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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령자 산성 (三道嶺子 山城)


양식 : 토석 혼축 산성

길이 : 잔존 길이 520m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 사하자향(沙河子鄕) 삼도령자촌(三道嶺子村) 대립자산(大砬子山)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산성.



개설


삼도령자 산성은 길림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제2 송화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용담 산성(龍潭山城)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고구려 중후기의 산성이다. 다만 부여(夫餘) 전기의 왕성(王城) 지역인 녹산(鹿山)을 길림시 지역이라고 볼 때 고구려가 차지한 뒤에 세운 성곽이라기보다는 부여인이 왕도의 방어와 관련하여 축조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건립 경위


삼도령자 산성의 수축 연대는 확정하기 어렵다. 문헌 기록과 발굴 조사가 없는 상황에서 송화강을 사이에 두고 용담 산성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의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길림 분지를 부여 전기의 중심지라고 볼 때 분지의 북쪽 입구에 해당하며 송화강을 통제하는 이곳에 군사적 시설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삼도령자 산성은 동단 산성(東團山城)과 마찬가지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이전, 부여인이 왕도의 방어와 관련하여 성곽을 축조하였고, 이를 고구려가 사용한 성곽으로 볼 수 있다.



위치


삼도령자 산성이 위치한 대립자산은 길림시가 자리잡고 있는 길림 분지의 북쪽 입구에 해당하며 동남쪽으로는 산간 분지가 이어지고, 송화강을 사이에 두고 동단 산성·용담 산성과 떨어져 서로 바라보는 형국을 이루는 요충지에 해당한다. 북으로는 송화강에 닿아 있고, 정북방에 개활지의 충적 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서쪽과 서북쪽은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 인근에 길림-장춘(長春) 간 철로와 길림-구참(九站) 도로가 지나가고 이도령자향(二道嶺子鄕) 칠가자촌(七家子村) 서쪽 산과 과정산(鍋頂山)이 약 7.8㎞ 떨어져 있다.



형태


삼도령자대립자산의 서북쪽 비탈에 황토와 쇄석을 함께 다진 토석 혼축(土石混築)으로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L자형을 띠고 있다.


해발 272m의 산 정상부에 토석 혼축으로 축조되었으나, 채석 등으로 유적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남아 있는 둘레 길이는 258m 정도이며 성벽의 남은 높이는 3m 정도이고 정상부의 너비는 1∼1.4m 정도이다. 동서 방향의 성벽은 58m, 남북 방향은 200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의 바깥 면은 수직으로 6m의 높이이고 안쪽 면은 3m 정도이며, 정상부의 너비는 1∼1.2m 정도이다.



현황


산성이 위치한 곳이 길림시 교외의 대규모 채석장 중 하나였던 까닭에 수십년 간 채굴이 이루어져, 현재 산의 동쪽 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로 인해 삼도령자 산성의 원래 형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 성곽의 구조는 용담 산성, 동단 산성과 기본적으로 동일하여 모두 고구려 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성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동단 산성과 송화강 좌우의 양안을 통제하고 용담 산성과 기각의 형세를 이루었다고 추정된다. 이들 간의 소속 관계는 규모로 미루어 삼도령자 산성이 동단 산성과 함께 용담 산성의 위성이었다고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삼도령자 산성은 동단 산성과 함께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승 관계를 보여주는 산성으로, 길림 분지의 북쪽 입구와 송화강을 통제하는 전략적 거점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고구려의 북부 영역과 영역 지배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추후 발굴 조사를 통해 축조 시기가 밝혀진다면, 자료가 부족한 부여사 연구에서 부여 전기 왕성 구역의 구획과 방어 체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哈爾濱出版社, 1994)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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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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