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948

 

[재반론] '독립유공자' 조부는 착오? 최재형 후보님, 이 기사는 뭡니까

최 후보 캠프 해명이 함량 미달인 이유... '가문의 영광' 위한 역사 왜곡, 그냥 넘어갈 일인가

21.08.09 13:14 l 최종 업데이트 21.08.09 13:14 l 김학규(hkkim21)

 

▲  국민의힘에 입당후 대선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제가 쓴 기사 <[단독 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유공자일까?>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폭발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전 감사원장) 공보특보단이 내놓은 해명은 말 그대로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최재형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최재형다움'의 하나인 '정직'도 찾아볼 수 없는, 해명 아닌 해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반박 기사를 쓰는 이유입니다.

 

[관련기사]

[단독 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유공자일까? http://omn.kr/1uoci
[반론] 최재형 후보 측 "조부가 독립유공자라 한 적 없다" http://omn.kr/1ur1v

 

'독립유공자가 됐다'고 주장한 사실은 없다?

 

 제15호(2021. 6. 25)에 실린 '독립유공자' 최병규... 최근 발간된 <미수복강원민보>의 '우리고장 인물열전(10)'에 "최영섭 전 백두산함 함장이 회고하는 선친 최병규 독립유공자"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최영섭의 책 <바다를 품은="품은" 백두산="백두산">에 실린 최병규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바다를></미수복강원민보>

▲ <미수복강원민보> 제15호(2021. 6. 25)에 실린 "독립유공자" 최병규... 최근 발간된 <미수복강원민보>의 "우리고장 인물열전(10)"에 "최영섭 전 백두산함 함장이 회고하는 선친 최병규 독립유공자"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최영섭의 책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 실린 최병규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 ⓒ 미수복강원민보

   

최재형 후보의 아버지 고 최영섭 해군 대령은 자신의 회고록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34쪽)다고 썼습니다.

 

최재형 후보께서는 법률을 전공한 분이니까 잘 아시겠지만,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독립유공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수복강원민보> 제15호 우리고장 인물열전(10)에도 "최영섭 전 백두산함 함장이 회고하는 선친 최병규 독립유공자"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가 실릴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최재형 후보께서는 법관 출신이시니까 한번 여쭙겠습니다. 만약 절도혐의로 구속된 사람이 재판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물건은 훔쳤지만 도둑은 아니다"라면서 무죄를 주장했다면 어떻게 판결하시겠습니까? 설마 "피고인의 해명을 들어보니 도둑이 아니라는 사실이 넉넉히 입증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이렇게 판결을 내리지는 않으시겠죠?

 

이제 "고인의 유족들은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했을 뿐 '독립유공자가 됐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습니다"라는 해명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해명인지 충분히 이해되셨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착오가 있었을 뿐"이다?

 

 중...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의 <바다를 품은 백두산> 중...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 김학규

   

기자가 지적한 기사 내용은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지 않았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할아버지 최병규가 항일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사유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고, 그래서 기사를 내기 전 최재형 후보 측에 '최병규가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만약 받았다면 공적개요를 확인해줄 수 있는지'를 미리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최재형 후보 측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다가 기사가 나간 후에야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고 하면서 기자가 마치 오보를 낸 듯한 황당한 해명을 했습니다.

 

해명의 엉뚱함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부친 최영섭이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고 한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다만, 대통령 표창 사유에 대해 고 최영섭 대령의 착오가 있었다"고 은근슬쩍 별일 아닌 듯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부친 최영섭의 설명이 너무 구체적입니다.

 

독립유공자에 주는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개 등급으로 나뉘어 있고, 건국포장과 대통령표창이 더 있습니다. 최영섭은 아버지 최병규가 건국훈장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일독립운동 공로"는 인정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존재하지도 않고 2002년 당시 상황에도 맞지 않습니다.

