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수


윤두수는 조선 중종과 선조 때의 문신이다. 본관이 해평(海平)이며 자가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학도암 밑의 납대울에 살았다. 윤두수는 군자감정을 지낸 변의 아들로 태어나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1555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1558년)승문원에 들어갔다.

그 후 예문관 검열·홍문관 정자·저작·이조정랑 등을 역임하다가 이조정랑 재임 당시 이량이 그의 아들 정빈을 이조좌랑으로 천거한 것에 대하여 박소립, 기대승 등과 함께 반대하다가 대사헌 이감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1563년). 그후 영의정 윤원형과 우의정 심통원의 상소에 의하여 무죄로 밝혀져 다시 부수찬에 임용되었다.

그 후 이조정랑, 의정랑검상, 사인, 사헌부장령, 성균관사성, 사복시정을 지내고 문정왕후의 천거로 부응교에 임용된(1565년) 후 동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1576년). 윤두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1592년) 어영대장과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임용되었다. 이 때 평양의 행재소에 임진강의 패보가 전해지고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는 주장이 재기되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힘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주장하면서 이조판서 이원익, 도원수 김명원과 함께 평양성을 지켰다. 이듬해에 삼도체찰사(三道體察使)를 겸하였고(1593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에 봉해졌다(1595년).

정유재란(1597년) 때는 영의정 유성룡과 함께 난국을 수습하였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나(1598년) 대간의 지속적인 탄핵에 의하여 물러나 평안도 남파에서 여생을 보냈다.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하여졌다(1605년). 그는 이중호와 이황의 문인이었으며 저서로는 <오음유고(梧陰遺稿)>, <기자지(箕子誌)> 등이 있다.


출처 :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masterno=123557&contentno=12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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