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20년 전 인터뷰까지 ‘재조명’한 언론, 이대로 괜찮나
[비평] 정우성 득남 소식에 쏟아진 선정적 보도… 기성 언론도 동참
핵심 벗어난 제목으로 ‘좌파의 민낯’, ‘난민구제 내로남불’ 비판 유도
“언론이라면 어떤 아이라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게 해야”
기자명 박재령 기자 ryoung@mediatoday.co.kr 입력   2024.11.26 20:43 수정   2024.11.27 09:43
 
▲ 2022년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2022 유엔난민기구 '폴란드 미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정우성 당시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연합뉴스
▲ 2022년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2022 유엔난민기구 '폴란드 미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정우성 당시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연합뉴스
 
배우 정우성의 득남 소식 이후 관련 기사가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진다. 비혼 출산 이슈로 시작된 보도는 20년 전 인터뷰부터 최근의 난민기구 활동까지 그의 행적을 일일이 헤집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논란과 무관한 발언들로 비판을 유도하는 듯한 기사가 오히려 ‘정상가족 프레임’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행적으로 ‘난민 받자더니’, ‘미혼모 메이커’
 
지난 24일 디스패치가 <“소중한 생명, 끝까지 책임진다”… 정우성, 문가비 아들의 친부> 기사를 통해 처음 정우성의 득남 소식을 알린다. 디스패치는 “정우성이 직접 태명을 지어줬다”며 “단, 두 사람 모두 결혼을 전제로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중한 생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25일 오전 온라인 커뮤니티 출처로 정우성의 과거 발언이 조명되기 시작한다. 가수 성시경이 진행하는 유튜브 ‘먹을텐데’에 출연한 정우성이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며 “시기를 놓쳤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득남 소식에도 혼인 계획은 NO… 정우성 결혼관 재조명>(머니투데이) 등의 제목이 나왔다.
 
▲ 정유라 페이스북 관련 기사들 모음. 네이버 갈무리
▲ 정유라 페이스북 관련 기사들 모음. 네이버 갈무리
 
최서원(최순실) 딸 정유라가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이 무렵 기사화됐다. 정유라가 “정치에 관련된 말 그간 엄청 해왔으면서 정치랑 엮이는 건 싫어하더니, 이번에도 혼외자는 낳고 결혼이랑은 엮이기 싫어한다”고 쓴 것이 ‘정우성 저격’ 등의 헤드라인으로 언론에 실렸다.
 
26일 오전엔 그가 2018년 진행한 캠페인이 기사화됐다. 2018년 대한사회복지회가 진행한 사진전 ‘천사들의 편지’에서 정우성이 “촬영하면서 ‘내가 같이해도 되는 캠페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것을 놓고 <“미혼모 메이커가 미혼모 캠페인?” 정우성 6년전 영상에 누리꾼들 경악>(파이낸셜뉴스)의 제목이 달렸다.
 
연인과 함께 찍은 것으로 보이는 스티커 사진도 유출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상황이다. <정우성, 비연예인과 ‘뽀뽀’ 커플 사진… 제보자 “강남서 주웠다”>(세계일보) 등의 기사다. <정우성처럼? 지난해 ‘혼외자’ 출생 1만명 돌파…역대 최대>(문화일보) 기사 본문엔 통계청이 공개한 혼인 외 출생자 통계만 나올 뿐 정우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우성처럼 출산 따로 결혼 따로” ‘혼외자’ 역대 최대>(데일리안) 등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 정우성이 20년 전 진행한 인터뷰도 다시 기사화되고 있다. 네이버 갈무리
▲ 정우성이 20년 전 진행한 인터뷰도 다시 기사화되고 있다. 네이버 갈무리
 
20년 전 인터뷰까지 등장했다. 2004년 11월 진행된 인터뷰를 가지고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 정우성 19금 인터뷰 재조명>(뉴시스),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 정우성, ’오픈마인드‘ 추구한 과거 인터뷰>(세계일보),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 20년 전에도 개방적이었던 정우성>(전남일보) 등의 기사가 26일 만들어졌다. 본문을 보면 짓궂은 질문에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당시 정우성은 “나 역시 오픈 마인드로 좀 더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하다”며 “언젠가는 ‘누구랑 잤나요?’라는 질문에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 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보도 가치 적어… 개인 대 개인 관계에서 일어난 일”
 
이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공통적으로 ‘착한 척 하던 정우성의 위선이 드러났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그의 난민 구제 활동을 조롱하며 ‘좌파들의 민낯’, ‘진보의 내로남불’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정우성에 대한 비판을 성토할 수 있게 자극적 제목으로 언론 기사가 장을 마련해준 모양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는 댓글도 줄을 이었다.
 
▲ 25일자 한국경제 랭킹 기사 갈무리. 네이버 기준
▲ 25일자 한국경제 랭킹 기사 갈무리. 네이버 기준
 
일부 온라인 매체에서만 반복된 행태가 아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 기성 언론의 조회수(네이버 기준) 상위권은 대부분 정우성이 차지했는데 <“결혼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 문가비 임신중 정우성이 한 말>(조선일보), <‘혼외자 논란’ 대비했나… 정우성 지난해부터 광고 계약 0건>(중앙일보), <‘문가비 아이 친부’ 정우성, 4년 전 ‘결혼관’ 인터뷰 보니> 등 가십성 기사가 다수였다. 26일 18시경 현재 뉴스1과 뉴시스 등 통신사도 가십성 정우성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 걸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그의 과거 행적들이 정작 이번 비혼 출산 논란과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논란 자체가 당사자 간 사생활이며 오히려 비판을 유도하는 듯한 기사가 ‘정상가족 프레임’을 강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혼모’를 강조해 아이를 출산한 모델 문가비를 두둔하는 것도 차별적 시선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다.
 
▲ 뉴시스와 뉴스1 등 통신사도 정우성 관련 가십성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 걸었다.
▲ 뉴시스와 뉴스1 등 통신사도 정우성 관련 가십성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 걸었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통화에서 “한국 사회에서 크게 공론화되지 않던 부분이라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소재”라면서도 “도덕적 잣대로 개인을 공격하는 듯한 보도는 문제가 있다. 상대가 누구든 결혼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언론이 강제할 수는 없다. 당사자가 어떤 상황인지 다 알고 쓰는 것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언경 소장은 “고정관념에 대해 조명하고 필요한 부분은 깨자고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정상가족 프레임’ 논리를 반복한다. 정상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겐 오히려 2차 가해를 준다”며 “사람들 반응도 엄마, 아빠, 자식이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은 무조건 불행할 것처럼 나오고 있다. 언론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더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찬행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기본적으로 보도 가치가 큰 내용이 아니다. 범죄가 아닌 한 당사자 간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사생활의 영역인데 정우성의 과거 활동들이 왜 언급되는지 모르겠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맥락이 없으면 연예인이 공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기사심의분과위원으로 위촉된 허찬행 이사는 “보도를 심의할 때 보면 본문과 무관한 제목 문제, 선정적 자극적 표현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아무런 보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라며 “사생활의 내밀한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연결시키는 건 일반 시민들도 깊이 관심 없어할 거라 생각한다. 언론사들의 관행적 문제”라고 말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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