츨차 :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ku.d_0001_0070_0040_0010&viewType=l 


* 그림은 https://bit.ly/2VIFPKU 여기에서 가져왔습니다. "고이산성; 북관산성(高爾山城; 北關山城) - 동북아역사넷"의 상단좌측 "이미지"에서는 10개밖에 안 보일 겁니다. 더 보시려면 "도표자료실"에서 "고이산성"을 검색하시면 다 보실 수 있습니다. --> 글 관련 고이산성 그림 : https://bit.ly/2VIFPKU



고이산성 부속시설


고이산성 평면도



1. 남


동성 남문(東城 南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010 


출토지 : 동성 골짜기 남쪽 입구(東城 山谷 南側 入口)


성의 정문임. 남문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북토문자(北土門子)’라고 부르고 있음(徐家國·孫力, 1987).


무순~철령 도로가 통과하고 있는데, 1963년 조사 때의 도로 폭은 9.5m였음(撫順市文物工作隊, 1964). 옛 도로를 활용한 것임.


1963년 조사 때, 동서 양측에 10m 높이의 흙더미가 있었고, 다져진 층도 볼 수 있었는데, 층의 두께는 약 10㎝였다고 함. 서측 흙더미에서 남쪽 26m 떨어진 지점에 또 하나의 흙더미가 있는데, 높이는 5m이고, 역시 다져져 있었다고 함. 동측 성벽과 연결되어 호형(弧形)의 옹성문을 이루었다고 추정됨(撫順市文物工作隊, 1964).


문지 양측의 익장(翼墙)으로 인해 함입형 ‘U’자 옹성을 이루고 있는데(溫秀榮·張波, 1996; 王綿厚, 2002; 魏存城, 2002), 적군이 남위성(南衛城)을 돌파하여 동성의 남문에 도착했을 때 양쪽에서 협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음(徐家國·孫力, 1987).


무순 고이산성 남문지 부근 지형도



수구문(水口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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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2 점 

 

구조특징


동성 남문 서측에 홍수가 났을 때 물을 흘러 보낼 수 있는 배수구와 수문이 있음. 배수구는 성 안쪽에 있음. 도랑의 양측은 모두 큰 돌을 이용해서 세심하게 쌓았음. 수문이 있는 곳에는 말뚝 7개를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박아 난간를 이루게 하였는데, 수문을 통해 성 안으로 잠입하려는 침입자를 막고자 한 것임.


발굴하면서 나온 말뚝 한 근은 남은 길이가 약 230㎝이고, 직경이 약 20㎝이며, 가장자리는 다능형(多棱形)으로 다듬었고, 윗면에는 주홍색의 도료(涂料)가 남아 있음. 말뚝의 재질은 이목(梨木)으로 감정되고 있음. 발견 당시 전부 수중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같이 견고함.


유물정보 : 말뚝 1점




2. 동


동성 동문지(東城 東門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030


출토지 : 동벽 가운데 부분(東壁 中央部)

조사내용 : 1940년, 문지 중앙에 석단(石段) 3단이 있었다고 함.



구조특징


지세가 낮고 평평함. 작은 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상황기영자촌(上黃旗營子村)으로 갈 수 있음.


1940년 조사 때, 문지 중앙에 석단(石段) 3단이 있었다고 함. 석단의 연석(緣石)는 상당히 크고, 내부에는 3~4촌각(寸角)의 비교적 작은 깬돌을 채웠음. 1단에서 2단을 쌓을 때, 2단의 가장자리는 안으로 들어가 있고 혹은 말발굽형을 이루고 있는데, 인위적인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는 불분명함. 남측 성벽 위에는 초석이 있고, 그 위로 직립하는 기와 6점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 기와는 모두 흑색임. 그 위로는 적색기와가 흩어져 있었음. 암키와를 깨뜨려서 수키와를 대용한 것도 있음. 처마 끝 쪽은 흑색 기와를 쓰고 지붕 용마루 쪽으로는 적색기와를 썼던 것으로 추정됨. 초석 위에는 9촌 정도의 흙이 있음. 동문 남측 벽은 상하 2단으로 되어 있음. 하단의 석단(石垣)의 길이는 약 7척임. 상단 석단의 길이는 8척 정도임. 하단의 석단은 높이가 6척 정도에서 끝나고, 상단 석단 상면은 폭이 3척 정도의 평탄면이 됨. 기와들은 상단의 석단에서 약간 북쪽에서 발견되고 있고, 평기와를 제거하면 상단의 돌담이 나옴. 처마 끝을 덮었던 평기와류가 그대로 처마에서 흘러내려 직립했고, 그 위로 나중에 기와가 퇴적된 것으로 추정됨. 만약 여기에 건물이 있었다면 문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동문지 동벽 바깥에서 작은 자갈이 나왔는데, 벽의 중간에 있음. 옹성의 흔적일 수도 있음. 석축 내측에는 문지의 초석이 있었을 것임(三上次男·田村晃一, 1993).


