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tapa.org/article/32cQt


[조동(朝東)100년] ③ 조선일보 1면엔 일왕과 일장기가 얼마나 등장했나

조현미 2020년 03월 09일 08시 00분



조선일보 사시(社是) 가운데 첫째가 ‘정의옹호(正義擁護)’다. 조선일보는 정의옹호를 사시로 삼은 이유에 대해 “민족지로서 민족의 정의를 으뜸가는 가치로서 정치적 정의,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신념의 피력”이라고 설명한다.


민족지로서 민족의 정의를 으뜸가는 가치로 내세우는 조선일보가 과연 그 ‘사시’를 어떻게 구현해 왔는지 살펴보자.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 1면 한가운데에 당시 일본왕 히로히토 부부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일제강점기였지만 그래도 ‘민족지’를 내세우며 한글 발행을 하는 신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나 시도할만한 지면 배치였다.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 1937년 1월 1일 1면에 일왕부부 대형 사진 올려


이날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는 1면 제호 옆에 눈 쌓인 소나무 그림을 배치하고, 중앙에 일왕 부부 사진을 올렸다. 사진은 봉황 이미지와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으로 장식됐다. ‘원단(元旦)‧궁중(宮中)의 어의(御儀)’, 즉 ‘설날 아침 궁중의 의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왕을 ‘천황폐하’로 칭했고, 임금의 손을 높여 부르는 ‘어수(御手)’, 임금의 옷을 높여 부르는 ‘어포(御袍)’ 같은 극존칭 단어를 동원해 일왕을 찬양했다. 일왕 부부 사진 왼쪽에는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의 사진과 함께 그의 신년사를 빼놓지 않고 실었다.


▲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는 처음으로 1면에 히로히토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때부터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해마다 새해 1면을 일왕 부부의 사진으로 채웠다.


동아일보는 이듬해인 1938년 1월 1일부터 일왕 부부 사진 1면 게재를 시작했다. 1면 제호 옆부터 일왕 부부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배치했다.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봉황과 국화 문양으로 일왕 부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부터 1면에 일왕부부 사진 등장


동아일보는 이날 1면 ‘대본영하(大本營下)에 어월년(御越年), 황공(惶恐)-천황폐하어일상(天皇陛下御日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왕을 ‘천황폐하’ 또는 ‘대원수폐하’로 표기했고, 임금의 뜻을 높여 부르는 ‘성지(聖旨)’, 임금의 걱정을 높여 부르는 ‘성려(聖慮)’, 임금의 나이를 높여 부르는 ‘성수(聖壽)’라는 극존칭을 사용해 일왕 히로히토를 칭송했다.


▲ 히로히토 일왕 부부를 1면 전면에 실은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신문. 봉황과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 등으로 장식했다.


두 신문은 이후 1940년 8월 폐간때까지 매년 1월 1일, 1면 중앙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일왕 부부 사진을 장식하는 배경이나 문양은 해가 갈수록 화려해졌다. 봉황은 물론,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 날아오르는 학, 구름,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 등이 일왕 부부의 존엄을 보조하는 상징으로 다양하게 동원됐다.


▲ 일왕 부부가 등장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39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1940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1938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939년과 1940년 1월 1일자 1면에는 예복이 아닌 군복을 입은 일왕의 사진을 실었다. 일왕을 전쟁을 지휘하는 ‘대원수폐하’로, 즉 중일전쟁 시기 최고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천황’을 강조한 것이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일보가 독자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 침략전쟁의 수행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 1939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예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있는 일왕이 눈에 띈다.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이 일왕 부부의 사진으로 1면을 장식한 것은 1월 1일만이 아니었다.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천장절)인 4월 29일에도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과 1938년, 동아일보는 1938년, 1939년 4월 29일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싣고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어휘를 동원해 일왕 생일을 ‘봉축’했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왕 생일(천장절)에도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37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1938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1938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 1939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1940년부터 제호 위에 일장기 새겨, 모두 10건 확인


일제를 향한 조선일보의 충성은 1940년 1월 1일 지면에서 극에 달한다. 바로 조선일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 놓고 인쇄한 것이다. 신문 제호 위에 일장기를 새겨 넣은 것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나 경성일보, 또는 일본 신문들이 하는 행태였다.


▲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놨다.


뉴스타파 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놓은 지면은 모두 10건으로 확인됐다. 새해 첫날은 물론 주요 기념일마다 제호 위에 일장을 새겨 넣었다.


1940년 1월 1일, 3일, 5일 그리고 우리의 개천절과 비슷한 일왕 기원절인 2월 11일, 일제 육군기념일인 3월 10일, 일왕 생일(천장절) 다음날인 4월 30일, 일제 해군기념일인 5월 27일, ‘지나사변(중일전쟁)’ 3주년인 7월 7일에 특별히 일장기를 새긴 것으로 나타났다.


▲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린 조선일보 지면. 왼쪽 위부터 1940년 1월 3일자, 1월 5일자, 2월 11일자, 3월 10일자, 3월 21일자, 4월 3일자, 4월 30일자, 5월 27일자, 7월 7일자.


뉴스타파는 일제가 조선의 젊은이를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시기에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은 어떤 보도행태를 보였는지 다음 편(3월 11일)에 보도한다.


뉴스타파는 조선일보 창간일인 3월 5일부터 동아일보 창간일인 4월 1일까지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의 정체를 알리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이를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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