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42120.html?_fr=mt2


북한판 영도다리 ‘압록강 철교’는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등록 :2020-04-27 05:59 수정 :2020-04-27 10:13


[박상준의 과거창]

부산보다 먼저 생긴 ‘90도 도는 다리’

한국전쟁때 미군 폭격에 교각 끊겨

지금은 북한쪽 구경하는 전망대로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상판을 돌린 일제강점기의 압록강 철교. 서울SF아카이브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상판을 돌린 일제강점기의 압록강 철교. 서울SF아카이브


부산의 영도대교, 속칭 영도다리는 도개교로 유명하다. 배가 지나갈 수 있게 다리의 한쪽 부분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도대교가 도개교로서 제 모습을 찾은 것은 2013년부터이고, 그 전까지는 47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는 다리였다.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은 많았던 반면에 선박 통과량이 적어서 1966년부터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엔 많게는 하루에 일곱 번이나 들어 올릴 정도로 해상 교통량이 많았다. 당연히 부산의 명물이 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특히 한국전쟁 때 피난민 가족들이 흩어지면서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고 약속한 경우가 많아 여러모로 애환이 깃든 부산 최고의 랜드마크였다.


영도대교처럼 교간 일부나 전부를 움직여서 배가 지나갈 수 있게 공간을 터주는 다리를 가동교라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 최초의 가동교는 영도다리보다 앞서 1911년에 세워진 압록강 철교이다. 경의선 철도가 신의주에서 중국 단둥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구간이다.


압록강 철교는 배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네 번째 교각을 선회식으로 만들었다. 즉 교각 위의 다리 상판 부분이 옆으로 90도 돌아가서 뱃길을 내주는 식이다. 다리가 단선 철로 하나만 가설된 것이어서 가동교로 만들기가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만주와의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그 옆에 복선 철교가 1943년에 새롭게 건설되었다. 나중에 만들어진 다리는 가동교가 아니다.


 압록강 철교는 그 뒤로 수난의 역사를 겪는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두 다리가 모두 끊어졌으며, 그 뒤에 중국에서 복선 철교만 다시 이었다. 선회식으로 지어졌던 원래의 단선 철교는 끊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오늘날 중국의 관광지가 되었다. 한국의 관광객들도 단둥에서 이 압록강 단선 철교를 가 볼 수 있으며, 끊어진 구간 끝까지 걸어가 북한 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전망대로 조성이 되어 있다.


오늘날 압록강 철교는 복선 철로 중 하나를 걷어내고 자동차 도로가 나 있다. 이 다리를 통해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물자 수송이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져서 북한으로서는 젖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커다란 비중을 지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조중친선다리(조중우의교)라고 부르며, 중국에서도 중조우의교라는 명칭을 쓴다. 이 다리로 직결되는 신의주역도 북한에서는 신의주청년역으로 이름을 고쳤다.


압록강 철교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기지만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발한 기차가 유라시아를 횡단하여 유럽까지 연결될 경우, 바로 이 다리를 지나 중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다리의 도로 역시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1번 국도와 직결되며 더 크게는 아시아 고속도로 1호선의 일부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최초의 국도로 지정된 1번 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900km 가까운 도로이다.


한편 아시아 고속도로 1호선은 일본의 도쿄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대한해협은 카페리로 통과) 중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미얀마-인도 등을 지나 터키 끝 불가리아와의 국경까지 도달하는 장장 2만710㎞의 구간으로 불가리아부터는 유럽 고속도로와 연결되어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갈 수 있다. 1959년에 유엔(UN)에서 처음 시작한 아시아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현대의 실크로드’를 표방하며 총 32개국을 지나는 8개 노선으로 계획되어 지금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 끝에 각각 가동교로 처음 탄생했던 두 다리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이들이 끊어진 육지의 길을 잇는 한편 물길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생각들이 조화롭게 교차하며 상생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원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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