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gloos.zum.com/lyuen/v/5577997


북표 라마동 부여족 인골과 가장 가까운 집단은 한국인


요서 내륙 지역에 위치한 라마동 유적의 위치 (A표시)


■ 요서 라마동 거주민이 부여족이라는 폭탄 발언


지난 2010년 4월30일 길림대의 주홍 교수가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16회 가야사 세미나에서 이상한 발언을 했다. "라마동 삼연 문화 주민의 족속문제에 대한 생물고고학적인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라마동 삼연 문화 주민이 부여족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삼연은 전연(前燕 337~370)과 후연 (後燕 384~409), 북연 (北燕 409~438)을 지칭한다. 삼연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비족이 주체가 되어서 생긴 국가다. 사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고고학자들이 간헐적으로 라마동 삼연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부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계속 언급해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는데, 중국 형질인류학의 대가인 주홍 교수가 직접 우리나라에 와서 아예 라마동 삼연 문화 주민이 부여족이라고 폭탄성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주홍은 삼연이 부여족이라거나, 선비족=부여족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중국 학계에서는 선비족계 전연이 여러차례 부여를 공격해 대량으로 포로를 잡아왔고, 이들 부여 포로들이 선비족 정권 내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고분을 조성한 지역이 라마동이란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후 그 지배층 중 일부가 당나라에서 고위 장수를 지냈듯이 선비족에게 포로로 잡혀간 부여족들도 모두 노예처럼 거주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밀집 고분을 조성할 정도로 삼연(특히 전연) 지배층 외곽에 자리잡은 집단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삼연에 부여계 관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전연 산기시랑 여울 등의 사례가  이미 문헌에서도 확인된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주홍 교수의 발언을 "폭탄성 발언"이라고 표현했을까. 사실 라마동 유적 자체가 선비족이 주체가 된 유적이 아니라 종족적으로 부여계 집단의 유적이라는 것 그 자체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라마동 유적이 동아시아 한/중/일 고대 갑옷, 마구 역사와 계보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이고 선도적인 위상을 이해한다면 라마동 유적이 부여계 유적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충격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홍 교수의 발언을 "폭탄성 발언"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특정한 지역에서 출토된 대량의 인골을 두고 중국 학계, 특히 형질인류학 전공자들이 부여족이란 구체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폭탄성 발언"이란 이야기를 한 것이다.


사실 형질인류학적으로 부여족 혹은 고구려족, 혹은 부여인, 고구려인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한 영역이었다. 부여-고구려계 고분에서 형질인류학적인 연구기법을 적용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의 인골이 대량 출토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동안 모호했던 부여-고구려계 집단의 형질인류학적 특징


다만 현대 만주족이 현대 한국인과 형질인류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토대로 볼 때 그 중간지역에서 거주하던 집단인 부여-고구려계 집단이 현대 한국인과 형질인류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특성을 지닌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만주족과 현대 한국인의 유전적 관계 2008.1.29" http://lyuen.egloos.com/4117885")는 점은 이미 예전부터 이야기해 왔다. (관련글 : http://blog.daum.net/greatcoreaen/3141 )


하지만 이같은 나의 정황론을 뒷받침할만한 형질인류학적 증거는 지금까지 없었다. 특히 고구려나 부여하기 존재하기 이전 단계인 기원전 10~기원전 4세기 중국 길림성 서단산 유적의 인골이나 기원전 16~11세기의 요령성 본계 유적의 인골은 현대 한국인과 비교하기 애매한 특성이 많아 논란이 되었다. 북한 사회과학원 "조선사람의 기원" 150쪽의 표를 보면 서단산 유적의 인골은 머리뼈 높이가 평균 132.0mm에 불과했다. 이는 북한 학계에서 산출해낸 이른바 "조선 옛 유형 사람"의 머리뼈 높이 평균 140.3mm보다 두드러지게 낮아서, 과연 서단산 인골을 "조선 옛 유형 사람의 한 지방유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인지 망설이게 만들었다.


북한 학계가 분석한 서단산 인골의 정체. 도표 원출처 "조선 사람의 기원, 1989".


북한 학계는 서단산 인골이 "조선 옛 유형 사람의 한 지방유형"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으나 위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서단산 인골이 퉁구스족과 현대 한국인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음을 숨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단산 유적 인골을 퉁구스계 집단으로 보기에는 두장경이 175.mm, 두폭경이 138.1mm로 너무 작았다. 다시 말해 서단산 유적은 한국인과 관련시키기에도, 반대로 퉁구스계(역사상의 숙신-말갈)와 관련시키기에도 다소 애매한 특이한 유형의 인골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 학계에서는 "조선사람의 기원" 155쪽에서 매우 복잡한 계산을 거쳐 서단산 유적 인골과 현대 한국인 사이의 집단적 쌍거리가 5.1인데 퉁구스와는 6.2라는 수치를 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서단산 유적이 현대 한국인에 끌리는 경향이 존재함을 강조해 왔다.


