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sk.nate.com/qna/view.html?n=4413023


발해의 사회, 경제


1. 발해의 서부와 남부 지역은 농업을 주로 하였고, 동부 지역은 농업, 어업과 수렵, 목축업이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 또한 북부 지역은 주로 어업, 수렵, 목축업 외에 농업도 일부 지역에서 어느 정도 발달하고 있었다. 

2. 발해는 대조영의 건국에서 대흠무 시기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철기를 사용함에 따라 사회생산력이 높아졌다. 게다가 정치도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중원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발해의 사회경제는 신속한 회복과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발전은 9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발해는 농업과 수공업이 서로 결합되어 분화되지 않은 자연경제가 우위를 차지하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발해의 수공업의 주요 분야로는 방직, 도기제작, 제련, 조선 등이 있었다. 

3. 모시풀인 저마(苧麻)를 심어서 포(布)를 짜는 것은 말갈인, 고구려인들의 유구한 전통인데, 발해인들은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그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한편 발해의 남부와 동부에서는 멧누에를 길러 고치로부터 실을 뽑아 솜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솜실로 명주 등을 짰는데, 정효공주 무덤의 벽화에 보면 이러한 명주 옷을 몸에 걸친 사람도 보인다. 

4. 또한 대규모의 건설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벽돌과 기와를 대량으로 구웠는데, 이러한 여건은 발해의 도자기 제조기술 발전을 촉진시켰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발해의 도자업은 이미 상당한 규모였고, 그 수준도 상당한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에서 생산된 광물로서 현재 알려진 것은 금, 은, 동, 철 등을 들 수 있다. 발해인들은 철을 다루는 데 매우 능숙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발해 유적지와 무덤에서 출토된 상당량의 철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5. 한편 조선업의 경우, 읍루인들은 항해에 뛰어났는데, 발해인들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다. 발해는 229년 동안 존속하면서 중국 측에 143차례, 일본에 34차례나 바닷길을 통하여 왕래하였다. 비록 구체적인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멀리까지 운항하였던 것을 보면 발해의 조선술이 어느 정도 발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6. 발해는 농업과 수공업을 주로 하는 사회였지만, 이밖에 상업에 있어서도 제한적 범위 내에서 교역을 하였다. 발해인들은 중국, 일본과 조공형식으로 진행된 왕실간의 무역을 위주로 교역하였다. 이때 발해의 수출품으로는 수렵과 채집으로 얻은 토산품이나 말, 구리 등이었고, 수입품은 농산품, 방직품 및 금은 세공품이었다. 한편, 조공무역과는 별도로 민간무역도 일부 존재하였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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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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