1963년 조사 때에는 6m 너비의 활구가 남아 있었고, 양측 성벽의 높이는 6m 정도였음. 해방 전에는 큰 석조(石條)로 수축한 돌계단과 문타(門垜)가 있었다고 함.


1983~1985년 조사 당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동문지 부근의 외벽 양측은 모두 석조로 쌓아서 이루어진 계단형태이고, 각 층 길이는 약 20m라고 함(徐家國·孫力, 1987).


동성 동문지(Ⅲ구역)는 현재 자연적인 활구임. 활구의 외측 남단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반원호형(半圓弧形)의 뉴만(扭弯)이 있는데, 토축흔적이 매우 명확함.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활구는 당시의 출입구임. 이러한 모습은 남문의 정황과도 일치함(徐家國·孫力, 1987).


동문지에서는 철제 화살촉, 와당, 태평통보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서북방에서 많이 출토됨.


 

유물정보

기와(瓦)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와당(瓦當) 1점, 태평통보(太平通寶) 1점


무순 고이산성 동문지 부근 지형도




3. 북



동성 북문(東城 北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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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지 : 북벽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

 

1963 5m 너비의 활구(豁口)만 남아 있을 뿐 문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고 함.


문지의 지세는 비교적 높은 편임. 활구만 남아있었음.


무순 고이산성 동성 북벽 단면도




4. 서



요망대(각대)(瞭望臺(角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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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2 점 

 

구조특징


전체 산성의 외위벽(外圍墻)에는 12개의 돌출된 감제고지가 있는데, 대부분 모서리를 도는 지점(轉角處) 혹은 다른 중요 지점임(溫秀榮·張波는 12개의 봉화대가 있다고 기록함(溫秀榮·張波, 1996)). 그 가운데 해발 230m인 장군봉(將軍峰)이 중심이었는데, 당시의 지휘 혹은 감시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음. 감제고지에는 모두 인공적으로 쌓은 흙더미가 있음.


장군봉 정상부에는 다져진 흙더미가 있는데, 높이는 약 15m, 다져진 층의 두께는 6㎝임. 승문기와편과 명대 벽돌과 기와가 섞여 있었는데, 명대까지 돈대(墩臺)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음(撫順市文物工作隊, 1964).


장군봉 요망대 동쪽에 있는 요망대는 큰 돌을 쌓은 후, 다시 백회로 틈을 메워 기초를 만들었음.


서성 서벽 위의 요망대의 퇴토(堆土)에서 전한(前漢)시기의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는데, 산성 내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임.

 

유물정보 : 토기편(土器片) 1점



회곽도(廻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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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3 점 


서성 서벽 내측에 너비가 3m 정도인 평탄한 노면이 있고, 동성 동벽 내측에서 유사한 흔적이 있는데, 당시 순찰 혹은 군사물자를 운송했던 회곽도로 추정됨(徐家國·孫力, 1987).



참호(塹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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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3 점 


성 바깥 서남에는 흙으로 쌓은 여러 줄기의 참호가 있는데, 산성 외벽과 연접해 있음.





5. 성안


동성 서문(東城 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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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지 : 서벽 중간(西壁 中間)

 

1944년 옹성의 서벽이 발굴됨. 옹성은 바깥쪽의 가파른 지형으로 인한 제약으로 안쪽에 설치하였음. 옹성을 절개해 보았을 때, 상부에는 석축이 없었음. 토색이 변하고 생땅처럼 된 곳이 옹성벽임.


서문 북부는 지산(地山)이 얕음. 트렌치에서 못 1개가 발견됨.


유물정보 : 못(釘) 1점


암문(暗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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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 : 4 점 

서벽에는 작은 암문이 있는데, 서성(西城)과 연결됨(徐家國·孫力, 1987).



