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01749 

"취직할 곳 없었는데 MB 덕에 영화감독 됐다"
[인터뷰] 문화예술인 셋, MB정부 4년을 이야기하다
12.02.25 14:28 ㅣ최종 업데이트 12.02.25 18:19  강혜란 (zolaran) / 김혜승 (gptmd37)

▲ 간담회를 나누는 3인의 문화예술인 왼쪽부터 차례대로 이현정 감독, 손문상 화백, 송기역 시인 ⓒ 김혜승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다. 1분이 10년 같은 군인들에게 친구들이 '위로차' 으레 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거꾸로 매달아도 MB의 시계 또한 잘만 돌아 2012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4년이 됐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어느덧 흘러 흘러 이제 남은 임기는 1년 남짓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 하나 MB정부에 할 말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싸워온 이들이 할 말이 많을 테다. 4대강 파괴의 현장을 돌아다니며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르포집을 쓴 송기역 시인, 4대강 고발 다큐영화 <더블스피크>를 찍은 이현정 감독, 최근 MB정부 4년의 현대사를 시사만화로 엮은 책 <기억하라>의 저자 손문상 화백을 만났다.
 
글로 그림으로, 또 영상으로 시간을 기록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MB정부 4년'은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23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어느 카페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천' 공부하던 학생, MB 만나 영화감독으로
 

▲ 만평집 <기억하라>를 펴낸 손문상 화백 ⓒ 김혜승

- 지난 4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송기역(이하 송) "시인에서 르포작가가 됐죠. 르포를 알게 된 시간들이었어요. 일단 갈 현장들이 너무 많았고요 처음엔 시를 썼는데 점점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제주도도 가고, 또 4대강은 전국에 퍼져 있지 않습니까. 쓰고 싶은 글도 많아지고 또 글 써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왔죠. 제 인생 통틀어 가장 바쁜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손문상(이하 손) "열심히 만평을 그렸죠. 시사만화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지 20여 년이 돼가요. 사실 시사만화를 그려왔다고 해서 몇 년치를 묶어낸다던가 할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정권 4년이 참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잖아요. 후배들과 함께 시사만화를 묶어서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결국 책까지 내게 됐어요. 뭐, 후배들에게 묻어간 것이긴 하지만요."
 
이현정(이하 이) "원래 대학원에서 '하천'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어요. 도시하천 논문을 쓰는데 제 주제의식은 '청계천이나 도림천의 복원방향이 잘못됐고 4대강 또한 문제다'였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제가 취직할 곳이 없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때 마침 '강원래(4대강을 지키기 위한 독립영화 프로젝트)' 사람들과 만났고요. '장마가 시작되면 분명히 (보) 어디가 터질 거다' 생각했고 비 오기 이틀 전에 촬영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시민조사단과 함께 활동도 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쭉 일을 해오고 있죠."
 
 "MB정부가 일거리를 많이 던져주더라고요. 역행보살(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원치 않는 행위를 하여 그 사람의 깨우침을 도와주는 존재)이죠, 역행보살. 하하."
 
▲ 손문상 화백을 비롯해 네 명의 시사만화가가 함께 그린 만평집 <기억하라> 표지 ⓒ 헤르츠나인

- 송기역 시인님은 시인이지만 요즘 르포를 더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인들처럼 간질간질한 사랑시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으세요?
 "딱히 그렇지는 않고요, 앞으로도 계속 르포를 쓸 것 같아요. 특히 '쌍용자동차 사태'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3~4년 전에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침에 출근할 때면 30~40분 일찍 가서 수업 준비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쌍용자동차 관련 글을 읽었어요. 공장에서 같이 근무하던 형제 얘기였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형제 중 한 명이 노동운동을 하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거예요.
 
집 안에 물통과 컵라면을 가득 쌓아놓고 망원경을 사서 설치해 놨었어요. 자신에겐 전쟁 상황인 거죠. 망원경으로 적들이 오나 안 오나 주시하면서 컵라면을 먹고. 왜 도장공장 안에서 마지막 저항할 때 컵라면 먹고 했을 거잖아요. 그 글을 읽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도저히 수업을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좀 늦게 출근했죠. 너무 화가 났고, 그래서 그 당시에 르포를 쓰려고 시도를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비록 지금 저는 쌍용자동차에 관한 르포를 못 쓰고 있지만 친구들이 그 일을 대신해주고 있어요. 여튼 저는 글로서 연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글들을 쓰는 게 굉장히 좋아요. 내가 글쓰는 노동자로서 생계도 되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작가로서도 행복한 거죠."
 
정부 "집회 나가면 후원금 안 줘"... 작가들은 코웃음 
 

▲ 4대강 르포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펴낸 송기역 시인 ⓒ 김혜승

- MB정부 들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가해진 억압이 너무나도 많잖아요. 언제 그런 것들을 느끼셨나요? 정권 들어서자마자 전 정권 관련 문화예술계 인사들 다 축출되고.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 앞장섰죠?
 "아, 토할 것 같아요. 유인촌, 최시중, 이명박 캐릭터가 비슷해서 그런가, 다 비슷비슷 닮은 것 같아요. 하하."
 