서단산 유적 외에도 요령성 본계 유적에서 나온 인골이라도 현대 한국인 내지 한국인과 유사한 만주족과 비슷한 유형의 인골이 나왔으면 논란이 종식되었을 텐데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요령성 본계 유적의 인골도 북한 학계가 주장하는 이른바 "조선 옛 유형'이나 현대 한국인, 현대 만주족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일본 고대 죠몽, 일본 고대 야요이 인골 중 일부, 일본 현대 아이누 등 세 집단을 삼각점에 두고 야요이와 조몽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본계 유적 인골의 상대적 위치에 대해서는 주홍, 东北亚地区古今居民种族类型的比较研究, 길림대 사회과학학보 1998-5기 4쪽 참조)


이들 유적은 기본적으로 부여-고구려 건국보다 훨씬 이전 단계의 것이고, 부여나 고구려의 유적이 분명한 곳에서는 막상 형질인류학적인 연구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정도로 많은 수량의 인골이 출토된 사례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은나라 지배집단, 동호족, 선비족, 탁발선비족, 거란족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형질인류학적 특징을 나열하던 중국 고고학계나 형질인류학계에서도 부여나 고구려의 형질인류학적 정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던 중국 학계에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왔길래 느닷없이 북표 라마동 삼연문화를 조성한 주민 집단이 부여족이라는 발언을 한 것일까. 어떤 형질을 가진 집단이 부여족이란 이야기도 하지 않던 중국 학계에서 왜 부여 본거지도 아닌 엉뚱한 요서 북표 라마동 유적을 놓고 부여족을 거론하는 모험을 한 것일까. 부여의 영토가 아님이 분명한 요서 내륙지역에서 출토된 인골을 놓고 부여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에 주홍 교수가 국내에서 발표했던 논문 전문은 열람할 수 없었지만 발표 요지에 적힌 "고화북유형과 고동북유형의 혼혈" 운운하는 설명은 부여족이라고 결론을 내린 근거로는 다소 약하다고 느꼈다. 사실 길림대 형질인류학 연구자들이 말하는 고화북유형과 고동북유형 두 집단의 혼혈로 형성되었음직한 역사상의 집단은 그 외에도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 라마동 유적을 놓고 중국학계가 부여족이란 이야기를 한 이유


사실 중국 학계에서 라마동 유적을 순수한 선비계 유적이 아니라 부여계 유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던 출발점은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유물 양상이 전형적인 선비족 무덤의 그것과는 달랐다는 점 때문이다. 동시에 라마동의 유물이 송화강 유역의 부여권 유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고고학에서 먼저 부여계라고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고학자도 아니고 형질인류학 전공자들까지 굳이 "부여족"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차에 중국 길림대에서 2010년에 공개한 박사 논문(라마동 삼연문화 거주민의 인골연구 2009)을 보고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왜 부여 본거지도 아닌 요서 지역 내 부여 포로 집단의 무덤을 놓고 중국 형질인류학계가 굳이 부여계로 못박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말이다.


아래 표를 보자.


위 표는 동북아시아 제 집단과 라마동 유적 인골의 주요 측정치와 지표 총 19개를 Morant 기법을 이용해 비교한 것이다. 표에서 화북조는 1920~30년대 측정 자료에 기반한 중국 북방 한족, 조선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형질인류학계가 측정한 식민치하의 한국인을 지칭한다. 기타 몽고조는 몽골족, 애사기마조는 에스키모족, 통고사조는 퉁구스족, 나내조는 남부 퉁구스계 나나이족을 의미한다. 보는 바와 같이 비교 집단 중에 가장 가까운 것은 한국인이다. 그 다음 가까운 것이 남부 퉁구스계 나나이족이고, 그 다음이 북방 한족, 몽골족이고, 퉁구스족은 가장 멀다.


1920~30년대 화북조 다시 말해 북방 한족의 측정치는 현대 이후 중국 학계의 측정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장경이 짧은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비교 데이터를 다른 것으로 사용했다면 부여족과 북방 한족의 거리는 더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 남부 퉁구스계 만주족이 형질인류학적으로 한국인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위 표에서 한국인 다음으로 남부 퉁구스계 나나이족이 라마동 부여족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위 표는 같은 형질인류학적 측정치와 지표를 유클리드 거리로 계산한 것이다. 역시 라마동 부여족과 현대 한국인이 가장 가까운 집단으로 나온다.



위의 계산결과 수지형 표로 그리면 당연하게도 라마동 부여족과 현대 한국인이 한 그룹으로 묶인다. 에스키모와 나나이족이 한 그룹으로 묶이고 한 단계를 건너 뛰어 북방 한족과 연결된다. 퉁구스족과 몽골족이 그와 구별되는 그룹으로 묶인다.


