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2KKR_A9999_1_0000470 

고운(高雲)

미상∼409년. 고구려계 출신의 대연(大燕)의 왕.

그의 조상은 고국원왕  전연(前燕)군에 의하여 끌려간 고구려의 귀족이었다. 그는 심지가 깊고 국량이 넓었으며, 말이 적어 사람들로부터 바보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일찍이 모용보(慕容寶)가 태자로 있을 때 동궁(東宮)의 무예급사(武藝給事)를 지낸 인연으로 모용보의 마음에 들게 되어 뒤에 그의 양자가 되고 모용씨를 사성받았다.

이와같은 연유로 《진서(晉書)》 등 중국사서에는 그를 모용운(慕容雲)으로 쓰고 있다. 후연(後燕)의 4대왕 모용희(慕容熙)의 학정이 심하자 중위장군(中衛將軍) 풍발(馮跋) 등이 모용희를 죽이려고 고운과 상의하였다.

고운은 자신을 추대하려는 풍발을 극구 말렸으나, 풍발 등은 모용희를 죽이고 고운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에 407년 천왕(天王)에 즉위하고 자신의 성씨를 고씨(高氏)로 복성(復姓)하였으며, 개원을 하고 국호를 대연이라 하였다.

그뒤
 
고운은 이렇다 할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불안정한 왕위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던 중 도인(桃仁) 등에 의하여 2년 만에 살해되었다.

그가 왕이 되자 고씨로 성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삼국사기》 광개토왕본기에 의하면 고구려왕실과도 같은 종족(宗族)으로서의 유대를 가졌다.

즉, 광개토왕이 그의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종족의 예를 베풀자, 그는 시어사(侍御史) 이발(李拔)을 보내어 답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고구려계로서의 자부심을 가졌던 것을 보임과 동시에, 중국동북방의 여러 종족들 사이에서 고구려의 위치가 상당히 인정되고 있었음을 나타내어준다.

고운은 살해되었지만, 이와같이 연결된 고구려 고운과의 관계는 그뒤 계속하여 풍발에 의하여 세워진 북연(北燕)과의 관계에도 이어졌다. 그리하여 중국 동북의 새로운 강자인 북위(北魏)의 침략으로 북연이 망하게 되자, 북연 풍홍(馮弘) 고구려 장수왕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장수왕은 장군 갈로맹광(葛盧孟光)으로 하여금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북연의 수도인 용성(龍城)의 주민들과 지배층들을 호위하여 고구려로 나오게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晉書
中國史上の民族移動期(田村實造, 東京 創文社,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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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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