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1828.html


MB보다도 긴 조국 수사…“검찰이 잔인해졌다”

등록 :2019-12-23 15:41 수정 :2019-12-23 17:03


강희철의 법조외전(81)

MB 영장 청구까지 88일 걸린 반면 조국 수사는 120일 넘어도 계속돼

‘일가비리’에서 구속 사유 못 찾자 ‘유재수 감찰무마’ 혐의 영장 청구

“구속 목표로 ‘별건 수사’는 잘못” 적폐 수사와 같은 방식 ‘아이러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탄 채 청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탄 채 청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사람의 짐작이 결국엔 맞았다. 23일 오전 속보로 뜬 “검찰, ‘유재수 감찰 무마’ 관련 조국 구속영장 청구”라는 한 줄 헤드라인은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검찰의 목표는 처음부터 조국의 구속, 검사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조국을 “잡아넣는 것”이거나 “입고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8월에 시작한 일가 수사를 다섯 달째 종결하지 않은 까닭도, 거기서는 ‘구속할 거리’를 찾지 못해서였다는 점이 이제 분명해졌다.


부인 정경심 교수를 지난달 11일 기소하고 나서도 검찰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신병 처리 결정을 하염없이 늦췄다. 서울동부지검의 영장 청구와 상관없이 일가 수사는 지금도 ‘계속 수사 중’이다. 23일을 기준으로 지난 8월27일 일제 압수수색 때부터 헤아리면 1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사건이 재배당된 8월20일을 기점으로 세어 보면 120일을 훌쩍 넘겼다. 사건 배당(+수사팀 구성)부터 핵심 피의자 신병 처리 결정까지를 수사의 한 단락으로 본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가 151일,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가 8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가 215일 걸렸다. 내용이 훨씬 복잡한 것은 물론 등장인물이 많고 규모가 컸던 이들 사건과 견줘 보면 조국 수사에 걸린 시간은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길다.


이명박은 88일, 조국은 125일


물론 검찰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건은 수사 환경과 조건이 전부 다르다. 어느 부서, 어떤 검사가 하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나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단순·수평 비교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조 전 장관은 앞서 언급한 사람들과 달리 서슬이 시퍼런 ‘살아 있는 권력’이었다. 그는 수사 기간 중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35일간(9월9일~10월14일) 재임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붙였으나, 검찰 입장에선 ‘수사 방해’로 받아들일 만한 여러 조치가 숨 가쁘게 시행되기도 했다. 인사권자와 그 가족에 대한 수사였으니, 당시 수사팀이 떠안았을 심적 부담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고선 절대 알 수 없는 일”(검찰 관계자)일 것이다.


정경심 교수의 출석 거부, 조 전 장관의 진술 거부도 있었다. 그러나 치명적 약점을 잡히지 않는 한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고 피의사실을 술술 털어놓는 피의자는 거의 없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기부죄거부’(自己負罪拒否)는 헌법적 권리다. 사법농단 수사를 겪은 뒤 법원의 영장 심사는 이전보다 훨씬 깐깐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이 모든 제약과 난관을 뚫고 자신들의 의심이 맞았음을 법적으로 증명해야 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은 조국 수사가 특별히 더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정당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검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속한 수사를 강조해왔다. 지난 10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대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답변이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방침입니다.” “어떤 수사든지 간에 저희는 가장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수사도 확인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수사절차는 가장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11월18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책임자도 비슷한 말을 거듭 ‘다짐’했다. “항상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수사 착수 이후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한 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해왔다. (…) 객관적 증거와 지금까지 확보한 진술을 통해서 차질 없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 말이 나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유재수 건 영장은 별건 수사”


수사 책임자가 ‘신속한 수사’를 언급한 뒤로 조 전 장관은 11월21일, 12월11일 2, 3차 소환 조사를 받았다.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이 곧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왔지만, 한편에선 서울동부지검 수사가 조국까지 갈 거라는 관측도 있었다. 서울동부지검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구속(11월27일)하고 며칠 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인은 이런 말을 했다.


“구체적인 수사 상황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정도 수사를 했으면 조국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조국의 진술 거부로 수사에 제약이 있어도 그건 피의자의 권리 행사이니 검찰로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과거 한명숙 전 총리도 검찰 수사에서 진술을 거부했으나 재판에서는 결국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나. 필요 이상으로 수사를 질질 끄는 듯한 모양새가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온다. 본체(일가 비리 수사)에서 조국의 영장을 칠만한 게 나오지 않으니까, 여러 가지 압박을 가했겠지만 돌파가 안 되니까, 동부지검 수사를 기다렸다가 ‘유재수 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것 아닌가, 안 되면 그만 털어야 하는데, 터는 것도 용기인데, 그게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약 유재수 건으로 조국의 영장을 친다면, 그건 그야말로 ‘별건 수사’가 되는 거다.”


