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eoulpost.co.kr/news/9876


여자에게 당한 고구려 '모본왕'
임동주 서울대 겸임교수 (발행일: 2009/05/10 15:02:53)  

대무신왕에게는 오직 호동왕자뿐이었다. 낙랑공주를 꼬드겨 자명고를 찢은 호동이 자결을 하고나자 후사가 막막했다. 해우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포학했기에 탐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위도 아들 해우를 제치고 동생에게 물려 줬다. 동생 민중왕은 양심적인 왕이었다. 조카 해우를 태자에 봉해 왕위를 물려줬다. 해우가 왕이 되기 전의 일이다. 

당시 고구려엔 물돌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물돌에게는 수향이라는 천하절색인 딸이 있었다. 하루는 수향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봄맞이 소풍에 나섰다. 이날 마침 해우도 부하 두로를 거느리고 사냥에 나섰다가 우연히 수향을 만나게 된다. 성정이 난폭한 해우가 한껏 물이 오른 수향을 보고 못 본 체 할리 없었다. 수향은 험상굿게 달려드는 해우를 피해 달아났지만 이내 잡히고 말았다. 

“겁내지 마시오. 나는 이 나라 태자 해우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즐김이 어떻겠소?” 

수향은 결국 힘이 쎈 해우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수향은 해우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다. 세월이 흘러 민중왕이 죽고 해우가 왕이 되니 바로 모본왕이다. 해우는 왕이 되고서도 그 포악한 성격은 사라지지 않았다. 충언하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매일 주색잡기에 심취했다. 또 시위들의 배를 베게로 삼아 낮잠을 잤다. 만약 시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 일어나 칼로 목을 베어 죽이곤 했다. 그러자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두로도 그런 시위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대궐에서 잔치가 있었다. 잔치가 파한 후 물돌은 두로를 끌고 자기네 집으로 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물돌이 두로에게 슬쩍 농을 걸었다. 

“나도 요즘 잠이 안 오는 데 당신 배 좀 빌릴 수 있겠소?” 

철저히 계산된 농이었다. 모본왕을 죽일 결심을 한 물돌은 두로를 자기편에 끌어 넣기 위해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물론 두로가 크게 화를 냈음은 물론이다. 

“내 비록 어리석어 포악한 왕을 섬기고 있지만 당신도 잘 난 것 없소이다. 그대는 딸 문제로 치욕스런 꼴을 당했으면서도 나보다 당당하니 참으로 가소롭구려.” 

두로는 물돌의 딸 수향이 예전에 해우에게 성폭행 당한 것을 일깨웠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냐는 것이다. 그때 병풍이 젖혀지면서 정장 차림의 수향이 나왔다. 이때 수향은 이미 유리명왕의 아들 고추가에게 시집을 간 몸이었다. 

“네, 이놈! 폐하를 모시는 놈이 왕을 포학하다고 했으니 역심(逆心)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내가 내일 당장 폐하께 일러 너의 목을 베고 삼족을 멸하리라.”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두로는 혼비백산 온몸에서 힘이 빠져 벌떡 일어났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두로는 목숨을 보전하기위해 수향이 시키는 대로 모본왕을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수향은 자기 자식을 왕위에 올리게 된다. 이가 바로 태조대왕이다. 

자고로 일녀함원 오월비상(一女含怨 五月飛霜)이란 말이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월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정치나 사업을 할 때도 여자가 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서울대학교 겸임교수, 도서출판 마야 대표 (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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