성가퀴(女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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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사항 : 3 점 


동·서 두 성의 경계성벽 위에 쌓여진 흙을 걷어내면서, 너비가 60㎝ 정도인 자연석 퇴적지가 발견되었는데, 2m 이어지다가 50㎝ 정도 끊어짐을 반복하고 있음. 아마도 동·서성의 경계성벽 위에 있던 성가퀴로 추정됨.



우물(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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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주요 성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함(溫秀榮·張波, 1996).



샘(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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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조사 때, 동성 남문 서쪽으로 50~60m 떨어진 지점에 샘 두 곳이 있었고, 샘이 흐르면서 시내를 이루었다고 함. 한편 시내 서측 가까이에 있는 낭떠러지에 장방형의 조석(條石)으로 쌓은 석벽이 있었다고 하나, 당시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함. 이 지점에 수갑문(水匣門)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음(撫順市文物工作隊, 1964).


1979년·1983년 조사 때, 동성 안에는 샘 세 곳이 있음. 한 곳은 성 북부에 있고 다른 곳은 동성 동문 서쪽에 있는데, 무철(撫鐵)도로 가까이에 있음. 동문 서쪽의 우물 한 개는 아직까지 마르지 않아서 부근의 거주민이 물을 길러 사용하고 있음. 이 우물 동쪽에서 남쪽으로 10여m 치우친 지점의 경작지에서 커다란 구부좌(龜趺座)가 나왔음.


유물정보 : 구부좌(龜趺座) 1점




6. 건물지


고이산성 지형도



중앙거주지(中央住居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10

 

형태사항 : 동서 길이 약 11m, 남북 너비 약 8m 2 점 

출토지 : 동성 한복판의 대지, 국도 서쪽 옆(東城 中央 臺地, 國道 西側)


구조특징


발굴 당시 북쪽은 2척 5촌, 동쪽은 8촌, 남쪽은 1척 5촌, 서쪽은 1척 정도 매몰되어 있었음.


남측에 2개의 커다란 돌이 있는데 이것이 전체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 그 외에 커다란 돌은 발견되지 않았음. 따라서 이 돌을 보통 의미의 초석으로 인정할지는 의문임.


동남쪽을 제외한 네 모서리와 북부 중앙에 돌이 놓여 있는데, 초석으로 볼 수 있음. 초석은 푸른색의 섬록암임. 초석의 배치로 볼 때, 건물지는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음.


내부 바닥에는 4~5촌각(寸角)의 작은 돌이 채워져 있음.


바깥쪽 양측에 3~4촌각의 돌로 쌓은 구(溝)가 있음. 먼저 북벽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꺾어 동벽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고, 중간에서 다시 동쪽으로 꺾어 건물 바깥으로 나가는데, 그 끝에는 상당히 큰 돌이 있음. 아마도 온돌의 구로 보임. 온돌의 아궁이는 분명치 않음. 동남쪽 구석이 들어간 것을 볼 때, 그 근처에 아궁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으나, 실측도를 볼 때 주거의 서북부에 있어야 함.


서면과 북면의 구 바깥에는 일렬의 돌이 있는데, 벽의 아랫돌로 추정됨.


가옥의 외측으로 생각되는 곳에 베란다와 같은 것이 있는데, 옥외에 무언가를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임. 동부 베란다는 외측을 큰 돌로 에워싸고, 중앙은 4~5촌각의 작은 돌을 깔았음. 돌은 2단으로 조성되어 있음.


기와는 처마 끝 지점에 많고 중앙에는 적음. 암키와는 많고 수키와는 적음. 아울러 와당 파편 4개도 출토됨. 철제 화살촉은 좌실(주거지 내 서쪽부분)에서 많이 출토되었음. 철제 찰갑편은 서남모서리에서 많이 출토되었음. 북서쪽에서는 토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가장자리에 토기류를 많이 두었던 것으로 보임. 요(遼)·금(金)시기의 호도 출토됨. 기와편, 토기편, 철제 화살촉, 철제 찰갑편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무인(武人)의 가옥으로 추정됨(東潮·田中俊明, 1995).

