봐야 하는 내용이거든요."


우리나라 형법은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재판 단계에선 무슨 혐의로 기소가 되었는지 공소장으로 알게 되고 수사 기록도 볼 수 있어서 공방 보도가 가능하다. 반면에 수사 단계에선 언론은 주로 수사기관이 주는 정보에 의존해야 한다. 결국 보도 내용도 대부분 의혹 보도가 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이 고가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논두렁에 버렸다고 언론이 보도했고 10일 후 노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했다. 그 뒤 논두렁 시계 사건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검찰은 기소 전 피의 사실 원칙적 공개 금지하되 오보 가능성이 큰 경우 등 예외적 공개를 허용한 '공보준칙'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명무실한 상태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김남근 변호사는 1953년 피의사실 공표죄가 제정되었지만, 지금까지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피의사실을 공표한 주체도 검찰이고 처벌하는 주제도 검찰이니 당연한 결과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프로그램의 한 장면ⓒ KBS


여전히 언론은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 따르면', '검찰 일각에서는' 식의 검찰을 통해 전해진 내용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한다. 혐의 사실은 기소 전부터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사실인 양 받아들여진다. 피의자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는 셈이다.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 PD수첩 >과 가진 인터뷰에서 피의 사실 공표가 명백한 불법 행위임을 강조한다.


"기자들이 검사로부터 (피의 사실을) 받아서 기사를 쓰는 것은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수사 기관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수사하지 않는 것이다. 여론 재판을 통해서 재판에 가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다. 알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검사가 기소하게 되면 공소장과 재판 가정을 통해서 곧 드러날 사항이다."


일부에선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수사에 대한 외압을 여론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항변한다. 고위공직자의 비리,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뒤흔든 범죄 등은 외부의 압력이 작용하기 쉽기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외압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핑계로 삼아 검찰이 사건을 원하는 흐름으로 끌고 간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 PD수첩 >에 검찰의 의도성을 주목하라고 제언한다.


"(검찰이) 철저하게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서, 본인들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편법으로 정보를 유출해서 수사 방향을 끌고 간다."

 

<PD수첩> 프로그램의 한 장면

▲ 프로그램의 한 장면ⓒ MBC


검찰은 어떤 방법으로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할까? < PD수첩 >은 검찰 출입 기자단을 통해 실태를 소상히 파헤친다. 검찰이 정보를 제공하는 대상은 검찰 출입 기자로 한정된다. 현재 대검찰청, 중앙지방검찰청 등엔 40여 개 언론사 기자들이 검찰 출입 기자로 등록되어 있다. 언론 대응을 하는 차장검사는 검찰 출입 기자들에게 수시로 수사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엔 기자들이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문자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엔 검찰의 판단이 개입한다. 어떤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울지, 비공개 소환을 할지 결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검찰에) 협조 안 하면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겠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다. 이런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검찰 태도를 비판하는 언론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언론은 검찰의 의도대로 받아쓰고 움직여줄 따름이다.


검찰은 공식 브리핑 외에 매주 한두 차례 수사책임자인 차장검사가 출입 기자들과 비공식 '티타임' 브리핑을 한다. 여기서 주로 피의 사실 유출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불법이다. 설사 검찰이 이렇게 수사 내용을 흘려준다고 해도 언론은 의도가 있는지 의심하고 해석하고 검증을 해야 마땅하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검찰발 의혹성 기사만 쏟아낼 뿐이다.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도 정보를 준 사람이 검찰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


검찰 출입 기자가 개별적으로 차장검사실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때 검사가 슬쩍 수사 정보를 기자에게 흘려주는 일도 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단독 기사로 만들어지고 기자의 경력이 된다. 검찰은 단독을 좇는 언론을 정보를 미끼로 삼아 관리한다. 정보를 던졌는데 기사를 안 쓰면 다음엔 주지 않는다거나 보수, 진보, 인터넷 언론사끼리 경쟁도 붙이는 방식으로 언론을 길들인다. 수사 정보를 얻은 기자는 인사철에 하마평 기사를 써주어 검사에게 보답하기도 한다. 검찰 내부 비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방조한다.