다시 말해 중국 길림대 형질인류학 연구팀은 자신들의 분석 기법상 요서 북표 라마동에서 나온 인골이 현대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 유적의 종족적 주체를 부여족이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논문은 부여족(그리고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인 고구려족 내지 고구려인)이 현대 한국인과 형질인류학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을 사실상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막연하게 부여-고구려를 우리 역사로 생각하는 역사 인식론 내지 역사 계승의식 차원을 넘어서서 형질인류학적으로도 부여-고구려와 현대 한국인의 연관관계를 한 차원 더 진전된 상태(최종 결론은 아니다)에서 논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에 이 논문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예상되는 질문과 지적에 대한 Q&A


➀ 부여-고구려계와 현대 한국인이 동일 계통의 집단이었음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나?


증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측정한 인골 개체수는 426건에 이르고, 이중 성별이 명백한 404개의 예를 연구에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두장폭 지수등 형질인류학적 주요 측정치와 지표를 비교하는데 사용한 남성 성인 인골의 수는 대략 40~73개체에 이른다. 이 정도 많은 고인골을 이용한 연구는 흔하지 않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워낙 인골 보존 상태가 좋았다. 다만 머리높이가 136mm라는 점은 한국 학계나 북한 학계에서 공개한 한국인 인골 머리 높이 평균치(140mm 내외)와 비교해 다소 낮은 것이다. 물론 서단산보다 높지만 현대 한국인과 비교해서는 눈에 띄는 점이다. 이것이 순수 부여족의 인골이 아니라 당시(3~5세기) 선비족 내에 포로로 끌려 왔던 부여계 집단과 현지 주민과의 어느 정도 혼혈이 된 집단이라면 상대적으로 낮은 머리 높이는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중국 학자들이 개별 데이터들의 측정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 운운하는 것을 봐선 현저히 다른 특성을 지닌 인골이 혼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치로 봐서 현대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란 결과가 나온 것을 볼 때 부여-고구려계 집단과 현대 한국인 사이에 연결고리가 존재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여-고구려계와 현대 한국인이 동일 계통의 집단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 몰라도 모종의 강한 연결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종의 강한 연결관계라는 것은 결국 문헌 사학계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3원적 구성설, 즉 고대 예-맥-한 3개 종족의 결합체가 현대 한국인의 뿌리"라는 주장과 "고대 삼한은 북방의 예맥족(부여-고구려의 주류 종족)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지역화한 종족으로 본질적으로 예맥족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집단"이라는 주장을 의미한다.


➁ 동일 계통의 집단이라고 단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날 유전자 인류학이 발달한 상태에서 고전적인 형질인류학적 측정치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라마동 유적의 mtDNA를 분석해 제 집단과의 상호거리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이미 일부 공개가 되고 있지만 각 하플로그룹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는 아직 부분적으로만 공개되고 있어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리고 애당초 현대 만주족과 현대 한국인은 형질인류학적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두 집단을 두고 동일 종족, 내지 동일 민족이라고 표현을 사용하는 연구자나 학자는 전혀 없다. 양 집단의 언어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계통론 내지 비교언어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고구려어는 현대 한국어와 모종의 연결고리가 존재하지만 고구려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학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퉁구스-한국-일본을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안에 고구려어를 포함시키는 학자도 있고, 한국-일본어를 한 그룹으로 묶으면서 고구려어는 상대적으로 일본어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반대로 고구려어와 몽골어나 퉁구스어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학계 일부와 북한 학계에서는 고구려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는 한국어라고 주장하면서 고구려와 신라어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언어적인 관점에서 고구려어의 위상과 정체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 내지 좀처럼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다만 부여-고구려계 집단이 현대 한국인과 형질인류학적으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아마도 유전자 인류학으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앞으로 고구려인내지 고구려족과 고대 한국인(삼한)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이라는 점 정도는 증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확한 용어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고구려인과 백제인, 신라인은 형제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진척될 가능성은 있다.


➂ 형질인류학은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고고학 전공인 S대의 L교수도 과거에 이런 연구에 대해 혹평하지 않았나?


