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kkucult.culturecontent.com/story/story_text.asp?id=CP0432151005&type=4&item=1&cid=5&pno=1&pid=CP0432151007

발해의 천도과정
1. 발해를 연 구국(舊國)시대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298 
2. 구국에서 현주로, 현주에서 다시 상경으로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299  
3. 상경에서 동경으로, 그리고 다시 상경으로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300  
4. 발해 천도의 배경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301  
5-1. 상경성의 규모의 확대와 구조의 변화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302  
5-2. 상경성의 구조 - 해동성국  http://tadream.tistory.com/303


5장. 발해 천도의 종착지 상경성

1절. 상경성의 성립 - 규모의 확대와 구조의 변화

상경성(上京城)은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에서 서남쪽으로 약 35km, 동경성진(東京城鎭)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목단강(牧丹江) 중류의 동경성(東京城) 분지의 충적평원에 있다. 상경성의 서남쪽에 경박호(鏡泊湖)가 있으며 여기서 흘러오는 목단강이 성의 서벽 밖으로 약 1km 정도 흐르다가 동쪽으로 꺾이는데, 성의 북벽에서 3km도 안된다. 이곳은 토지가 비옥하고 관개에 편리하며 주위가 산으로 둘러 막혀 자연의 요새를 이루었다.
 
상경성은 외성(外城), 궁성(宮城), 황성(皇城)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그 규모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외성(外城)은 동서로 긴 장방형인데, 동벽은 3,358.5m, 서벽은 3,406m, 남벽은 4,586m, 북벽(凸형)은 4,946m로 성벽은 속에 돌을 쌓고 겉에 흙으로 덮은 토석혼축(土石混築)이다. 성의 총둘레는 162,965m이다. 
궁성(宮城)은 외성의 북쪽 중앙에 위치하며 크기는 동벽 900m, 서벽 940m, 남벽 1,050m, 북벽 1,906m의 장방형이며, 성벽은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돌로 쌓았다. 궁성은 중심구역과 북쪽구역, 동쪽구역 및 서쪽구역 등 4개 구역으로 나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곳은 중심구역으로, 그 크기는 동서벽은 720m, 남북벽은 620m이다. 중심구역은 다시 중구, 동구, 서구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중구에 7개의 궁전터가 있다. 
 
황성(皇城)은 큰 길(제5호 도로;너비 92m)을 사이에 두고 궁성의 남쪽에 위치하며, 크기는 동벽 447m(제5호 도로 포함), 서벽 454m, 남벽 1,045m, 북벽 1,050m로 동서로 긴 장방형이며, 성벽은 현재 북벽만 남아 있는데, 돌로 쌓은 것이 궁성의 벽과 같다. 황성은 동서로 3개의 소구역으로 나뉘는데, 동서 두 구역은 동서 413m, 남북 355m로 서로 크기가 같다.
 
그런데 이러한 규모의 상경성은 언제 완성된 것일까. 발해 전기에 30년마다 천도가 행해졌던 점을 고려하면, 처음 천도한 756년 무렵에 이러한 규모가 곧바로 조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발해는 794년 상경 환도 이후 내분기를 극복하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을 구가하였기 때문에, 상경성의 구조와 기능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존 상경성의 규모가 756년 천도 당시의 실제 규모라고 한다면, 이는 동 시기의 中京이나 東京에 비해 너무 크다. 오히려 중경(中京)의 외성(동서벽 729m, 남북벽 628m)의 경우 상경성 궁성의 중심구역(동서벽 720m, 남북벽 620m)과 규모가 비슷하고, 동경의 외성(동서벽 약 740m, 남북벽 약 706m)은 이보다 조금 크다. 또한 중경과 동경의 경우 내성에 세로 선상으로 궁전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배치된 구조는 상경성 궁성 내부에서도 확인된다. 
 