 

유물정보


암키와(板瓦) 1점, 수키와(筒瓦) 1점, 와당편(瓦當片) 4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철제 찰갑편(鐵札甲片) 1점, 토기(土器) 1점, 호(壺) 1점


무순 고이산성 중앙주거지 평면도


무순 고이산성 중앙주거지 온돌 평면도



중앙대지의 주거지(E지점)(中央臺地 住居址(E地点))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20


형태사항2 점 

출토지 : 성내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 동쪽의 약간 높은 대지

 

구조특징


중앙 대지 황무지에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지상에 노출되어 있던 돌(발굴을 해보니 초석의 일부였음)을 기점으로 1m 폭의 트렌치를 동서방향으로 넣은 결과, 건축물의 유구로 생각되는 돌무지가 보였음.


건물지가 위치한 곳은 전체적으로 경사지이지만, 한켠으로는 평지를 이루고 있고, 남쪽은 혼하를 볼 수 있는 지점임.


민가 뒤쪽 낭떠러지에 많은 고구려의 적색 수막새가 출토되었는데, 포함층(包含層)의 깊이는 3~4척임. 이 평탄지에는 여러 기의 현대 무덤이 조영되고 있는데, 그 묘지 동측의 남북방향으로 넣은 트렌치에서 3개의 초석(북쪽으로부터 Ⅰ,Ⅱ,Ⅲ호 초석)이 발견됨. 또한 Ⅲ호 초석 바로 옆에서 동서방향으로 뻗은 할석열(割石列)이 발견되었는데, 주거지 벽의 기초로 추정됨. 포함층에서 보였던 적색 와당과 동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최초 기점이었던 바위 옆(X지점)에서는 철제 갑옷, 철제 화살촉, 철제 못 등이 발견되었음. 절벽을 따라 기와류가 많이 있음. Ⅲ호 초석 근처에서 개원통보가 발견됨.


 

유물정보


기와편(瓦片) 1점, 와당(瓦當) 1점, 개원통보(開元通寶) 1점, 철제 갑옷(鐵甲)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철제 못(鐵釘) 1점


무순 고이산성 E지점 건물지 평면도


무순 고이산성 E지점 부근 지형도



서문내 거주지1 중앙건물지(西門內 住居址1 中央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30 


형태사항 : 동서 너비 4.5m, 남북 길이 6.1m 26 점 

출토지 : 서문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곳 바로 북측 능선 경사면

 


구조특징

 

동쪽과 남쪽이 낮은 완사면을 계단형태로 조성하여 부지로 사용함. 부지의 남측에는 2단의 석단(石垣), 북측에는 3단의 석단이 각각 동서로 뻗어있음. 건물지는 3개소로 나눌 수 있는데, 동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중앙에 네모난 형태의 건물 벽의 기초가 발견됨. 그 기초의 폭은 약 45㎝, 깊이는 17㎝임. 작은 돌을 깔았던 것으로 추정됨.


서벽의 중앙에 80㎝ 정도 길이에 걸쳐 기초가 결여된 부분이 있고, 북벽의 중앙에도 69㎝ 정도 길이에 걸쳐 기초가 결여되어 있는데, 통로로 추정됨.


남변은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남벽 동남모서리에서 남쪽으로 2줄의 석렬이 뻗어 있음. 석렬의 사이는 60㎝ 정도인데, 그 사이에 있는 흙이 탄 것으로 보아, 구들(炕)로 보임. 북동모서리에서 동쪽으로 폭 60㎝ 정도의 돌이 깔린 유구가 있음. 구들과 관련있어 보이기는 하나 자세한 성격은 알 수 없음. 기초 동벽 바깥 남북으로 각각 2개씩 배열된 돌들, 동측 비탈의 계단이 무너져서 나온 듯한 돌들도 이 건물과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이 있음.


무순 고이산성 서문내 주거지 부근 지형도


무순 고이산성 서문내 주거지 북측 석단


무순 고이산성 서문내 주거지 평면도



서문내 거주지2 중앙건물지의 남측건물지(西門內 住居址2 中央建物址的 南側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40


형태사항 : 동서 길이 7m, 남북 너비 4.5m 4 점 

유물정보 : 기와(瓦) 1점


구조특징


동쪽과 남쪽이 낮은 완사면을 계단형태로 조성하여 부지로 사용함. 부지의 남측에는 2단의 석단(石垣), 북측에는 3단의 석단이 각각 동서로 뻗어있음. 건물지는 3개소로 나눌 수 있는데, 동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중앙건물지 남측의 타원형의 유적지는 중앙건물지와 거의 같은 구조인데, 위치로 볼 때 동시기의 유적지로 추정됨.


