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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국책사업 믿었는데… 돈 떼이고 우는 공사판 사람들
4대강 사업 등 관리 소홀로 피해
조선일보 | 강훈 기자 | 입력 2012.02.11 19:52 | 수정 2012.02.12 10:23

부산 · 경남 지역에서 굴착기 3대를 갖고 각종 공사장에서 일하는 정모(57)씨는 작년 7월 낙동강 살리기 2공구 현장에 투입됐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 맥도 근처 강바닥을 정리하는 준설이 그의 일감이었다. 국토관리청이 발주한 이 사업은 일신이앤씨가 낙찰을 받아 중소업체인 동신개발에 하도급을 주었고, 정씨는 이 동신개발과 계약을 맺었다. 대금은 그달 일한 대가를 다음 달 말 지급받는 방식이었다. 정씨와 정씨가 고용한 굴착기 기사 2명은 5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래를 퍼냈다. 정부 역점 사업이라 공기(工期)를 반드시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 [조선일보]초대형 국책 사업으로 정부 차원에서 추진됐던 ‘4대강 사업’. 다른 공사보다 엄격하게 관리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부 업체에 대한 특혜 논란이 있었고, 한쪽에선 노임조차 받지 못한 근로자와 중장비업자들이 존재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국토해양부와 경남도가 사업권 분쟁을 일으켰던 경남 창녕군 낙동강 살리기 공사 현장. /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그런데 동신개발은 7월 공사 대금을 8월 말 결제해야 하는데도 지급을 미루더니 8월 공사 대금도 온갖 핑계를 대며 주지 않았고, 추석이 되어서야 500만원을 줬다. 그때까지 2000만원어치 일을 했는 데도 말이다.

정씨는 중도에 공사를 포기하면 밀린 노임을 못 받을까 두렵기도 하고 4대강 사업인데 설마 돈을 떼이겠냐는 심정으로 11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대금을 정리해주겠다. 이 업계가 원래 이렇지 않으냐"고 했던 동인개발은 공사 완공 직후인 지난해 12월 부도가 났다. 정씨는 "그동안 굴착기 기사 2명 월급 700만원 해주느라고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면서 "국책 사업이라 설마했는데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가 동신개발로부터 받지 못한 돈은 모두 5700만원이었다.

정씨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공사 현장 인부들에게 세끼 식사를 제공한 함바집(식당), 자재를 납품한 철물점도 사정은 정씨와 다르지 않았다. 함바집 주인은 5개월치 밥값 1900만원이 밀려 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야속한 사람들

4대강 사업으로 국내 건설업계 전체가 '특수'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대형 건설업체들은 '재미'를 보았을지 몰라도 공사 현장의 말단 사업자나 근로자에겐 반대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장비를 운전하고 이들에게 기름과 자재를 댔던 지역 업체, 직접 삽질을 하고 돌을 날랐던 근로자, 이들에게 밥을 해줬던 아줌마들이 이들과 계약을 맺은 업체의 부도나 대금 지급 거부로 피해를 보았다. 초대형 국책 사업으로 '민원'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전남 영산강살리기 1공구 생태하천 조성사업도 그중 한 사례였다. 굴착기 운전자 고모(43)씨는 작년 5월부터 두 달간 영산강변 자전거도로 조성현장에서 일했다. 하루 40만원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하도급업체가 임금을 주기로 한 그 다음 달 말 돈을 주지 않았다. 현장 사무소를 찾아가 "일을 나오지 않겠다"고 거칠게 항의하고 나서야 1500만원 중 6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달째 작업한 노임은 지금도 받지 못했다.

고씨뿐 아니라 현장에 투입됐던 다른 굴착기 운전자 9명도 수백만원씩 체불이 됐다. 이들 운전자와 식당 주인 등이 채권자가 되어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1억6000만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내고 이겼으나, 업체는 '너희 맘대로 해라. 우린 줄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현재 이 회사와 대표이사 앞으로 된 자산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 하도급업체는 원청업체로부터는 공사 대금을 꼬박꼬박 받아놓고도 을(乙)의 관계에 있는 현장 인력들에겐 돈을 받지 못했다고 둘러댔으며, 공사가 모두 끝나자 '남은 돈이 없다'고 '막가파'식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굴착기 등 건설중장비 업체의 모임인 대한건설기계협회는 "4대강 사업에 참여했다가 돈을 떼였다는 민원이 10여건 정도 접수됐다"면서 "통상 피해입은 업체의 5~10%가 신고를 해오는 점을 감안하면 4대강 사업에 동참했다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업체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관급공사도 돈 떼먹는 사례 많아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진 않지만 정부가 발주한 하천 정비사업에 참여했다가 지역 주민 100여명이 피해를 입은 곳도 있다. 충북 음성군 의 한강 지류 제방공사에 참여했던 영세 사업자들이 바로 그들. 현지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채모씨는 기름값 600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하천 제방을 쌓고 교량을 새로 짓는 유장건설이라는 하도급업체가 지정한 차량과 중장비에 기름을 대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11월 말, 유장건설에서 기름 대금을 주지 않더라는 것. 채씨는 지역 굴착기 업체와 식당, 철물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채씨는 대전국토관리청에 "업체가 이상하다. 부도 가능성이 있으니, 업체에 공사 대금을 주는 것을 보류하고, 기름과 자재를 댄 개인 사업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해달라"고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다. 대전국토관리청에선 "계약 관계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 정부로부터 공사 관리감독을 위탁받은 현장 감리단에도 찾아갔으나 "기다려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급해진 개인 사업자들이 유장건설을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업체에선 '곧 해결해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지난 설날 연휴에 채씨 등이 수소문해 본 결과 유장건설 대표는 이미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 상태였다고 한다. 국토관리청에서 공사 대금을 받아 해외로 도주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 지역 사업자들이 떼인 금액은 모두 3억원가량. 뒤늦게 감리단과 유장건설의 원청업체 측에서 "피해 금액을 변제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업체 대표가 돈을 갖고 가버린 이상 누군가가 손해를 떠안을 판이다. 유장건설의 경우 금강에서 4대강 사업 하도급을 맡고 있었는데, 여기에 각종 중장비와 자재, 인력을 제공한 업체들의 연쇄 피해가 불가피하게 됐다.

