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py.d_0001_0020_0010_0040


장안성 


장안성은 현재의 평양시 중심부의 위치하며, 북으로부터 북성, 내성, 중성, 외성 등 모두 4중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안성은 고구려 당시의 4중 성곽의 배치 형태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다음에 기술할 고려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중성을 제외한 3중 성곽의 배치를 대부분 따르고 있다. 장안성의 축조시기와 배치는 銘文城石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연구된 바 있다. 고구려 장안성 축성기사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장안성 축성을 시작하다. [주1] 


2)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기다. [주2] 


3) 기축년 5월 28일 처음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서쪽으로 향하여 11리 구간은 소형(小兄) 상부약모리(相夫若牟利)가 쌓는다. (제1석) [주3] 


4) 기유년 3월 21일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12리 구간은 물구(物苟) 소형 배수백두(俳須百頭)가 맡는다. (제2석) [주4] 


5) 기축년 3월 21일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내려가면서 2리는 내부(內部) 백두(百頭) 상위사(上位使) 이장(尒丈)이 맡아서 공사한다. [주5] 


6) 병술년 12월에 한성(漢城) 하후부(下後部)의 소형 문달(文達)이 여기서부터 서북 방향을 맡는다. (제4석) [주6] 


7) 괘루개절(卦婁盖切) 소형 가군(加群)은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위쪽으로 4자(尺)를 쌓는다. (제5석) [주7] 


8) 구성(舊城) 바닥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본성(本城:장안성)은 42년만에 완공하였다. [주8] 


장안성의 축성 변화는 552년 공사 개시, 566년 내성 축조 개시, 586년 천도, 589년 외성 축조 개시, 593년 북성 축조 및 완공으로 정리하는 견해와 552년 궁성, 556년 내성, 589년 외성 축조, 593년 축성완료 및 북성 수축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북성은 산상에 입지하고 있으며, 내성은 왕궁이 있었던 구역으로 보고 있다. 외성(고려시대 서경성의 중성 포함)은 내성과 인접한 남쪽 지역은 관부와 귀족들의 주거지역, 그 외곽은 일반 사서인들의 里로 보고 있다. 주민의 거주지역인 里를 坊으로 구획하였다고 한다. 성문은 암문 1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보고 있다. 이들 문의 이름은 고려와 조선시대 성곽에서 살펴보겠다.


평양속지 원문

 



주 001 築長安城『三國史記』. 卷19 고구려본기 7 양원왕 8년]

주 002 『三國史記』. 卷19 고구려본기 7 평원왕 28년

주 003 『刻字城石 1』

주 004 『刻字城石 2』

주 005 『刻字城石 3』

주 006 『刻字城石 4』

주 007 『刻字城石 5』

주 008 舊城底有石刻曰本城四十二年畢役 『平壤續志』. 城池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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