결국은 그의 관측이 정확했다.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16일과 18일 잇따라 조 전 장관을 조사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조사 때와 달리 서울동부지검에 나가서는 태도를 바꿔 상세히 진술했다고 한다. 사면초가에 몰리면서다. 청와대 민정수석 재임 당시 휘하에 있던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유재수(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감찰 중단은 조 전 수석이 결정하고 지시한 일”이라고 검찰에 진술하면서 조국은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감찰 중단은 정무적 판단”이라는 그의 주장은, 이들의 진술을 깨기에 역부족이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청와대 직제상 감찰 중단 결정의 책임자는 민정수석(조국)이다. 설령 박형철·백원우와 회의를 열고 의견을 들었다 해도, 결정권자가 조국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감찰 중단 결정에 직권남용이 성립한다면, 그 책임자는 조국이 되는 구조다. 박형철, 백원우 두 사람도 결정은 조국이 했고, 자신들은 거기 따랐다고 진술했다. 그럼 조국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누군가가 시켜서 감찰을 중단했다면 그 ‘누구’를 진술해서 자신의 책임을 벗든지, 아니면 본인이 전적으로 형사 책임을 지든지.” (검찰 관계자)


지난 7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윤 총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7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윤 총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애초 검찰은 유재수 수사가 시작될 무렵, ‘조국 전 장관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부인은 이제 무색해졌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1월 수사 의뢰한 유재수 사건을 조국 수사가 한창이던 9월에, 즉 8개월 만에 캐비넷에서 꺼낸 검찰의 의도는 영장 청구를 통해 뚜렷이 드러났다. 검찰 지휘부가 유재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시키려다 서울동부지검의 반발로 그만뒀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애초엔 일가 수사와 합쳐 조사한 뒤 조국의 신병 처리를 결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얼마가 걸리든, 어떻게 해서든 조국을 구속하는 것이 검찰이 생각하는 정의의 실현일까.


“검찰 수사가 잔인해지고 있다”


이런 방식의 수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넘게 계속된 적폐 수사 과정에서 익히 보아온 풍경이다.


약간의 우스개를 섞어, 검찰 특별수사의 계보를 두 개 문파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검찰 출신들이 하는 말인데, ‘외과 수술형’과 ‘먼지떨이형’으로 대별한다. 전자는 마치 외과 의사가 환부를 수술하듯 뚜렷이 드러난 범죄 사실만 도려내는 것이 특수부 수사의 정석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총장을 지낸 이명재, 김진태 검사가 이 문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특히 이 전 총장은 “수사 대상조차 승복할 수 있는 절제된 수사”를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솔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검찰 수사가 잔인해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대상자의 구속은 기본이고, 승복이 아니라 항복할 때까지 접근 가능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요즘 검찰이 하는 수사를 보면 자꾸 잔인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표적인 게 태광그룹 모자를 동시에 구속한 사건이에요. 그룹 회장인 아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되지, 팔순 노모까지 악착같이 구속할 필요가 뭐 있어요. 그 사건이 계기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 이후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어요. 소위 말하는 적폐 수사에서 더 심해졌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지 보세요.”


지난해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검찰총장은 후배들의 행태를 깊이 우려했다. 인신 구속을 능사로 여기는 최근의 수사 방식에 대해서는 그 말고도 비판적인 검찰 출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평가는 판이했다. 지난 6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새 검찰총장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했다고 밝히면서 “(윤 지검장이)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했다. 당시 윤 지검장과 그를 따르는 일군의 검사들-‘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의 수사 방식을 현 정부가 ‘공인’한 셈이다.


‘윤 총장’ 임명에는 문 대통령의 일관된 평가뿐 아니라 조 전 장관의 조력도 크게 한몫했다고 한다. 그의 능력과 성과를 높이 산 결과였을 것이다. 이달 초에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항간에 조 전 수석이 총장으로 밀었던 사람은 다른 검찰 간부라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 전 수석은 시종일관 윤석열을 차기 총장 적임자로 대통령께 추천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사단’이 석권한 지금의 검찰 간부 진용을 최종 결정한 사람도 다름 아닌 조 전 수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청와대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바로 그 윤 총장과 그의 사단이 120일 넘게 조국을 수사하고, 마침내 ‘별건 영장’을 청구했다. 적폐 수사 때와 똑같은 방식, 똑같은 죄명으로.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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