이렇게 볼 때 756년 무렵의 상경성은 그 규모가 현존 상경성의 궁성 내 중심구역 정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경과 동경의 내성 내부에 궁전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에서 볼 때, 당시 상경성의 내성은 중심구역 내부에 7개의 궁전터가 있는 중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현존 상경성 궁성 안에 있는 7개의 궁전터 가운데 제1․2궁전터에 해당되는 것을 중경과 동경의 내성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1․2궁전은 처음 천도하였을 당시에 조영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756년 무렵의 상경성의 규모가 중경이나 동경과 같았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규모가 확대되고 구조에 변화가 생겨났을까. 그 실마리는 아무래도 상경 환도 이전의 수도였던 동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동경 팔련성 바깥에 다시 외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팔련성 남벽의 바깥에서 발견된 3개의 절터의 위치가 상경성 황성 밖 외성 안의 절터 위치와 비슷한 점에서 추정된다. 즉 팔련성의 1호․2호․3호 절터는 상경성의 4호․2호․6호 절터와 위치가 비슷하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동경과 상경이 대체로 동일한 도시계획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즉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현존 팔련성 바깥에 다시 이방제(里坊制)를 갖추고 외성으로 둘러쌓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문왕 말기에 현존 상경성의 규모의 도성 계획이 수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왕 사후 대원의(大元義)의 즉위, 그리고 국인(國人)에 의한 피살과 성왕(成王)의 추대라는 정치적 갈등을 거친 후, 성왕은 상경으로 환도하였다. 따라서 동경성의 외성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동경 천도기에 계획에만 그쳤던 외성은 상경 환도 후 언제 실현되었을까. 이 점에서 문왕 사후(793)에서 선왕 즉위(818)까지의 25년간의 내분기 가운데 15년간 재위하였던 강왕(康王)대가 주목된다. 강왕대는 대내외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내분기 가운데 상대적 안정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왕 말년에 수립된 외성 설치 계획은 정국이 안정된 강왕 때 추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곧바로 현존 상경성의 외성 규모로까지 확대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성은 궁성, 황성, 외성 순서로 건축되었다는 감안한다면, 강왕대에는 현존 상경성의 궁성과 황성을 포함하는 정도로 규모가 확대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초기에는 외성 없이 궁실만 존재하는 궁도(宮都)의 형태로 있다가, 율령국가(律令國家)의 등장과 함께 조방제(條坊制)를 수반하는 도성제(都城制)가 확립되었다. 당나라의 낙양성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낙양성은 처음에 주도(州都)였는데, 국도(國都)로서 완성된 것은 칙천무후(則天武后)의 영창(永昌) 원년(689)이었다. 때문에 최초의 낙양성은 이른바 황궁 부분만 있었고, 그 주위에 황성이 조영되고 다시 그 주위에 방리(坊里)가 건축됨에 따라 비로소 국도(國都)의 체제를 갖추었던 것이다.
 
발해는 선왕의 즉위로 내분기를 극복하고 이후 정국은 안정되어 해동성국을 구가하게 되었다. 발해의 사방의 경계와 3성 6부등 중앙 통치기구와 5경 15부 62주 등 지방 통치제도가 대체로 선왕(宣王)․대이진대(大彛震代)에 완성되었다. 이는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통치체제의 확립을 의미한다. 상경성의 확대와 함께 외성이 설치되었다면 이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동경 시대에 계획된 외성이 이때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궁성도 확대되고 그 아래에 황성이 새로이 설치되는 등 내성의 구조도 바뀌고, 그 바깥의 시가지를 정연한 도시계획에 따라 배치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내성 구조의 변화에 상응하여 궁성내에 새로운 궁전 즉 제1․2호 궁전도 이때 세워졌을 것으로 파악된다. 
 
사료에 의하면 발해가 연호를 사용하고 궁궐을 ‘본따서 짓고’, 지방제도를 정비한 결과 해동성국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발해의 중앙정치제도나 지방제도가 율령제(律令制)로 대표되는 당나라 제도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본따서 지은’ 궁궐의 경우도 그 모범은 당나라의 장안성임에 틀림없다. 이는 상경성의 궁성과 황성이 외성의 북쪽 중앙에 위치하고, 상경성 전체가 중앙의 대로(大路)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획된 도시계획이 장안성과 똑같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당나라의 장안성은 통치형(統治型) 황제가 남면(南面)하는 구조로, 3성 9사 등 모든 행정기관은 모두 궁성 남쪽의 황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상경 - 상경성/동경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8
발해의 지방과 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450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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