형질인류학에서 사용하는 각종 측정치와 지표들이 유전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생활환경에 의해서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형질인류학이 완전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도 동의하기 힘들다. 지난 2008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분과에서 나온 학회지에도 한반도 고인골을 형질인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게재됐다. 우리나라는 형질인류학을 상대적으로 박하게 평가했던 영미권 학계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 인류학은 인정하면서 형질인류학은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한데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고 본다. 지난 2008년 이후 동래성 해자 발굴 때도 칼에 부서진 인골들의 국적을 확인할 때 결국 형질인류학적 측정치와 지표를 동원해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인 인골이라고 결론내리지 않았나. 무용하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막상 고인골을 손에 들었을 때 형질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중국 학계에서 동일 지역에서 비슷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는 만주족과 한족 대학생을 형질인류학적으로 비교 연구한 결과를 보면 종족별로 형질인류학적인 차이가 분명히 식별된다. 다시 말해 생활환경이 형질인류학적 측정치를 변화시킨다할지라도 유전적 영향을 완전 배제할수는 없다. 서구권보다 형질인류학적 연구자료가 많이 축적된 러시아와 중국의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동북아 지역의 제 종족집단의 상호관계를 비교할 때 형질인류학적 연구결과는 유전자 인류학의 연구결과와 상반된다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다. 요서지역의 인골이 형질인류학적으로 고동북유형이 고화북유형으로 교체되거나 고몽고고원유형으로 교체될 때 유전자 인류학적 관점에서도 하플로그룹의 비율과 구성에 급격한 변동을 일으키는 현상이 확인된다. 다시 말해 형질인류학적 연구가 다른 연구와 연계해서 보조적인 참고 자료로 이용되는 한 무용하다고 비판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➃ 우리 학계의 형질인류학적 연구결과, 특히 국편위의 한국사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중요한 개설서와 논문집에 실린 P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신석기, 청동기, 철기, 고려, 조선시대 각 인골의 형질인류학적 측정치와 주요 지표들이 급격하게 요동치는 현상이 있다. 막상 한국인 내지 그 조상임이 분명한 인골에도 이처럼 지표가 요동치는데 이런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측정에 사용한 인골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점은 이미 관련 연구자도 인정한 사례가 있다. 현대 한국인이 단두라고 해서 한국인 100명을 측정해서 단두가 100%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인골은 해당 유적에서 1~2개 샘플 정도 수집한 경우가 많아 일반화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물론 늑도 인골 같은 경우 단순히 샘플 타령은 하기에도 너무 벗어난 측정치를 보여준다. 이런 인골은 종족 이동, 민족 이동 현상이 흔적을 남긴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대적으로 머리 높이가 높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➄ 왜 하필이면 부여족 포로인가. 부여 영토가 요서 라마동까지 미쳤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당시 문헌이 묘사하는 시대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라마동 유적 이외에는 당시 요서 일대에 전형적인 선비족풍의 유적이 많이 존재한다. 라마동 유적 외에 당시 요서지역 유적에서 나오는 인골도 고몽고고원유형-고시베리아유형-북아몽고인종 계통이어서 라마동의 인골과 전혀 달라 선비족 계통의 유적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라마동 유적이 기본적으로 선비족의 정치적 영향권 내에 있었던 부여족의 유적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➅ 왜 하필 부여족인가. 요서에서 현대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인골이 나왔다면 백제 요서진출설의 증거로도 활용할수 있지 않나.


이런 질문도 나올줄 알았다. 인골 자체만 보자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의 양상이 한성 백제 내지 그 이전단계의 한강 유역 일대의 유물과 비교할 여지는 없다. 선비족 유물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송화강 유역의 유적들과도 강한 관련성이 있는 유물들이어서 부여 외에 다른 집단을 생각하기 힘들다.


➆ 이런 연구기법으로 중국의 대문구문화 등 동이족이 건설했다는 유적에서 나온 인골과 현대 집단을 비교할 수 있지 않나. 다시 말해 중국의 선진 동이족이 한국인과 정말 관련이 있는지 분석할 수 있지 않나.


연구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이미 중국학계에서도 연구한 적이 있고 북한 학계에서도 연구한 적이 있다. 우선 북한 형질인류학계는 이미 앙소문화의 반파유형 고인골이나 대문구-용산문화의 대문구, 서하후 고인골의 특징을 연구해 조선 옛 유형사람이나 현대 한국인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 북한 형질인류학계는 선진 동이족과 현대 한국인이 관련있다는 주장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1989년간 <조선사람의 기원>, 2009년간 <조선사람의 체질>, <조선사람의 기원과 형성>을 참조하면 된다. 우리 학계에서는 한국 신석기 시대 인골과 중국 신석기시대 용산 문화 인골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언급을 한 논문(한림과학원총서41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 수록)이 있지만 세부적인 비교를 하지 않아 큰 의미는 없다. 중국 학계의 연구결과는 조금 복잡하다. 대문구 문화인골에 대해 동아몽고인종과 남아몽고인종이 혼혈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폴리네시안적인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견해를 부인하면서 모두 고중원유형의 아형으로 앙소,대문구, 용산 문화 유적에서 나온 인골이 형질인류학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시 말해 중국 학계의 연구결과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논쟁이 진행되는 이유는 대문구문화권 내에서 출토되는 인골이 편두 등 인공적 변형이 된 경우가 많아서 정상적인 형질인류학적 접근법으로 분석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골을 유전자인류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야 최종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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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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