동측에서 폭 80㎝ 정도가 끊어져 있는데, 통로로 볼 수 있음. 깬돌을 이용해서 폭 80~90㎝ 정도의 띠모양의 담장을 타원형으로 둘렀음.


타원형 담장 내부 빈 땅(空地)의 중앙에 폭 80㎝, 길이 4m의 토대(土臺)가 있음. 토대 내부에는 기와가 채워져 있음. 토대 사이의 빈 땅에도 기와가 많이 흩어져 있음. 이 건물자체가 기와를 덮은 건물로 보기 어렵고, 창고로 추정됨.


무순 고이산성 서문내 주거지 기와 출토상황



서문내 거주지3 중앙건물지의 북측건물지(西門內 住居址3 中央建物址的 北側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50

 

출토지 : 서문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곳 바로 북측 능선 경사면, 중앙건물지 북측(中央建物址 北側)

유물정보 : 기와(瓦) 1점

 

 

구조특징


동쪽과 남쪽이 낮은 완사면을 계단형태로 조성하여 부지로 사용함. 부지의 남측에는 2단의 석단(石垣), 북측에는 3단의 석단이 각각 동서로 뻗어있음. 건물지는 3개소로 나눌 수 있는데, 동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중앙건물지 북측에 50㎝ 정도 높은 평대(平臺)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 옆 평대와의 경계에는 기와와 깬돌로 축조된 석단(石垣)이 있음. 이 석단과 건물과의 사이 3m의 공간에는 황색토로 단단하게 다졌음. 다져진 부분 남단에 숯이 두껍게 퇴적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불에 그을린 적색기와가 밀집되어 있었는데, 82㎝X70㎝ 정도의 크기임. 다져진 곳 동쪽에는 적갈색의 역토(礫土)로 구축된 계단 같은 것이 돌담까지 걸쳐 있음.


부엌으로 추정됨.




동성 서쪽 기슭 고대건물지 1 건물지(東城 西邊 山麓 高臺建物址1 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60 


형태사항 : 고대 길이 16m, 너비 14m 1 점 

출토지 : 동성 서쪽 기슭(東城 西邊 山麓)

유물정보 : 철못(鐵釘)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구조특징


동성 서쪽 기슭에 인공적으로 수축한 고대가 구축되어 있음. 동문과 마주하면서 왼쪽으로 북문을 볼 수 있음.


고대를 파토하면 기암이 드러남.


철제 못과 철제 화살촉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고대 위에는 나무로 축조한 높은 건축물이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전투시 전체 성에 대한 지휘와 감시을 위한 건축물로 추정됨(徐家國·孫力, 1987; 魏存城, 2011). 현재는 붕괴 혹은 전화(戰火)로 남아 있지 않고, 그 아래에 부식된 철제 구조재만이 남아 있음.



동성 서쪽 기슭 고대건물지 2 축대(東城 西邊 山麓 高臺建物址2 護坡墻)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70


형태사항 : 길이 15.5㎝, 너비 20~80㎝, 높이 20~30㎝ 

출토지 : 고대 동부(高臺 東部)

유물정보 : 기와편(瓦片) 1점

 

구조특징

 

남북방향의 축대가 있음. 축대는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단층으로 쌓아서 만들었고, 돌 사이의 틈은 크기가 같지 않은 깨진 기와편으로 메웠음. 축대의 남쪽 구간 성벽 위에 간혹 기와편이 세워서 끼워져 있는데, 기와 배면은 밖을 향하고 있고 가지런함.


축대는 남단에서 서쪽방향으로 꺾이고, 작은 자갈길과 연결됨. 축대 남단 약 2m의 벽의 동측에는 직경이 1m에 가까운 대형 자연석과 자갈로 쌓은 원형의 돌출부가 있는데, 그 높이는 축대와 같음. 용도는 알 수 없음(徐家國·孫力, 1987).



동성 서쪽 기슭 고대건물지 3 수조(東城 西邊 山麓 高臺建物址3 水槽)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80


형태사항 : 길이 벽돌 2개반, 너비 벽돌 2개 

출토지 : 고대 동측 북편 FG83T3피트 안(高臺 東側 北邊 FG83T3 pit 內)

유물정보 : 전돌(塼)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철제 찰갑편(鐵札甲片) 1점

 

구조특징


장방형의 회색 승문 벽돌로 주위를 쌓은 장방형의 수조가 있음. 수조의 입구는 서북방향에 있음.