 

1920년 일경의 거미줄같은 감시망을 뚫고 일으킨 '3.1 만세운동 1주년 기념투쟁'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구속된 박양순(1903-1972)을 비롯한 23명의 배화여고보 학생들은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1개월여 만에 석방되었음에도 대통령표창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박양순은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이 바뀐 2018년에야 겨우 대통령표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양순은 2019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의 8호실 여감방 동료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최병규의 대통령표창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최재형 후보 측이 뒤늦게 공개한 대통령표창 확인서에는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상기인은 투철한 국가관과 통일애향의 사명감으로 군민회 조직 활성화 강화에 앞장서 왔으며 특히 향토 문화 발굴사업에 참여, 군민지를 발간 군민회 발전에 기여 '정부표창기준' 제16조에 따라 .....

 

일제강점기이던 1942년에 평강군수의 지시를 받아 <평강군지>를 만들었던 아버지 최승현에 이어 1984년에 <평강군지>를 발간한 일을 높이 평가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은 모양입니다만, 공적개요에 '항일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 대목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재형 후보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평강군민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으로 받은 '대통령표창'을 보고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받았다'는 '착오'를 일으킬 만한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 중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조상을 소환한 것은 최재형 후보 자신입니다

 

최재형 후보 공보특보단은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검증과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과거의 조상까지 끌여들여 비정상적 논란을 확대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재형 후보의 조상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최재형 후보 자신이라는 걸 정말 모르시는 건지요.

 

기자는 사실 최재형 후보가 감사원장을 할 때도 그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언론에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고, 아버지는 대한해협전투의 영웅'이라며 '3대에 걸쳐 형성된 품격 있는 집안'으로 계속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면 '미담제조기' 최재형 후보께서 직접 나서거나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수정하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랬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보도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독립운동을 한 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강한 저는 '최재형 후보의 할아버지가 어떤 분일까?'라는 호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보훈처 공훈록'을 자연스럽게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보훈처 공훈록에는 평강 출신의 최병규가 없었습니다. 이게 취재를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기자가 최재형 후보의 집안 내력을 일부러 파헤친 게 아니라, 최재형 후보의 '집안 자랑'이 기자로 하여금 할아버지 최병규를 넘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평강분국장과 친일단체 '유도천명회'의 평강지회장, 평강군 유진면장 등을 지냈던 증조할아버지 최승현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기자는 최재형 후보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이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평강의 유지에 불과한 인물이 중앙일간지에 이렇듯 많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는 말씀 아울러 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집안을 곧추세우는 목적이든 개인의 입신양명이든 '출세를 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던 인물에게 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점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최재형 후보 측은 이를 반박하며 "일제시대 당시 지식인들은 각자 위치에서 고뇌하며 살아왔다. 특정 직위를 가졌다고 해서 친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엉뚱하게 문 대통령의 부친을 소환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최재형다움의 정직'을 포기하고 본질을 회피하면서 진영논리에 기대보려는 어리숙한 정치 행위로 비칠 뿐입니다. '국민통합의 적임자'라는 최재형 후보의 모토마저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역사는 쉽게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  국민의힘 대선 에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6일 오전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앞에서 지지자들로부터 꽃다발을 전해받은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조정훈

  

할아버지 최병규가 춘천고보 시절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맹휴를 조직한 일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퇴학까지 당한 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게 '독립운동'을 했다고 자랑할 만한 일입니까? 또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1938년 이후 만주에 가서 7년간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는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그냥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면 독립운동을 한 것이 됩니까?

 

기자는 최재형 후보의 할아버지 최병규가 면협의원을 두 차례 했고, 도회 개원 때마다 합동으로 신사참배를 반드시 해야 하는 강원도회 의원에 도전했다 떨어지기도 했고, 아버지 회갑연을 알뜰히 치르고 남긴 돈 20원을 국방헌금으로 내기도 했고, 목단강성 해림에서 부가장과 조선인거류민단단장을 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같은 수준의 친일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의 '수준 높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런 인물이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든지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는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어"라든지, "우리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야"라는 식으로 자랑하고 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품격 있는 집안은 역사왜곡을 하지 않습니다. 굳이 집안 자랑도 하지 않습니다. 이제 가문의 영광을 위한 역사왜곡은 없어져야 합니다. 하물며 그런 왜곡에 힘입어 주요한 공직을 맡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집안에게는 '가문의 영광'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게는 큰 불행이 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애국'을 강조하고, 가족 행사에서조차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분이 이 명약관화한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는 쉽게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역사를 두려워하면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최재형 후보께서도 동참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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