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044_0040


발해의 한시


楊泰師【詩二首 續日本記云, 寶字三年正月, 大保藤原惠美朝臣押勝宴蕃客於田村第. 當代文士賦詩送別, 副使楊泰師作詩和之.】


夜聽擣衣詩


霜天月照夜河明

客子思歸別有情

厭坐長霄愁欲死 宵

忽聞鄰女擣衣聲

聲來斷續因風至

夜久星低無暫止

自從別國不相聞

今在他鄕聽相似



王孝廉【詩五首皆在日本作】


春日對雨情字


主人開宴在邊廳

客醉如泥等上京

疑是雨師知聖意

甘滋芳潤灑羈情


金毓黻 編, 『渤海國志長編』卷18, 「渤海後志」1, 文徵



양태사(楊泰師)【시 두 수가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이르길, 보자(寶字 : 일본 제47대 준닌천황 시기의 연호) 3년(759) 정월 태보(大保) 등원혜미조신압승(藤原惠美朝臣押勝)이 전촌제(田村第)에서 번객(蕃客)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당대의 문사들이 시를 지어 송별하니 양태사도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밤에 다듬이소리를 들으며


서리 하늘 달 밝은데 은하수 빛나

나그네는 돌아갈 생각 깊도다.

긴긴 밤 시름에 겨워 오래 앉아 있노라니

홀연 들리는 이웃 아낙의 다듬이소리

바람결 따라서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밤 깊어 별이 기울도록 잠시도 멎지 않네.

고국을 떠난 후로 저 소리 못 듣더니

지금 타향에서 들으니 소리 서로 비슷하네.



왕효렴(王孝廉)【시 다섯 수가 있는데 모두 일본에서 지은 것이다.】


봄날 비를 대하여 정(情)자를 얻다


주인이 관청 주변에서 잔치를 베푸니

손님은 몹시 취하여 상경을 기다리네.

아마도 우사(雨師)가 임금님의 뜻을 알아챈 듯

달콤한 맛과 아름다운 향기로 나그네 정 씻어 주네.


김육불 편, 『발해국지장편』권18, 「발해후지」1, 문징



이 사료는 발해의 양태사(楊泰師, ?~?)가 지은 「밤에 다듬이소리를 들으며[夜聽擣衣聲]」라는 시와 왕효렴(王孝廉, ?~815)의 「봄날 비를 보니 정(情)자가 생각나서 짓다[春日對雨情字)」라는 시로 발해 문화의 수준을 알려 준다.


현전하는 발해 시는 대부분 일본에 파견된 사신들이 지은 것이다. 일본에 보낸 발해의 외교문서와 아울러 발해 사신들의 시가 일본 문헌에 수록되어 전한다. 대표적으로 양태사의 「밤에 다듬이소리를 들으며」를 비롯하여 「기조신공의 ‘영설시’에 화답하여[奉和紀朝臣公詠雪詩]」, 왕효렴의 「어명을 받들고 내연에 배동하여[奉勅陪內宴詩]」와 「봄날 비를 보니 정(情)자가 생각나서 짓다」, 「변정에서 산꽃을 읊어 두 영객사와 자삼에게 부치노라[在邊亭賦得山花戱寄兩箇領客使幷滋三]」, 「사카영객에 화답하여 달을 보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짓노라[和坂領客對月思鄕見贈之作]」, 「이즈모주에서 두 칙사에게 정을 적어 부치노라[從出雲州書情 寄兩箇敕使]」, 그리고 석인정(釋仁貞, ?~815)의 「7일에 궁중연에 모시고서[七日禁中陪宴詩]」 등이 있다.


시의 형식은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칠언절구(七言絶句) 등이며, 내용은 일본 조정으로부터 환대를 받아 즐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고, 먼 타국에서 고국 발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린 것도 있다.


이 가운데 759년(문왕 23년) 발해 사절의 부사(副使)였던 양태사가 남긴 「밤에 다듬이소리를 들으며」는 매우 서정적이며 정감이 풍부한 작품이다. 이 시는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 초에 발간된 『능운집(凌雲集』(815),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818), 『경국집(經國集)』(827)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어느 가을밤 여인네가 다듬이질하는 소리를 듣고, 고국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다듬이질은 일본에는 없는 풍속이었으므로, 그 여인은 반드시 발해 사람은 아니라도 동족 이주민일 터였다. 다듬이질하는 소리를 듣고 친근감을 느끼며 고국을 떠올린 것이다.


한편, 왕효렴은 814년(희왕 3년)에 발해 정왕(定王, 재위 809~812)의 죽음을 알리는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9월 이즈모[出雲]에 도착하여 12월 당시 일본의 수도인 경도(京都)에 들어가 국서를 전하였다. 이듬해 1월 일본 왕이 베푼 연회에 참석하여 일본의 여러 대신과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다. 일본에 머물면서 지은 왕효렴의 시 5수와 녹사(錄事) 석인정(釋仁貞)의 시 1수를 포함해 발해의 한시 12수가 『문화수려집』에 실려 있다. 「봄날 비를 보니 정(情)자가 생각나서 짓다」는 왕효렴이 일본 조정에서 환대를 받으며 느낀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발해의 한시는 발해 귀족들의 문학적 소양이 전반적으로 높았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문화적 성숙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발해 유예인의 한시 작품 연구」,『열상고전연구』10,류재일,열상고전연구회,1997.

「발해 한시의 작품 연구」,『열상고전연구』9,류재일,열상고전연구회,1996.

「왕효렴 시에 나타난 자아와 외물」,『한국사상과 문화』36,이구의,한국사상문화학회,2007.

「발해 한시문학의 현황과 창작 경향」,『대동한문학』26,장원철,대동한문학회,2007.

「『회풍조』에 실린 한족도래인의 한시에 대하여」,『어문논집』30,장원철,민족어문학회,1991.

『신라와 발해 한시의 당시론적 고찰』, 류성준, 푸른사상, 2009.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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