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토성

청호리토성


동북아역사넷에 청호동토성 관련해서 독립된 글이 없어서 모았습니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잘 안 보이는 이유도 있구요.



427년 평양 천도 -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6_0010_0020_0010_0020


427년 천도 이후 안학궁을 중심으로 평양의 시가지가 조영되었을 것이다. 당시 시가지의 면모는 일부 유적을 통해 그 편린을 찾아볼 수 있는데, 안학궁 남문 터에서 대동강 나무다리 터 사이의 청호동 일대에서 도시 구획 흔적이 “비교적 규모있게 드러났다”고 한다. 이런 도시 구획 흔적이 임흥동과 안학궁 서편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면모를 밝혀내어야 하겠지만, 일단 안학궁을 중심으로 그 동과 서 및 남쪽 방향에 시가지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도시를 북으로는 대성산성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북풍을 막아주고, 남으로는 대동강이란 해자를 앞에 두고 강변의 청호동 토성, 고방 산성, 청암동 토성이 외곽 방어를 맡았다. 강의 남쪽 지역과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청호동에 나무다리를 세웠다.



고방산성 -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2_0030_0060


성의 서편에 바로 인접하여서는 대동강을 가로질러 강북(현재의 평양 대성구역 청호동)과 강남(평양 사동구역 휴암동)을 연결하던 나무다리가 발견된 바 있다. 고방산성은 고구려 도성의 안위를 좌우하는 대동강의 강안을 지키는 강변 요새였던 것이다.



평양지역 고구려성들의 축조시기를 통하여 본 안학궁성의 축조시기 -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6_0020_0020_0040_0020


343년의 동황성 위치를 청호동토성과 고방산성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343년에 왕이 동황성으로 옮겨갈 당시 평양성은 청암동토성이기 때문이다. 동황성이 평양성 동쪽에 있는 황성이라는데 대해서는 이미 논의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논하지 않는다.


당시 평양성의 위치가 청암동토성이라고 볼 때 그 동쪽에는 현재 청호동토성과 고방산성 밖에 없으므로 이 성들을 343년의 동황성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동황성이 평지성과 산성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세기 중엽 평양을 중요 거점으로 하는 고구려의 남방진출은 부수도인 평양의 지위를 한층 높일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청암동토성 안의 협소한 왕궁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기의 높은 지위에 맞는 위엄있는 왕궁성과 튼튼한 방어성인 산성으로 이루어지는 황성을 자연지리적 조건이 유리한 청호동 일대에 쌓았다고 보여진다.


청호동토성은 현재 임원동, 고산동, 청호동 일대를 포괄하는 평지대의 동쪽 고방산성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북쪽이 약간 높으며 둘레가 약 1.2km되는 네모난 성이었다. 성벽은 이미 전에 없어지고 빈터만 남아있는데, 북쪽 둔덕진 부분이 성벽이 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성안의 중심부분에서는 고구려 시기 원형 기초자리가 여러 개 알려졌고 여기에서는 붉은색 노끈무늬 암키와와 붉은색 수키와 막새 등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청호동토성 안에 고구려 시기 왕궁과 같은 큰 건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방산성은 청호동토성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그리 높지 않은 산에 있다. 고방산성은 둘레가 약 3km 정도되는 그리 크지 않은 성이지만 성 방어에 매우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성의 남쪽과 동남쪽으로는 대동강이 감돌아 흐르면서 절벽을 이루었고 북쪽과 서쪽은 성밖으로 급경사이다. 성안은 작은 2개의 골짜기가 서남쪽으로 나있다. 그러므로 성은 동·남·북쪽이 산릉선으로 막혀있고 서남쪽만이 평지와 연결된 고구려 시기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이다. 성벽은 오랜 세월이 흘렀으므로 허물어져 대성산성과 같이 약간의 돌무지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다(고방산성과 청호동토성은 이미 전에 많이 파괴되어 있었으므로 그 어느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성안에서는 돌절구, 홍예석(궁륭식 성문의 윗천장돌) 하나가 발견되었고 고구려 시기의 기와편들을 찾지 못하였다. 고방산성의 서남쪽 평지부분에 남문이 있었을 것인데 여기서는 청호동토성이 한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청호동토성과 고방산성은 상호 연관된 성이며 이 두 성은 다같이 343년에 평지성인 왕궁성과 방어성인 산성으로 구성된 동황성으로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양일대 고구려성들의 연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청암동토성을 247년의 평양성으로, 청호동토성과 고방산성을 343년의 동황성으로 본다면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은 427년의 평양성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대성산성과 안학궁성이 고구려 시기 하나의 수도성 체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고구려는 586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기 이전까지 왕궁성과 수도 방위성을 분리하여 쌓았다. 환인의 하고성자와 오녀산성, 집안의 통구성과 산성자산성, 평양의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오녀산성, 산성자산성, 대성산성은 모두 방어력이 매우 높은 산성들이고 하고성자, 국내성, 안학궁성은 모두 네모진 평지성들이다.



Ⅲ 안학궁의 위치와 환경 -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6_0010_0030


* 청호리토성 = 청호동토성

[그림 3] 안학궁과 주변 주요 유적의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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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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