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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미국에 무시당했다

미국 고위 관료 국내 매체 비공개 간담회·인터뷰 선별에 홀대 비판 나와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승인 2019.11.26 14:07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5일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다음날 6일 외교부를 방문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방위비 분담금 체결과 지소미아에 미국 입장을 전달할 인사라서 그의 한국 방문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강 장관을 만나 내놓을 발언은 미국 측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 언론을 활용하려고 영리하게 움직였다. 국내 매체를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참석 대상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연합뉴스, 한겨레, YTN이었다. 간담회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로 했다. 


그는 입국 때 “과거 미국은 한국에 도움을 줬고, 한국은 이를 통해 스스로 다시 일어났다. 이제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강력한 기여자가 됐고 한국은 미국의 좋은 파트너”라고 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외교부 방문시 그의 ‘진의’을 묻고 파악한 한국 언론은 6개 사 뿐이었다. 같은 날 제임스 드하트 한미 방위비분담금 미국 측 협상 대표가 방한했다. 그도 국방부를 방문해 언론사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당시 비공개 간담회 참석 국내 매체는 4개 사였다. 


미국 관료의 비공개 간담회 취재 언론사 선정 기관은 한국 내 공보를 담당하는 주한미대사관 대변인실이다. 미국의 핵심 입장을 알려주는 고위관료들 취재를 몇몇 언론사만 임의로 선정하면서 대부분 매체는 사실상 취재 제한을 당했다.  


미국은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한국 언론을 홀대했다. 드하트는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미대사관 별관에서 “유감스럽게도 한국 협상팀이 내놓은 제안은 공정하고 공평한 분담을 바라는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못했다”며 11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협상이 파행됐음을 알렸다. 다섯 배 가까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한 중요한 현장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초청을 받은 국내 매체는 동아일보(펜)와 연합뉴스(사진), MBN(영상)뿐이었다. 반면 외신에는 취재를 제한하지 않은 걸로 전해졌다. 


▲ 한미방위비 분담금 3차 회의에 미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 11월1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서고 있다. ⓒ 연합뉴스

▲ 한미방위비 분담금 3차 회의에 미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 11월1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서고 있다. ⓒ 연합뉴스

 

보통 외교 관련 사안엔 출입기자단이나 협회를 통해 풀단을 구성하고 취재해 결과물을 공유한다. 하지만 미 대사관은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매체가 이에 항의하자 그제서야 미 대사관은 사진 몇 장을 제공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도 출입기자단과 미 대사관 협의 아래 참석한 게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복수의 기자는 “동아일보 기자가 미대사관 쪽으로부터 연락 받고 회견장에 갔는데 펜 기자는 자신밖에 없어 당황했고, 다른 매체와 관계를 고려해 내용을 공유했다. 이 문제로 미 대사관이 외교부 출입기자로부터 항의를 받은 걸로 안다”고 했다. 이에 동아일보 기자는 “미 대사관이 상황이 급박해 풀 기자 자격으로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개별 초청을 받았다는 얘기는 사실과 좀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국 언론 홀대론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 인터뷰로 정점을 찍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9일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핵심 쟁점은 결국 한일 과거사 문제다. 이것이 경제적인 문제로 확대됐다”면서 “큰 차이가 있다면 한국이 이 문제를 다시 안보 영역으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파기 원인을 우리 정부에 돌려 미국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해리스 대사는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 “다른 나라를 방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의 대부분을 미국 납세자가 분담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미 대사관은 연합뉴스를 대사관으로 불렀다. 연합뉴스는 단독 인터뷰 타이틀을 달아 보도했다. 다른 언론은 연합뉴스 인터뷰 내용을 받아쓸 수밖에 없었다. 


외교·국방부 라인 취재기자들은 마크 리퍼트 대사 시절엔 출입기자단과 협의하는 등 공보의 기본 절차를 밟았지만, 해리 해리스 대사가 부임한 뒤 출입기자단을 통하지 않고 개별로 국내 매체를 접촉, 선별해 취재를 허락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매체 기자는 “미 대사관 공보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를 닮아간다. 방위비 협상 관련해서 국내 언론 질문을 받아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매체를 선별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자기 입맛에 맞게 하거나 데미지를 최소화시키려고 매체 선정부터 언론플레이를 하는 건데 사실상 한국 언론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민감한 협상이 진행될 건데 기자들 취재를 선별로 허용하는 건 국민 알권리 제한”이라고 비판했다. 


주한 미 대사관 대변인실은 언론사 초청 선별 및 인터뷰 선정 기준을 묻는 질의에 “대사와 방한하는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이 정확한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전달하도록 언론 행사를 주최한다”며 “우리는 모든 한국 언론과 외신과 일할 기회를 환영한다”고만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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