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10_0030_0030_0010_0020


(2) 발해국 지배층의 성씨 분포와 그 유민

신편 한국사 > 고대 > 10권 발해 > Ⅱ. 발해의 변천 > 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1) 발해유민의 의미


발해유민을≪고려사≫나 중국이나 일본측의 기록에서 가려내는 작업은 ‘발해유예’를 그 범주에 포함시킬 때에 쉽지 않은 일이다. 좁은 의미의 발해유민은 ‘발해 아무개’와 같이 국적이 확실히 밝혀진 사람들을 뽑으면 된다.166) 그러나 ‘거란(요) 아무개’도 때에 따라서는 발해유민으로 보아야 한다. 이름이 밝혀진 사람들 중에 거란 국적을 가졌다 할지라도 발해유민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우선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거란’으로 표기되는 경우와, 그 다음으로 거란사람들 중에서 발해 지배층에 많이 나타났던 사람들의 성씨, 이를테면 ‘高아무개’, ‘大아무개’와 같은 사람들, 끝으로 앞뒤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발해유민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경우 중 첫번째의 예는 찾아볼 수 없고, 두번째와 세번째의 경우를 통해서 거란 국적을 가진 발해유민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우선 여러 사료들 가운데서 발해인으로 이름이 밝혀진 성씨를 종합해 보기로 한다. 물론 성씨가 밝혀진 고아무개나 대아무개만이 발해유민이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성씨가 밝혀져 있지 않은 이를테면, 고아무개나 대아무개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몇 십·몇 백·몇 천의 사람들도 이름이 밝혀져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발해인이었기 때문이다. 金毓黻(김육불/진위푸)의≪渤海國志長編(발해국지장편)≫에 의거하여 발해인의 성씨를 종합하면 다음의<표 1>과 같다.167)


 姓

 宗 臣

 諸 臣

 士 庶

 遺 裔

 計

 大

 49 

 

 

 41 

 90 

 高

 

 32 

 1 

 23 

 56 

 王

 

 8 

 

 14 

 22 

 李

 

 13 

 

 5 

 18 

 張

 

 2 

 

 11 

 13 

 烏

 

 6 

 

 5 

 11 

 楊

 

 

 慕

 

 

 

 史

 

 

 賀

 

 

 

 多

 

 

 

 崔

 

 

 

 釋

 

 

 郭

 

 

 

 茹

 

 

 馬

 

 

 

 已

 

 

 

 薩

 

 

 正

 

 

 

 安

 

 

 

 劉

 

 

 裴

 

 

 

 기타 1명씩

 

32 

30 

65 

 計

49 

132 

137 

317 

<표 1>발해 지배층 성씨 분포표


표에 나타난 사람들의 성씨 분포를 보면 大氏가 90명, 高氏가 56명, 王氏가 22명, 李氏가 18명, 張氏가 13명의 순이다. 이것은 발해와 고구려 왕족이었던 대씨와 고씨가 발해 왕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씨 다음으로 나타난 王·李·張·烏·楊氏들도 발해사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발해의 지배층이었다.


앞의<표 1>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사료는 중국측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옛날 그(발해) 왕은 姓이 大氏였고, 右(貴)姓(우/귀성)으로는 高·張·楊·竇·烏·李氏(고,장,양,두,오,이씨)의 몇 종류에 불과했으며, 部曲·奴婢·無姓者(부곡,노비,무성자)는 모두 그들 주인의 姓(성)을 따랐다(洪皓,≪松漠紀聞≫권 上, 渤海).


이것은 대부분 앞의 성씨분포표와 일치하는데, 단지 竇氏(두씨)가 분포표에서 1 명도 없다는 것이 예외라 하겠다. 또한 위의 여섯 개의 右姓(貴族姓)(우성/귀족성)외에 발해의 庶姓(서성)으로 49개의 성씨가 있었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다.


賀(하)·王(왕)·任(임)·馬(마)·馮(풍)·呂(영)·裴(배)·崔(최)·已(이)·慕(모)·郭(곽)·木(목)·史(사)·辛(신)·解(해)·趙(조)·劉(류)·朱(주)·衛(위)·吳(오)·洪(홍)·林(림)·申(신)·夏(하)·梁(량)·羅(라)·文(문)·安(안)·朴(박)·胥(서)·茹(여)·卯(묘)·門(문)·隱(은)·周(주)·列(렬)·公(공)·多(다)·聿(률)·受(수)·智(지)·壹(일)·怱(총)·古(고)·阿(아)·達(달)·冒(모)·謁(알)·渤海(발해)(金毓黻,≪渤海國志長編≫권 16, 族俗考 3).


이들 성씨는 앞의 성씨분포표에서 대부분 2명 내지 1명씩 있었던 사람들로서, 김육불은 이들을 모두 庶姓(서성)이라 하였으나 오히려 우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7세기말에서 10세기 초엽에 성씨를 가졌던 사람들은 발해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66) 李鍾明,<高麗에 來投한 渤海人考>(≪白山學報≫ 4, 1968).

權兌遠,<高麗初期 社會에 미친 歸化人의 影響에 관한 考察>(≪忠南大 人文科學論文集≫19, 1981).

金昌謙,<後三國 統一期 太祖 王建의 浿西豪族과 渤海遺民에 대한 政策硏究>(≪成大史林≫4, 1987).

朴玉杰,<高麗時代의 渤海人과 그 後裔>(≪退村閔丙河敎授停年紀念 史學論叢≫, 1988).


167) 金毓黻의≪渤海國志長編≫ 宗臣·諸臣·士庶·遺裔列傳에 의거하여 작성하였으며 위의 釋은 승려로서 俗姓은 알 수 없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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