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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평양성은 고구려 당시에는 장안성으로도 불리웠다. 평양성의 지리적 형세를 보면, 성곽의 남쪽에는 대동강이 S형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보통강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다. 평양성은 외성·중성·내성·북성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3km이고, 성안의 총면적은 약 12㎢이다. 그 중 내성은 130만㎡, 중성은 300만㎡, 외성은 730만㎡, 북성은 25만㎡이다.


또한 각 성의 성격은 내성은 궁성, 중성은 행정기관과 최고위 귀족의 저택이 있는 성, 외성은 일반 주민이 거주하는 성, 북성은 궁성의 보호성으로 추정된다. 각 성의 기능으로 보건데, 외성은 일종의 나성으로 볼 수 있다. 평양성의 구체적인 성곽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궁궐을 방어하는 내성이 먼저 축조되고, 그 후에 시가지를 두르는 외곽 나성이 축조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성곽의 형태상 초축시부터 외성을 구축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중성과 외성을 구분하는 성벽을 고려시대의 축조물로 보고 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내성에서의 궁전지는 만수대 일대로 추정되며, 또한 북성은 궁성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내성의 만수대 부근에서 고구려시대의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보통강 부근에서 성문지가 발굴되었다. 북성에서는 영명사(永明寺)터에서 돌계단과 초석, 기와 등 고구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외성에서는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바둑판식의 도로구획을 갖는 리방제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장안성은 산성+궁성+나성의 3중 구조라는 점에서 고구려 도성 성곽구조 발전의 최종적인 완성 형태라고 할수 있다.

 


〈참고〉 장안성의 축성은 552년(양원왕 8)에 시작되었으며, 오랜 시일에 걸쳐 축성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축성과관련된 5종의 석각이 발견되어 당시 축성 과정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제1석) 己丑(酉)年五月卄八日 始役西向十一里小兄相夫若牟利造作

(제2석) 己酉年[三]月卄一日 自此下向東十二里物苟小兄俳須百頭作節矣

(제3석) 己丑(酉)年三月卄一日 自此下向□[下]二里內[中]百頭上位使尒丈作節矣

(제4석) 丙戌十二月 中漢城下後阝小兄文達節自此西北涉之

(제5석) 卦宴盖切小兄力離自此東廻上□里四尺治


평양성 위성사진

평양성 평면도 (조선유적유물도감 3)


내성 북장대 (을밀대)

평양성 북성 북문

평양성 북성 북장대

평양성 북성 북문과 북장대

평양성과 대동강

평양성 내성 북장대 (을밀대)

평양성 내성 동암문

평양성 내성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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