회색승문벽돌은 회백색이고, 소성온도는 높으며, 질은 순수함. 벽돌 한 면에는 직선에 가까운 승문이 세로방향으로 긴밀하게 배열되어 있음. 벽돌의 크기는 길이 32(33)㎝, 너비 15.5(16)㎝, 높이 5㎝임.


조(槽)의 바닥 정가운데에는 벽돌 4개를 동서방향으로 가로로 뉘웠는데, 승문이 있는 면을 일률적으로 아래로 하였음. 그리고 네 주위는 벽돌을 가로뱡향으로 둘러 쌓았음. 길이는 벽돌 2개반, 너비는 벽돌 2개임. 조의 개구(開口)는 벽돌 한개 길이임.


조 안쪽 바닥에서 철제 화살촉 1점과 철제 찰갑편 1편이 출토되었음.



동성 서쪽 기슭 고대건물지 4 배수구(東城 西邊 山麓 高臺建物址4 排水口)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190 


형태사항 : 전체 배수시설의 길이 약 20m 

출토지 : 수조의 개구 북쪽방향(水槽 開口 北側)

유물정보 : 기와(瓦) 1점

 

구조특징


정연한 기와를 깔아서 만든 노천 배수로가 있음. 기와의 볼록 튀어나온 배면을 아래로 하였음.


배수도 기와의 배열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음. 먼저 제1단은 두 개의 기와를 가로방향으로 배열하면서 서로 겹치게 하였는데, 기와의 가장자리의 겹쳐진 부분은 비교적 큼. 제2단은 2개의 기와를 가로방향으로 연결하면서 겹쳐지는 부분이 없게 하였음. 제3단은 한 개의 기와로 차례대로 연결하였음.


배수로 끝부분에서 다시 두 개의 홍색승문기와와 두 개의 회색 기와로 구성된 단열 분지(單列 分支)가 나타나는데, 배수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자 함.


배수도에 있는 기와는 분지의 홍색 승문기와 2개를 제외하고는 일률적으로 회갈색 기와인데, 태토는 모두 옅은 회색이고, 소성온도는 높지 않으며, 색깔도 고르지 않음. 안쪽에는 세밀한 포문이 있는데, 배수도에서 포문이 위를 향하고 있음. 기와는 길이 38㎝, 너비 26(21)㎝, 높이2.4㎝임. 고구려유적에서 보이는 홍색 승문기와의 경우 일반적으로 길이는 46.7㎝, 너비 32(29.5)㎝, 높이 2.2㎝임.


배수시설 서측에는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벽돌 5개가 일정하는 않은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높이는 배수도와 비슷함. 발 디딤용으로 추정됨. 아울러 두 벽돌 사이에서는 니질의 회색 분(盆)이 출토되었음(徐家國·孫力, 1987).



동성 서쪽 기슭 고대건물지 5 자갈길(東城 西邊 山麓 高臺建物址5 碎石路)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200  


형태사항 : 자갈길의 너비 약 60~80㎝ 

출토지 : 고대 남면(高臺 南面)

 

구조특징


수직으로 교차하는 여러 갈래의 작은 자갈길이 있는데, 그 사이는 서로 이어지지 않음.


자갈길의 수축과정을 보면, 먼저 지표에 깨진 기와편 혹은 벽돌을 놓아 장방형의 구역을 설정하고, 그 사이로는 작은 자갈돌로 메웠음. 이러한 방식으로 축조되면서, 원래 지표보다 약간 높게 되었고, 어척배형(魚脊背形)을 이루고 있음.


일부 길에서는 깨진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조상(条狀)으로 쌓여 있고, 정연한 기와는 보이지 않음. 기와의 색깔과 형태 등은 가지각색임. 이러한 기와편 외에 유정문(乳釘紋) 와당편도 일부 출토되었음. 기와 및 와당의 파편들은 모두 깨뜨려진 후에 길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사용된 것들로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됨.


자갈길 남쪽에는 벽돌로 만들어진 주초가 동서방향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음. 이로 미루어, 자갈길 위에 와정(瓦頂)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일종의 회랑건물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이러한 건축물의 성격은 당시 성을 방어하는 사람들의 거주 및 생활장소와 관련이 있음(陳大爲, 1995).