 "사실 MB정부 들어서 그리고 싶은 걸 못 그린다 이런 건 없었어요. 제가 일하는 <프레시안>이라는 회사가 그런 회사도 아니고. 내가 그리는 주체로서 제약받은 바는 없다는 거죠.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일들이 있었죠.
 
작년이 전태일 열사 40주기였잖아요. 청계천에서 거리문화예술제 작품들을 내걸었는데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일방적으로 뗐죠. 오세훈 시장 시절 땐데 처음엔 허가했다가 이런저런 규정을 들이대면서 떼더라고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그림들이 걸린 게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래서 공단 이사장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어요."
 
 "2010년에 한국작가회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집회 불참 확인서를 요구받은 적이 있었어요. '확인서를 쓰지 않으면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래? 그럼 이제 안 받겠다'했죠. 우선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회비 납부하는 비율도 늘었고 '정부에서 돈을 안 준다고? 나 돈 좀 있는데 내가 도와줄까?' 하는 독지가들이 나타나 후원도 받았고요. 물론 문인답게 정권에 항의하는 의미로 '저항적 글쓰기'도 했어요."
 
▲ 송기역 시인이 4대강 파괴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쓴 르포집 <흐르는 강물처럼> 표지 ⓒ 레디앙

- 이렇게 글로, 만화로, 영상으로 기록한다고 사회가 변할까요?
 "기록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없어요. 오히려 더 일찍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쉽죠. 왜냐면 강이 바뀌기 이전의 모습을 제가 담아놨더라면 그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았을 것 같거든요. 지천에 갈 때마다 생각해요. '아, 이 지천의 사업 전 모습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름다웠던 강의 모습을 찍어놨더라면.'"
 
 "저도 비슷해요. 일찍 더 기록했어야할 것들이 많은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더라고요. 그런 작업을 제일 먼저 하신 분이 지율 스님이시죠. 환경운동 하시면서 사진도 찍으시잖아요. 아예 초기부터 쭉 찍어오셨어요. 더듬이가 항상 그곳으로 향해 있었으니까. '내가 뭘 해야 될까' 생각하시고 '그래, 현재 있는 원래의 것들을 다 찍어놓자' 하셨잖아요. '비포 앤드 애프터'인 거죠.
 
얼마 전 박래군 형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하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형이 말하길, 의문사 진상규명 사례집을 만들려는데 자료가 너무 없다는 거예요. 자료가 없으니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옛날 일들 들춰내면서 80, 90세 할머니 할아버지 인터뷰 하려니 힘든 거죠. 기억도 가물가물하시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MB정부가 끝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다

▲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고발하는 독립다큐영화 <더블스피크>의 한 장면 ⓒ 이현정

- 사실 4대강 사업이나 광우병 쇠고기 문제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요.
 "삼성과 관련한 만화를 그리면서 생각했어요. MB를 비판하고 사회변혁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무 정치투쟁에만 매몰돼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노동운동은 거의 지리멸렬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비정규직 900만 시대를 만든 것도, 우리 안에서 '보수와 진보, 반MB'에만 집중하면서 노동문제, 비정규직 문제들에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거거든요. 모든 이슈들이 정치권력에 대한 문제로 이어졌어요. 기형적이었죠."
 
 "4대강만 문제 아니거든요. 핵이나 원자력 문제도 계속 남는 문제들이잖아요. 그런 것들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유난히 MB정부에서 '반MB', '반4대강' 때문에 외면된 문제들이 있죠."
 
▲ 이현정 감독 이야기를 나누는 이현정 감독 ⓒ 김혜승

- 정치구호가 '반MB밖에 없나'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저는 '반MB'로 대표되는 정치투쟁, 그 이름으로 묶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반MB 이외의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걸 용인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잖아요. '우리가 분열되서는 안 된다'면서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않았죠."
 
 "그런 파시즘이 어딨어요. 제가 <나꼼수> 만평을 그렸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 때 사태가 이상하게 번지더라고요. 진영논리로 가면서 숨 막혔어요. '우리 안에서 분열이 되면 되겠냐' 하면서. 저는 정말 '딴따라' 자유주의자예요. 그런데 뭐든 이야기만 하면 진영논리로만 가니까, 어휴."
 "맞아요, 파시즘.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지금 현재 반MB로 다 묶여 있는데, 정권이 바뀌어서 새누리당밖에 야당이 없는 상황이라도 경제 위기가 오거나 한다면 파시즘이 올 수 밖에 없다'고요."
 
- MB정부 4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왜, 군대에서 '삽질한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 걸 그렇게 표현한다면서요. 저는 간단하게 그냥 '삽질정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를 피로하게 했던, 피로감 그 자체였어요. 이것저것 그리기도 정말 짜증났어요."
 
 "희망을 봤어요. 사회현장 속에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들어오더라고요. 희망버스 때도, 명동 마리에서도 그곳을 지키던 친구들이 자신이 보고 겪은 체험들이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언어로, 영상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표현하겠죠. 저는 미래의 문화예술인들을 보며 역설적으로 희망을 봤어요."

덧붙이는 글 | 강헤란,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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