채씨는 이웃 공사현장에서 제방 건설을 하던 오렌지건설이라는 원청업체로부터도 9000만원어치의 기름값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작년 여름 오렌지건설 현장소장이 "모래 공급 업자에게 기름을 외상으로 줘라. 나중에 못 받으면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이후 모래 제공 업자가 기름값을 해결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채씨는 업체를 찾아가 항의를 했으나 "현장 소장이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금 결제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채씨는 "정부 공사라는 믿음을 갖고 기름을 줬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면서 "사전에 민원을 여러 차례 넣었는데도 지역 업체 목소리를 외면하고 부도가 유력한 업체에게 공사 대금을 줘버려 손해를 키웠다"고 했다.

서울시 SH공사 가 발주한 서울 구로구 천왕2지구 아파트 공사의 하도급업체였던 만수건설이 지난달 31일 부도 처리되면서 영세업자 4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굴착기를 대여했던 서모씨는 3개월 대금 1100만원을 받지 못했고, 함바집도 수천만원의 식대가 밀렸다. 피해 업자들은 "공기업 공사라고 안심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만수건설의 대표는 원청업체인 금호건설로부터 공사 대금을 챙기고 공사장 인부들과 개인 사업자에겐 줄 돈을 떼어먹는 '먹튀'를 한 것이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만수건설에 지불할 돈이 남아 있어 일용직 근로자들은 임금을 줄 수 있지만, 장비와 주유소 등 만수건설과 별도로 계약한 개인사업자에 대해선 우리가 돈을 갚아줘야 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대한건설기계협회에 접수된 임대료 체납 등 민원 접수 통계를 보면 관급공사가 민간공사 피해 사례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관급공사 체납 사례는 572건 (101억원)이었고, 민간공사는 409건(53억원)이었다.

◇"공사 관행을 바꿔야 한다"

4대강 사업 등 공사 대금이 100% 지급되는 관급 공사에서도 현장 근로자나 사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 탓이 크다. 관급공사의 경우 대금 결제가 현금으로 이뤄지고 착공 전에 일정분의 선급금을 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보통 선급금은 전체 공사 금액의 10% 정도를 주는데 4대강 사업의 경우 30% 이상을 지불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관급공사의 혜택이 원청업체인 대형 건설업체에게만 돌아가고 하도급업체와 그 하위 단계의 업체에겐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는 점이다.

원청업체의 경우 정부 발주처로부터 한 달 혹은 석 달에 한 번씩 기성(旣成·공사 진척도)에 맞춰 공사비를 지급받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업체는 원청업체가 돈을 받고 난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공사 대금을 받는다. 또 장비·자재·인력을 제공하는 '말단' 업체나 근로자들은 그로부터 보름 혹은 한 달이 지나서야 하도급업체로부터 일한 대가를 받고 있다. 건설 현장에선 공사 대금이 나올 때까지 중장비 대여료와 노임은 물론 못 한 개까지 건재상에서 외상으로 쓰는 게 관행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하도급업체가 부도나면 중장비 사업자나 근로자의 경우 최소 두 달치의 공사비나 노임 등을 떼이게 된다. 공사 현장 근처의 식당 피해가 속출하고 근로자들이 묵었던 여관도 피해를 입는다.

보통 업계에서 '쓰메끼리'라고 불리는 이 유보 임금 관행은 관급 공사나 민간 공사에서 똑같이 통용되고 있다. 임금 유보 기간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은 특수공정 분야를 제외하고 법적으로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건설 현장에 재하도급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발주처-원수급자(원청)-하수급자(하도급)-재하도급-근로자나 개인사업자'로 이어지는 구조로 각 단계에서 돈이 며칠씩 머물다 보니 공사비가 발주처에서 현장 근로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원청업체는 하도급업체에 보름 이내에 공사 대금을 주도록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만 평균 27.5일이 걸린다는 게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조사 결과였다. 또 전국건설노동조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들의 임금 유보 기간은 평균 32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건설기계협회 관계자는 "일부 하도급업체 중에는 전화기 한 대 놓고 원청과 재하도급업체를 연결만 시켜주는 회사도 있다. 이런 회사들이 고의 부도를 낼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서 "복잡한 하도급 구조를 단순화하고, 원청업체에서 개인사업자에게 대금이 바로 지급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 예산을 절감하고 건설업계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2001년 도입한 최저가낙찰제가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되는 것도 건설 현장 말단 사업자나 근로자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입찰 경쟁이 심해져 낙찰률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대형 건설업체들은 '을' 관계에 있는 하도급업체에 원가 부담을 떠넘기고, 하도급업체는 다시 노무비 삭감 등의 수단을 최우선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 현장의 도급 관행은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세업체가 많은 우리 건설업체들이 경기에 민감해 부도가 잦다"면서 "개인 사업자와 근로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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