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11701


낯 뜨거운 '봉 마케팅'... 정치권이 외면한 기생충의 역설

봉준호 박물관? 재탕 공약?... 스크린독과점·블랙리스트 규명 등 해결은 뒷전

20.02.13 08:16 l 최종 업데이트 20.02.13 08:16 l 조혜지(hyezi1208)


트로피 든 봉준호 감독 2020년 2월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트로피 든 봉준호 감독 2020년 2월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한 이후, 정치권은 너도나도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 지역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의 '봉준호 생가 복원' 공약이나 강효상 한국당 의원의 '봉준호 박물관' 공약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12일 문화예술인 복지 향상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예술인 고용안전망 강화나 문화 향유권 확대 등 지난 대선 당시 문화·예술 공약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는 예술계의 시각은 싸늘하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이 함의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주목하기보다, 단순히 '숟가락 얹기'식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화·예술계 의제는 더욱 뒷전이라는 평가다. 제2의 봉준호, 또 다른 <기생충>이 나와야 한다고 칭송하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적 문제 해법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봉준호의 역설] 우상호 "제2의 봉준호 못 만든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CJ ENM 사외이사 경력 문제와 영화인들의 지명 철회 요구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CJ ENM 사외이사 경력 문제와 영화인들의 지명 철회 요구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 유성호

 

"지금 영화 풍토, 시장 상황을 보면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도저히 만들 수가 없다. 영화관이 걸지 않기 때문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현 영화 시장의 구도라면 "제2, 제3의 봉준호는 나올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1000만 관객이 목표가 된 대기업 중심의 영화 시장에선 봉 감독의 초기작과 같은 실험작이 대중에게 소개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우 의원은 한 영화를 특정 시간대 스크린의 50%를 넘지 못하게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안(아래 영비법)'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다 가도록 아직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 논리를 헤칠 수 있다는 한국당의 '규제 반대' 논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기업의 입김이 걸림돌이다.


그는 "단순히 독립영화 진흥책이라기보다, 기존 상업영화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1000만 영화를 보고 싶은데 50%로 제한하면 못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한국당과 기업의 논리인데, 오늘 못 보면 내일 봐도 되는 게 영화 아닌가, 기업 이익과 영화의 다양성 중 어떤 가치가 더 큰 지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이 같은 현상을 "봉준호의 역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봉준호를 못 만든다"라며 "(민주당 공약인) 예술인 고용안전법은 시장 상황 수급을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처우 개선 정도이기 때문에, 왜곡된 시장과 독점 상황을 바로잡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게 혈맥을 뚫어주는 제도가 실현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생충의 이면] "간섭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은? 

  

미완의 과제는 또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문화예술인 '좌파 낙인' 지원 배제, 즉 블랙리스트 사태가 아직 명확히 해결되지 못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이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도 주목했다. 미국 변호사 네이선 박은 지난 10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블랙리스트 존재 사실을 언급하며 "자본주의의 모순을 담은 <기생충>은 예술에 자유로운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민주당의 '자찬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인을 탄압했던 박근혜 정부와 달리,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창달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속했던 피해자이자 진상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일부 예술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해찬 대표는 2018년 11월 면담을 요청한 문화예술인들과 만나 관련 TF(태스크포스) 팀 구성과 함께 ▲블랙리스트진상규명특별법(가칭) 당 차원 입법 발의 ▲예술인의 권리보장 및 창작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적극 검토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활동에 집중해온 송경동 시인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송 시인은 "(구성 약속 이후) 1년 반 정도 지났는데, 한 번도 소식이나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라면서 "현장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TF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이행되지 않았고, 공식회의를 하자는 제안도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정부와 집권 여당이 '한국당의 반대'를 이유로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 구성에도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송 시인은 "(진상규명위원회 출범 당시에도) 한국당이 반대해 (예산을) 관철하지 못했다고 했다"라면서 "민주당은 예산 방어도 제대로 못해, 과연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했다. (항의 이후) 예비비로 일부 예산이 들어왔지만 모욕적인 과정이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떡고물 던져주기식으로 문제 희식시키면 안돼"

 

문화예술인 대행진 '블랙리스트 블랙라스트'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앞을 출발해 청와대앞까지 열렸다. 국회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입을 막고 있던 검은 마스크를 벗어 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광주민예총, 민족미술인협회, 터울림 등 131개 단체와 문화예술인 2,166명 개인은 선언문을 통해 ‘블랙리스트 불법공모 131명 책임규명권고안 즉각 이행’ ‘진상조사 및 책임규명이행 축소, 왜곡, 방해, 셀프 면책 책임자 문책’ ‘국회의 블랙리스트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 문화예술인 대행진 "블랙리스트 블랙라스트"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2018년 11월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앞을 출발해 청와대앞까지 열렸다. 국회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입을 막고 있던 검은 마스크를 벗어 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광주민예총, 민족미술인협회, 터울림 등 131개 단체와 문화예술인 2,166명 개인은 선언문을 통해 ‘블랙리스트 불법공모 131명 책임규명권고안 즉각 이행’ ‘진상조사 및 책임규명이행 축소, 왜곡, 방해, 셀프 면책 책임자 문책’ ‘국회의 블랙리스트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 권우성

 

다만 민주당은 현실적 한계가 있을 뿐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라는 부분이 너무 광범위하고, 또 판정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진행이 좀 더딘 것"이라면서 "기관과 (피해 예술인들의) 생각이 너무 달라 생각보다 어렵다"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정치권이 영화 <기생충>의 성과에 "숟가락만 얹으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의 역할과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예술인 기본 생활지원)을 떡고물을 던져주는 식으로 문제를 희석시키기보다, 법률에 기반한 피해자 대책마련과 블랙리스트 재발방지책을 지금이라도 제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기생충> 열풍을 유행 따라잡기식으로 좇을 게 아니라, 실제 구조 개선을 위한 기회로 삼아달라는 주문이다.


지난해 4월 발의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김영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입법에 참여한 한 보좌진은 "해당 법안이 2월 국회나 20대 국회 안에서 통과된다면 좋겠다"면서 "(이번 2월국회에서) 상임위 간사단을 통해 중점법안으로 받아달라고 이야기해 놓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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