 

<PD수첩> 프로그램의 한 장면

▲ 프로그램의 한 장면ⓒ MBC


이것이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출입처 시스템이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출입처 존폐 문제를 두고 가장 논란이 되는 곳은 검찰 출입 기자단이다. 검찰 출입 기자가 아니면 검찰이 보내는 수사 관련 문자메시지를 받지 못하고 티타임 브리핑에 참석할 수 없다. 피의자한테 질문하기조차 힘들다. 검찰 출입 기자단에 속하지 않으면 정보 수집과 취재에 제약이 따른다.


검찰 출입 기자단에 들어가는 조건은 까다롭다. 최소 6개월 간 법조팀을 운영하고 자료를 제출한 뒤에 기존 출입 기자단의 투표를 거친다. 최근엔 기자단 2/3 이상 참여 및 2/3 이상 찬성을 얻는 것으로 투표 요건이 한층 강화되었다. 근래 5년 동안 새롭게 검찰 출입 기자단에 들어간 언론사는 없다고 한다. 언론사 <민중의 소리>는 검찰 출입 기자단에 들어가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강경훈 민중의 소리 검찰취재 팀장은 "모든 특권이라는 게 그럴 테지만, 누가 더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출입처 제도는 세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하나는 출입처가 준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는 수동적 취재 태도다. 둘째는 출입처 기자단의 폐쇄적인 운영이 소규모 언론사나 신생 언론사의 취재 자유를 막는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출입처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동화되어 대변하는 위험성에 있다. 검찰 출입 기자단이 경향신문 검찰취재팀을 징계한 일이 그렇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프로그램의 한 장면ⓒ KBS


2016년 국정 농단 사태 당시에 경향신문은 검찰의 공소장을 요약, 발췌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검찰 출입 기자단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말라는 요청을 깼다는 이유를 들어 경향신문에 3개월 기자실 출입금지와 자료제공 불가 징계를 내렸다. 경향신문 검찰취재팀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이후에는 피의 사실 공표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출입 기자단이 자체적으로 보도를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대목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근 법무부에서 발표한 검찰개혁안에 대해 검찰출입기자들이 어떤 입장의 기사를 작성했는지 확인했다. 검찰에 출입하는 언론사 중 주요 언론사 31곳이 법무부의 개혁안을 다룬 기사는 337건이었다. 이 중에서 단순 내용 전달이 50%고 검찰 입장에서 비판한 기사가 45%였다.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검찰 출입 기자들이 검찰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자들이 해야 할 역할은 법무부의 개혁안이 실제로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오히려 '검찰의 수사가 축소되는 게 아니냐', '검찰이 고위공직자들을 수사할 때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식으로 검찰의 편에 서서 옹호해준다."

 

<PD수첩> 프로그램의 한 장면

▲ 프로그램의 한 장면ⓒ MBC


지난 2일부터 '형사사건 공개 금지' 훈령이 시행됐다. 검사와 기자의 접촉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기자들은 검사실 출입을 할 수 없고 티타임 브리핑도 사라졌다. 일부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권력 감시가 힘들 거란 기사나 칼럼을 내놓으며 불안과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검찰의 정보 흘려주기가 취재의 자유를 의미하진 않는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검찰이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브리핑을 통해 언론과 접촉한다. 우리도 공개브리핑에서 기자가 질의를 던지고 토론을 나누는 형식으로 수준을 높여야 한다. 공개적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해석을 하고 다른 관점이나 부족한 부분은 보강 취재를 해야 한다. 또한, 법조 취재도 검찰 중심에서 법원 중심으로 바뀌어 검찰이 원하는 망신주기 수사, 언론을 이용하여 피의 사실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여론 재판의 틀을 깨야 한다.


지금 언론은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과열된 보도 경쟁, 받아쓰기 기사, 기사형 광고, 추측성 보도 등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점은 산적하다. 폐해의 중심엔 출입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출입처 기자단 관행에서 벗어나 유착을 끊어내고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언론에 대한 신회를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엄경철 KBS 보도국장은 출입처 폐지를 선언한 후 현재 내부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변화의 일환으로 출입처 기자들을 빼서 국회의원들의 용역 보고서를 다룬 기획 보도 <국회 감시 프로젝트 K>를 만들어 허투루 쓰인 세금을 추적하여 성과를 거두었다고 덧붙였다. MBC에선 데스크 이상 모든 기자가 기사를 써야 한다는 '시니어 리포트제'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 든 기자가 기사를 쓰지 않는 한국 언론의 오랜 관행을 깨자는 움직임이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언론인들의 의미 있는 변화는 이제 시작되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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