자갈길 서면에는 화층암석(火層巖石)이 깔아진 남북방향의 돌길이 있음. 일반적으로 3개의 큰 돌을 평평하게 깔아서 장관(墙寬)를 조성했음. 돌 사이의 틈은 비교적 작은데 깬돌 혹은 기와편으로 틈을 메웠음. 너비는 40~55㎝로 같지 않음. 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경사져 있음. 또한 돌은 1층으로 깔아져 있는데, 윗면은 평평함.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성의 기단부가 아닌 돌길로 볼 수 있는 것임.


고대 동측에도 돌길이 있음. 그 구조는 전자와 유사하지만, 그 사이에 결구(缺口) 두 곳이 있음.




동·서성의 경계 성벽 동쪽 가장 위쪽의 대지에 위치한 건물지(東·西城的 境界城壁 東側 最高臺地 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210


형태사항 : 각 건물지의 면적 10㎡ 내 

유물정보 : 기와편(瓦片) 1점, 돌절구(石臼) 1점, 옹(瓮) 1점


구조특징


동·서 두 성의 경계지점 가장 위쪽에 위치한 대지 동쪽에 많은 자연석들이 노출되어 있는데, 일부는 간단한 가공이 이루어졌음. 돌들은 소형 건물지들의 기초로 추정됨.


각 건물지는 방형 혹은 장방형임.


서․북 양측에는 곡척형(曲尺形)의 난방시설이 있음. 중국 동북 일부지역에서는 ‘지용(地龍)’이라고 부르는데, 돌을 한층 쌓아서 축조함.


FG84T208피트 안 동남모서리에서 실외 원형 아궁이(H1)가 발견됨. 윗면의 직경은 90㎝이고, 바닥 직경은 윗면보다 작으며, 깊이는 35~50㎝임. 아궁이 서쪽 구(口)의 외부에 돌로 주위를 쌓았던 모습이 남아 있음. 아궁이 안의 동북쪽에 20㎝가 넘지 않는 돌이 있음. 원래는 아궁이(灰坑) 상구(上口)에 돌을 놓았고, 이후에 무너져 내렸다고 볼 수 있음. 아궁이 내에는 푸석푸석한 흑색 흙이 가득 차 있었고, 직경이 3~5㎝ 정도의 아직 타지 않은 석탄덩어리가 혼입되어 있었음. 석탄덩어리와 석탄재의 발견사례는 비교적 많은데, 당시에 연로로 석탄을 보편적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줌. 아궁이 내에서는 깨진 기와편을 제외하고 많은 종류와 양의 유물이 발견됨.


유물출토상황을 통해 돌절구와 큰 옹(瓮)으로 구성되는 생활단위를 설정할 수 있음. 커다란 옹을 놓는 방식은 먼저 원형의 구덩이를 판 다음, 그 구덩이 안에 커다란 옹을 세워 묻었고, 옹의 바깥주위에는 자연석을 한 바퀴 둘렀음.



동·서성의 경계 성벽 동쪽 중간대지의 건물지(東·西城的 境界城壁 東側 中間臺地 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220


동·서성의 경계 성벽 동쪽 가장 중간대지 동남모서리는 건물터의 가장자리인데, 가공을 거친 방형의 큰 돌을 직각으로 축조함.



동·서성의 경계 성벽 동쪽 가장 아래에 있는 대지의 건축지(東·西城的 境界城壁 東側 最低臺地 建物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40_0010_0230 


동·서성의 경계 성벽 동쪽 가장 아래에 있는 대지에서 기암을 뚫고 기둥구멍을 만든 건축지가 확인됨. 경사가 있는 지형조건에서 건물지를 구축하고자 할 때는 기암을 깎아 수평면을 만들어서 사람의 실내활동범위를 조성하였음. 실제 동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벽은 일정한 높이를 갖추고 있음.


서벽의 내측 암석에는 원형의 작은 기둥구멍 5개가 뚫어져 있는데, 직경은 10~20㎝임. 남벽 위에도 직경이 50㎝ 정도인 큰 기둥구멍 3개가 뚫어져 있음. 실내에는 10㎝ 정도의 회황색 점토가 깔아져 있었는데, 토질은 견실하고 부드러움.


건축물의 전체구조는 알 수 없지만 건축지에서 발견된 기와편과 토기편으로 볼 때, 고구려시기 건축유적으로 추정됨.


유물정보 : 기와편(瓦片) 1점, 토기편(土器片)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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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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